[이민화의 대한민국 벤처스토리 (10)] 벤처기업협회-정보통신벤처협회의 통합

라이벌 두 단체의 결혼, 정부도 업계도 축하


2008년 8월21일 난생 처음 결혼식 주례를 섰다. 신랑도 신부도 모두 남자였다. 벤처기업협회와 정보통신벤처협회의 통합 결혼식이었다.

2005년 벤처 붕괴의 위기를 벤처 재도약 정책으로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벤처기업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적극적인 진흥책을 이끌어 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당시 벤처의 위상은 2000년에 비하면 바닥권이었다. 정책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벤처 관련 단체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단체의 분열은 쉽지만 통합은 어렵다고 다들 얘기한다. 실제로 일정 규모 이상의 단체들의 이해 충돌로 통합은 험난한 과제였다. 2008년 5월 정보통신벤처협회 서승모 회장에게 통합을 제안하자, 놀랍게도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어 벤처기업협회 백종진 회장에게서도 나름 긍정적이라고 생각할만한 답이 왔다. 그만큼 벤처 생태계의 위기의식이 스며든 결과가 아닌가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벤처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벤처협회간 통합이 절실했다. 2008년 양대 벤처협회였던 벤처기업협회와 정보통신벤처협회도 벤처붕괴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통합에 적극적이었다. 사진은 2008년 8월21일 양 협회간 ‘통합 결혼식’에서 필자가 주례를 서던 모습. 왼쪽이 서승모 정보통신벤처협회장, 오른쪽은 백종진 벤처기업협회장. (이민화 교수 제공)

두 단체는 각각 지식경제부와 정보통신부가 후원하는 조직으로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벤처기업협회의 장점은 정책 역량인 반면, 정보통신벤처협회의 강점은 강력한 결속력이었다. 두 단체의 통합으로 지력과 체력을 겸비한 새로운 벤처 단체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었다. 결집된 힘으로 벤처가 재도약하려는 벤처 통합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양 단체의 회장들은 긍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임원들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통합에 대하여 총론 찬성, 각론 반대라는 형태로 결론은 표류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합 회장과 임원사의 비율에 대한 합의였다. 결국 공동 회장제의 도입과 50:50의 임원 배분으로 극적인 합의가 도출됐다.

통합의 전 과정에서 정부 당국의 개입은 일체 없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벤처 통합을 최수규 당시 중소기업청 벤처국장에게 알려주자 놀랍다는 반응과 더불어 적극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직접 나서기 껄끄러운 일을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스스로 통합 결의를 한 벤처 업계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역사적인 벤처 통합식을 결혼식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통합을 주선한 필자가 주례를 봤다. 남자들간의 결혼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통합 주례를 맡아 ‘신랑 벤처기업협회’, ‘신부 정보통신 벤처협회’의 백년가약을 선언했다.

이후 여성벤처협회, 이노비즈협회의 통합도 추진됐지만 결국 ‘최대한 협조한다는 선’까지 합의되고 통합 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벤처 단체는 이외에도 바이오벤처, 문화벤처, 모바일벤처, 반도체벤처, 농업벤처 등 분야별 협회가 있고, 경기 인천 대전 광주 부산 등 지역별 벤처 협회들이 있다. 하나의 단체로 통합은 하지 않더라도 이들 협회의 유기적인 협조를 이끌어 내는 협의체 기능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벤처는 학교나 연구소, 기업과 같은 모태조직에서 아이디어만으로 창직(創職)을 하는 창조벤처, 혹은 직접 사업을 하는 창업벤처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국내 시장의 장벽을 돌파한 성장 벤처가 이노비즈 기업군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 기업이 더욱 성장하면 글로벌 벤처(천억 클럽)가 되고 이들이 사회 환원을 통하여 사회적 벤처를 육성하게 된다. 이러한 벤처의 전 주기를 아우르는 싱크탱크의 역할이 협의체의 주요 기능이 되어야 한다.

이제 성장과 고용을 동시에 이끌어 갈 유일한 국가적 대안은 벤처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은 고용에 한계를, 중소기업은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1인 창조기업에서 창업벤처, 이노비즈, 천억 클럽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이러한 기업들이 집단으로 생태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 하나의 정책으로 벤처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전체의 문제를 조망하고 대안을 제시해 나갈 협의체의 중심은 역시 통합된 벤처협회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글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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