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

와이프와 결혼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저에게

”나 사랑해?”

라고 질문을 합니다. 저는 이 순간 자동적으로 ’사랑대응 3연속 콤보 모드’로 진입합니다. 서로 사랑하니까 결혼까지 했고, 이렇게 아이까지 낳아서 사는건데…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드는걸까? 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랑하쥐~”

라고 만면에 웃음을 드리우며 대답합니다. 그러면 또 자동적으로 다음 질문이 이어지죠.

“얼마만큼?”

“(그만하시지…) 하늘만큼 땅만큼~”

그리고 다음 질문은 예상되죠?

“왜?”

(아놔… )”당신이니깐 사랑하지… ”

에이 인혁씨, ’여자들은 다 그래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여자니까~^^
하지만, 가끔씩은 제가 장난으로 와이프처럼 똑같은 질문을 종종 해 봅니다.

“여보”

“응?”

“나 사랑해?”

“응”

“얼마나?”

“많이”

“왜?”

“그냥…”

“그냥이 어딨어, 왜 사랑해?”

“사랑하니까 사랑하지.”

“그런게 어딨어”

“왜 또 시작이야, 그만해”

“자기도 궁금해하잖아~”

“시끄러워.”

“응?”

“닥쳐.”

“;;;”

여자들도 사실 남자들이 왜 사랑하냐고 계속 물으면 짜증낸답니다(에혀… 어디 그런 말이라도 쫌 하면 좋겠어요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긴 합디다만). 그런데요, 진짜 여러분. 지금 사랑하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세요. 그 사람의 무엇때문에 사랑하시나요?

남자들:
‘예뻐서요’
‘예뻐서요’
‘예뻐서요’
‘예뻐서요’
‘예뻐서요’

농담이고요 ㅎㅎ

‘나한테 잘해줘요’
‘자상하니깐…’
‘머리는 좀 나쁘지만, 키가 크고 나름 운동성능(?)도 좋아서 2세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어서’
‘유머 감각이 좋아요’
‘아는게 많아요’
‘귀여워요’
‘착해요’

(지금 같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유를 댓글로 한번 달아줘 보시죠? ^^ ) 말 장난이 좀 되겠습니다만, 그러면 만약 이성이 ‘자상하기만 하면’ 다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되나요? ‘키 크고 운동성능 좋은 남자’면 다 OK인가요? 여러분한테 잘해 주기만 하면 남자의 종류에 상관없이 만나줄 수 있나요? 착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좋은 건가요?

이런 식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ㅎㅎ 답은 없죠. 그냥 좋아졌기 때문인거죠.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든 겁니다. 내가 매달려서 사귄거든, 사겨준것이든 말입니다. 가끔씩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을 거에요. 도저히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인데도 좋아서 마음 고생을 한 경험… 한번쯤 있으신 분들 많으실 거에요. 어쨌거나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단점의 정도에 상관없이 왠만한 기간 동안은 그 사람을 계속 좋아하게 됩니다. 혹자는 일정 시간동안 지속되는 사랑의 호르몬 얘기를 하죠.

이와 관련해서 스웨덴 룬트대학의 연구원들이었던 Petter Johansson, Lars Hall과 지도교수 Sverker Sikström는 <사이언스> 2005년 10월 호에 Choice Blindnes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답니다.리 말로 옮기자면, ‘변화맹 실험’ 정도가 될라나요.

관련내용 보기: Wikipedia Change Blindness

 이 실험의 내용은 피실험자 120명에게 두 명의 사진을 보여주고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지 선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시오’라는 질문을 받고, 두 개의 사진을 들어서 보여주고, 한쪽을 지목하도록 했습니다. 여러분도 선택해 보시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lucs.lu.se/Projects/ChoiceBlindness/
사진을 지목한 다음에는 왜 이 사람의 사진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험 참가자가 나름의 이유를 대답하고 있는 동안 선택한 사진은 트릭에 의해서 교묘히 살짝 바꿔치기가 됩니다. 자기가 선택하는 사람이 바뀌게 되는거죠. 아래 사진을 보세요. A->D 순서로 바꿔치기가 일어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igure 1. http://www.lucs.lu.se/Projects/ChoiceBlindness/
사진의 피실험자는 두 여자 중에 왼쪽에 있는 여자를 선택했습니다. 실험자는 얘기하는 동안 뒤집었다가 사진을 바꿔치기 해서 B를 전해줍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을 하기 때문에 피실험자는 사진이 바꿔치기 되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죠.

실험참가자는 총130명. 과연, 이 중에 몇명이 이 사실을 눈치챘을까요? 실험 결과 약 10% 였습니다. 열 명을 제외하고 100명이 넘는 피실험자들은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보여주는 두 사람의 사진이 서로 비슷해서 이런 착각을 할까요? 피실험자에게 제시된 사진들의 쌍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떤 사진은 제법 유사한 짝도 있고, 전혀 아닌 짝도 있네요. 우측 하단 사진은 외모는 물론 머리카락 색깔마저 다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 실험은 두 사진의 유사성을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까지 다양하게 변화를 줘서 실험 결과의 치우침을 막도록 테스트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유사성 수치를 표시한 것들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lucs.lu.se/Projects/ChoiceBlindness/
유사성이 낮을 수록 낮은 점수가, 높을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유사성이 5를 넘어가면 제법 비슷하지만, 그 반대쪽은 대번에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유사성이 2.9인 여성을 두고 실험했을 때의 결과였습니다. 가운데 우측의 사진을 보시죠. 유사성 2.9의 저 두 여자는 턱 모양에서부터 헤어 스타일, 귀걸이까지 똑같은게 하나도 없습니다. 코 모양, 입술 모양도 완전 다르고…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이 바꿔치기됐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도 못 챘을 뿐더러 처음에 느꼈던 호감을 다른 여자에게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좋아한다고 말했던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 결과를 놓고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유없이 누군가를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모가 상대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이 실험을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외모가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모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성격이나 느낌이 호감도의 우선요소다라고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호감을 그대로 느낀다’는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느끼는 어떤 감정이란 것이 ‘특정 대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는 점도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과대 해석하자면, 데이트 상대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다가 많은 인파속에 파묻혔다가 정신을 차려서 봤더니 내가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고 있는 상황인데도 나는 뒤바뀐 사람을 여전히 데이트 상대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는거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이유’에서라기 보다 ‘나 자신의 사랑에의 욕구’에 기인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즉, 상대방의 어떤 면에 의해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기보다 내가 필요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거죠. 그냥 나는 지금 그 누군가가 필요한 것일 뿐이고, 그 상대가 누구든지간에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에의 욕구가 맞아 떨어지고 있는 단계에서는 더 없이 행복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하든 화가 나고, 내 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고,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모르는 사람보다도 더 심하게 신랄하게 싸우는 점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우리의 마음이란건 하루에도 수백번 바뀝니다. 사랑의 감정도, 그 사랑의 존재를 가지기(?) 전에는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수백만 가지를 떠올립니다. 계속 스스로를 합리화 주고, 맘에 들지 않아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고, 가끔씩은 비굴하게 느껴지지만 좋은 관계를 위해 양보하는 미덕(?)도 서슴없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내가 막상 나름의 사랑이란걸 가지게 되면 그 사랑으로 인한 행복감은 이상하리만치 무감각해집니다. 그렇게 바라던 것을 가졌는데도… 그 기쁨이 지속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나 자신을 사랑해 줄만한 무언가를, 다른 가능성(?)을 마음 한켠에 열어두며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끈임없이 반목과 다툼을 거듭할 수 밖에 없는 이유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을 때, 사랑의 깊이가 비로소 더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면 상처만 쌓여가구요… 때문에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실 때,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지금 뭘 원하는거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글: 송인혁
출처: http://everythingisbetweenus.com/wp/?p=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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