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프린터 소모품도 프린팅 기술 중에 하나입니다. 잉크나 토너 뿐만 아니라 종이와 그밖의 소모성 부품들도 모두 프린팅 기술이라는 것이죠. 좋은 프린터라고 불리는 것은 그냥 하드웨어만 좋은 게 아니라 이 같은 소모품이 기술적으로 한층 발전하는 것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지만, 소비자들에게는 그것이 별개로 여전히 분리해 취급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메시지가 잘못 전달되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며칠 전 한국 HP가 남산 반얀트리 클럽에서 진행했던 중요한 발표회 이후에도 지속되는 듯 합니다. 이 발표는 3주 전 홍콩 샤우 스튜디오에서 공개했던 웹프린팅 기술을 국내에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잉크와 토너 같은 소모품과 관련한 것이었는데, 여러모로 생각해볼 것이 많은 행사였습니다.

이날 'Racing Ahead with HP'라는 주제로 발표한 것은 프린팅 소모품을 통해 더욱 프린팅이 빨라지고 비용을 절감하며 품질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드웨어가 좋아진 게 아니라 소모품이 좋아졌는데, 더 빨라지고 비용이 절감되며 품질이 좋아졌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프린터는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잉크나 토너를 용지에 흩뿌려 결과를 찍어내는 장치입니다. 프린팅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기본이 되는 잉크나 토너, 용지의 품질이 나쁘다면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빠르게 얻기 힘듭니다. 바꿔 말하면 프린터는 잉크와 토너, 용지의 속성에 따라 하드웨어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드웨어를 만들고 거기에 소모품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는 소리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프린터 리뷰를 보면 프린터 자체에만 너무 초점을 맞춰 언제나 잉크와 용지 같은 소모품에 대한 설명은 뒷전이었죠. 잉크나 토너가 좋아져도 새로운 프린터에서 이를 주목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HP가 선보인 안료 잉크 방식 비즈니스 프린터나 성능을 더 빠르게 만든 레이저 프린터는 모두 잉크와 토너를 개선했거나 바꿨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제품입니다. 이를 테면 종전 스며드는 습성을 가진 염료 방식의 잉크를 쓰던 HP가 용지 표면에 흡착하는 안료 방식의 잉크젯 비즈니스 프린터를 내놓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큰 변화입니다. 안료 방식으로 인해 더 빨리 마르면서 표현력이 강해졌고 물에 담궈도 색이 번지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잉크를 쓰기 위해서는 프린터도 미세하게 그 속성을 바꿔야 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요.
레이저 프린터 토너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종전보다 컬러스피어라 부르는 컬러 토너 입자를 더 작게 만들고 흑백 토너의 녹는 점을 낮춰 인쇄 속도를 높였습니다. 컬러 토너의 입자를 더 작게 만들면 융착(인쇄 용지로 옮겨진 프린터 토너가 눌려 펴지는 현상) 이후 토너가 매끄럽고 고르게 펴져 광택이나 색이 더 살아납니다. 또한 녹는 점을 낮춘 흑백 토너를 선보였는데, 녹는 점을 낮추면 토너를 녹여 정착시키는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데다 인쇄 속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토너를 쓰면 프린터 구조를 좀더 축소시킬 수도 있어서 더 작은 레이저 프린터(P1566/P1606)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소모품이 프린터의 성능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지만,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이용자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프린터의 소모품이라고 하면 가격에 대한 인식이 성능이나 품질보다 가격이 더 중요한 게 이유가 아닐까 싶지만, 프린터처럼 하드웨어에 대한 가치가 더 높은 장치에 대한 고정 관념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아닐겁니다. 아마도 이번 소모품 발표회 이후에도 이러한 인식을 뒤집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용자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HP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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