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있는 백수가 많아져야” 인공위성 발사한 송호준 미디어 작가

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 송호준 디렉터
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 송호준 미디어 작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1억원 모아 개인 인공위성 쏴올렸어요“이라는 기사를 통해서였다. 인공위성을 생각한 것도 놀라웠지만 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 끝에 진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것도 한 개인이 말이다.

 

제 11회 스타트업위켄드 송호준 비쥬얼 아티스트 특별강연 from soriweb on Vimeo.

 

그러나 정작 송호준 미디어 작가(36)는 자신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사람’이라는 수식어에 매몰되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그를 후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도 그에게는 도움인 동시에 부담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게 많다는 송호준 작가, 마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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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준 작가의 작업실

 

고려대학교 전기전자전파공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KAIST 공학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자퇴하였다. 왜 자퇴를 결심했나?

■ 타인의 압력을 계기로 뛰쳐나올 수 있었던 소중한 인생의 전환점

과거를 회고해보았을 때 난 ‘공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외웠을 뿐이다. 난 외우는 건 잘했다. 그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지기 싫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외웠던 것 같다. 호기심이나 재미에 의해 공부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는 육상부 활동을 많이 했었고, 고등학생 때는 공부만 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맹목적으로 들면서 반장으로서 반 분위기까지 침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2005년 대학원에 진학할 때 즈음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일들을 했고 2007년에는 대전에 있는 우주항공 전문기업 ‘쎄트렉아이‘에서 1년간 인턴을 하기도 하였다. 그 때 내 멋대로 하고 일만 하다가 연구소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30살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하기 위해 대학원을 자퇴하고 작업실을 차렸다.

 

모범생으로 살아왔는데 자퇴를 결심하다니 용기가 대단한 것 같다

■ 난 용기있는 사람이 아냐, 30살이 될 때까지도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

난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때마다 언제나 다른 판단기준에 의해 내 판단기준이 유보되어 왔었다. 내 주관이 없었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주관이 뚜렷한 학생들은 이미 고등학생 때 뛰쳐나온다. 난 그런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서 30살이 될 때까지 쌓였는데도 기존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얼 해보고 싶다고 했던 활동이 반대에 가로막히는 문제가 발생하고 집단에서 쫓겨나게 된 사건이 내게는 일종의 ‘누구에게든지 댈 수 있는 핑계거리’가 되어준 셈이었다. 자퇴한 다음날부터 내가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했던 고민을 몇 십 년만에 다시 시작한 셈이었다.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라고 항상 생각한다. 그래서 인공위성 프로젝트도 실패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안되면 말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 누가 누구를 원망하면서 사는 비극, 이제 그만하자

지금처럼만 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왜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가? 그건 진로를 결정하도록 돕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분류해서 ‘톱니바퀴’ 속에 들여보내기 위한 준비 아닌가? 수능은 실패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시험 공부이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교수님한테 언제 당신의 그 일을 하고 싶으셨냐고 여쭤봤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45살 때라고 말씀하셨다. 45살에 비로소 자신의 적성을 찾으신 것이었다.

20대 때에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보는 걸 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하는 말씀에 따질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나서 부모가 우울증에 걸리는 게 당연할 것이다. 당신들의 삶을 사셔야 되는데 자녀를 위해 희생하며 사신다. 그러다가 진로 선택의 순간에 “내가 널 위해 어떻게 했는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자녀들은 또 미안해서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따른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가정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있더라. 그리고 나중에는 불평하며 산다.

누가 누구를 원망하면서 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적어도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스티브 잡스가 사업에 성공한 이야기는 하면서도 학교를 뛰쳐나오고 ‘말 안 들은’ 이야기는 강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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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회여서 망설이는 게 아닐까? 

■ ‘실력있는 백수’가 많아져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런 걸 어떻게 생각했지?’가 나와

나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에 나가보면 다들 즐겁게, 그리고 잘 살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고 느끼는 점이 바로 ‘실력있는 백수’가 적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재밌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우리가 소수이다 보니까 도리어 할 일이 많아져서 바쁘게 살고 있다.

‘실력있는 백수’가 많아져야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 걸 어떻게 생각했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백수인 게 잘못이다’라는 생각과 ‘다시 취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자신감 있는 백수, 하고 싶은 게 있는 백수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만든 굴레에 갇혀서 죄의식을 갖고 있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항상 태도의 문제이다. 아이디어라는 게, 천재적이라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심심한 분위기에서 재밌는 걸 찾다보니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지나친 사랑은 교육열로 이어져 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막는다. 적어도 내 나이대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올챙이 잡으러 갈 시간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학교 앞 커피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손을 잡고서 또 어디를(학원을) 데려간다. 이 동네(망원동)만 해도 상황이 이러한 데 다른 곳은 어떠하겠는가?

공부는 자기가 궁금해서 하는 것이다. 동기를 마련해주지 않는 삶 속에서 우리는 소중한 시기를 놓치고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사회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내 삶 역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으면 다들 재미 없어지는 것이다. 힘들고..다들 힘들어지는 것이다.

 

 

5년여 간의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점은?

■ 혼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

‘어떻게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걸 만들어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게 인공위성 프로젝트였다. 인공위성 관련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로켓 견적을 낸 후에 2008년 12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부품의 경우 국제무기규제조약 등에 의해 구매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평소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우주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부품을 찾느라 좀 고생했다.

이 프로젝트는 인공위성의 기능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조립 과정, 법적 허가, 발사,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 게 목적인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나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으면 전혀 생각치 못했을 분야의 생각들이었다. 가치 있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큰 그림을 그리는 감독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 채 인공위성을 직접 만드는 데에 열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데에 너무 시간이 많이 들어갔다. 부품도 사야 되고 납땜도 해야 되고..일이 많아져서 이상한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다 보니 좀 더 재밌게 보여야 하는 부분을 살리지 못했던 게 아쉽다.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 쉬고 나면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이 나올 것 같아

인공위성은 리서치를 중심으로 하는 논리적인 프로젝트라 ‘세모’를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세모’를 만들어야 했다. 이제 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세모’를 만들고자 했는데 ‘네모’가 나와도 즐거웠던 작업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음악이든 설치든 그런 분야의 작업을 다시 할까 생각 중에 있다. 새로운 놀라움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풀어줄 시점이 필요한 것 같다. 우선 쉬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 그래야만 또다른 새로운 생각이 일어날 것 같다.

 

안경은 brightu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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