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죽도록 일하는 조직

MBA에 있을 때 트라이애슬론 동아리를 했다. 몇명 되지 않는 그 동아리에서 나와 함께 co-chair 를 했던 네델란드 친구의 페이스북에 얼마 전에 그 친구의 아이언맨 코스(ironman, 흔히 말하는 철인코스) 완주 사진이 올라왔다.

참고로 이 친구는 네델란드에서 BCG 에 근무하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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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과 소식을 전하고 나니 한국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도대체 네델란드 BCG는 얼마나 널럴하기에 컨설턴트가 철인삼종경기 완주를 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가? 라는 것이 가장 주된 반응이었다. 우리는 모두 죽도록 일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얼마나 널럴하기에 그런 하드코어 취미 생활이 가능하냐? 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가 철인삼종경기 완주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 만약 그런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안되냐고 되물으니, 몇몇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매니저가 그에게 일을 더 시킬 것이라고 말이다. 혹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일부를 그에게 주고 싶을 것이라고. 그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 모든 조직에 걸쳐서 죽도록 일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티나는 여유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일을 더 얹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꼴보기 싫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힘든데, 그는 여유롭다는 사실 자체가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길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배운 “사회생활 SKILL” 중에 하나도 바로 이런 ‘죽도록 힘든 척 하기‘ 인것 같다. 대한민국의 조직생활에서는 조금의 여유라도 보이면 내 어깨 위에 큼지막한 짐이 턱 하고 얹혀지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앓는 소리를 하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어야만 나에게 일이 더 얹혀지지 않는다. 티가 나도록 쉬고, 먹고, 놀기보다는 조용히 눈 깔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 TV보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위의 문장들은 어느정도의 과장이 보태진 것이긴 하지만,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은 나의 말에 공감을 할 것이다. 너무 바빠서 더 일을 할 여유가 없다는 인상을 팍팍 주지 않으면,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나에게 또 다른 일이 추가된다.

누군가 나에게 직장에서 가장 좋은 포지셔닝은 ‘일은 잘 하지만,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조언(?)을 해 준 적이 있었다. 즉, 그 회사에서 일을 잘하기로 소문나있지만, 이미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 사람의 상사가 그에게 일을 부탁하는 것 조차 미안하게 만드는 포지셔닝이 장기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본인의 희소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널럴~한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 또한 많이 계시겠지만, 내 주변에는 비교적 업무 시간이 긴 사람이 많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토하도록’ 일하고 있거나, ‘죽도록’ 일하고 있거나, ‘밥도 못 먹고’ 일하고 있으며, ‘거지 꼴을 하고’ 일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용기를 소원해 본다. 내가 나의 취미생활과 그 취미생활에서 오는 성취를 당당히 표현할 수 있는 용기.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주변에 누군가가 삶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죽도록 힘든 세상에 사는데..’라면서 그 사람을 질투하거나, 미워하거나, 나의 일을 조금이라도 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은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모두 나의 선택이니까.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goo.gl/gGZ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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