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칠레, 스타트업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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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회사의 행사에 갔다가 음식배달 주문용 앱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회사 ‘우아한 형제’의 회사 소개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회사 김봉진 대표는 이번이 미국 초행길이라고 하고 동행한 이승민 전략기획실장도 겨우 두번째 미국 방문이라고 해서 솔직히 이들이 발표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버벅대더라도 잠재적인 미국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번 해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그런데 내 걱정은 기우였다. ‘우아한 형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스마트폰 문화부터 뭐든지 주문만 하면 번개처럼 가져다주는 한국의 음식배달 문화까지 앱 개발 배경설명부터 시작해 한국인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자신들의 앱이 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 결과 오히려 같이 발표한 다른 미국 벤처기업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흔히 유행하는 미국의 인터넷서비스를 따라했다면 별로 관심을 못 받았겠지만 한국 시장에 맞는 자신만의 서비스를 개발해낸 것이 오히려 미국 투자자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 : 첫 번째 해외회사설명회에 도전한 우아한 형제들)

이 일을 통해 내가 한국 벤처기업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발표가 끝나고 겸손해하는 김 대표에게 “앞으로 좀더 해외에 자주 나가고 견문을 넓히라”고 이야기했다. 꼭 해외진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 뒤 식사를 하면서 한 샌프란시스코의 현지 벤처 CEO와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한국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너무 한국 시장밖에 모르고 국외 시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문한 회사마다 거의 100% 한국인 직원만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니 더욱 해외 시장을 이해하고 진출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사실 얼마 전에 만난 한 일본인 벤처투자가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한국의 벤처기업 실력이 많이 올라간 것 같은데 너무 시장을 한국 안으로만 좁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큰 시장인 미국에 자리잡고 있고 영어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실리콘밸리의 특성상 인종·국적·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데 있다. 이미 회사 안의 모습이 ‘유엔’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따로 글로벌을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벤처기업인들도 한층 더 이런 글로벌 환경에 노출되고 다양한 외국인들과 교류해야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물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 정부가 진행하는 ‘스타트업 칠레’라는 프로그램에 주목하고 싶다. 스타트업 칠레는 세계의 벤처기업 중 신청을 받아 선발된 기업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회사를 6개월간 운영할 수 있도록 4만달러와 비자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세계 곳곳의 똑똑한 인재들을 칠레로 불러모아 교류시켜 자국 벤처업계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2010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미디어들의 관심을 모아 70여개국 1600여 벤처기업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도 ‘스타트업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세계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모아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 창업가들이 세계의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면 국외진출 성공 사례는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한겨레신문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썼던 글. 글은 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 내용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방문할 때마다 백인, 인도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격의없이 어울리면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부러웠다. 모름지기 다양한 사람과 교류해야 서로를 자극하면서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실리콘밸리만한 곳이 없다. 전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장벽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만 해도 백인주류사회와 이민사회간의 벽이 있고 그런 장벽을 글래스실링(Glass ceiling)이라고 한다. 물론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그런게 없다고 할수는 없지만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는 곳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다 내부가 작은 UN총회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의 스타트업칠레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외국인들을 산티아고로 끌어들여 칠레의 벤처커뮤니티를 자극해보고자 하는 칠레정부의 좋은 아이디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나 싶다. 칠레처럼 한국의 창업자들이 보다 많이 외국인들과 접촉해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볍게 한번 위 글을 써봤다.

글 : 에스티마
출처 : http://estima.wordpress.com/2013/06/23/startupc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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