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킨들과 종이책의 운명 (Amazon Kindle Killed Physical Books)

<관련 포스트: 책이란 무엇인가?>

 

필자가 아마존의 전자책 전용단말기(e-book reader)인 킨들을 구매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2011년 2월에 미국 2위 서점인 보더스(Borders)의 파산 소식을 접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미국 1위 비디오 대여업체였던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파산을 떠올렸다. 블록버스터는 전국의 5,000여 체인을 기반으로 DVD를 대여하는 사업을 영위하였다. 블록버스터를 파산시킨 주범인 넷플릭스(Netflix)는 1997년 우편으로 DVD를 대여하는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는 VOD(Video On Demand)기반으로 진화한 업체이다.블록버스터는 2006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수년간 천여개의 체인점 문을 닫았으며 2010년에 결국 파산을 맞이하였다. 넷플릭스가 시장을 조금씩 잠식해 올 때 블록버스터는 초기에는 무시를, 조금 지나서는 흉내를 내는 전략을 취했고 결국은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파산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Gina Keating, Netflixed, Portfolio, 2012]. 음반시장에서도 이미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미국 최대 음반 판매업체였던 타워레코드(Tower Record)가 P2P기반의 음악공유서비스와 애플의 iTunes에 밀려 2004년 파산신청을 하고 2006년 완전 정리되었다.

 

아마존 킨들(Amazon Kindle)

이제는 미국의 서적시장에서 동일한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책 시장을 연 것은 인터넷 최대의 유통업체이자 클라우드서비스 업체인 아마존이다. 2007년 킨들(Kindle)을 출시하여 꾸준히 전자책 시장을 공략하였고, 2011년5월을 기점으로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이 더 많이 팔리는 상황이 되었다. 2010년 iPad 등 태블릿 PC의 등장은 전자책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2013년 현재 아마존에서는 100만종 이상의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으며 종이책의 2배 이상이 판매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킨들의 가장 최신형인 Kindle Paperwhite: 가독성, 눈의 편안함, 조명 등 책읽는 데 최적의 기기라고 생각한다.
킨들의 가장 최신형인 Kindle Paperwhite: 가독성, 눈의 편안함, 조명 등 책읽는 데 최적의 기기라고 생각한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는 킨들을 출시하면서 “킨들은 기기가 아니라 서비스다(It isn’t a device, it’s service.)“라고 하였다. 즉 전자책을 단지 읽는 도구가 아니라 전자책을 구매하고,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킨들은 출시 초기부터 아마존에서 구매한 전자책을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고 무선 인터넷(소위 Whispernet)으로 다운로드하고 관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위 말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2007년부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대형출판사를 설득하여 출시와 동시에 88,000여 전자책을 판매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였다. 최근에는 iOS, Android, Windows, Mac OS X 등 거의 모든 컴퓨팅 플랫폼에 앱을 제공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종이책은 죽었다

그렇다면 종이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CD나 DVD처럼 역사속으로 사라져 갈 것인가? 아니면 종이만의 장점이 있어 살아남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장점으로 가독성, 필기 가능성, 그리고 보관성 등을 든다. 종이책이 가지는 촉감, 넘기는 맛 등 아날로그의 감성은 전자책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종이로 보는 신문과 웹으로 보는 신문의 예를 들면서 종이책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와 같이 한번 전자책에 익숙해진 사람은 종이책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은 어떤 점에서 종이책보다 우월한가 살펴보자.

 

전자책은 저렴하다

종이책은 출판에 많은 고정비용이 들 뿐아니라 종이값 등의 변동비용이 든다. 전자책은 고정비용이 적을 뿐 아니라 변동비용은 0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유통비용 측면에서도 전자책은 훨씬 유리하다. 전자책의 유통에는 물류비용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아마존의 Kindle Direct Publishing (KDP)와 같이 출판사를 끼지 않고 직접 출판하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전자책은 구조적으로 가격이 저렴할 수 밖에 없다.

Kindle Direct Publishing 서비스를 이용하여 출판한 필자의 저서 (현재는 한글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판매되지 않음)
Kindle Direct Publishing 서비스를 이용하여 출판한 필자의 저서 (현재는 한글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판매되지 않음)

물론 현재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같이 출판되는 경우 가격에 큰 차이가 없으나 전자책만 출판거나 전차책이 성공해서 종이책을 낸 전자책의 경우 훨씬 저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존의 경우 이러한 책들은 대부분 1~3불 정도이고 이를 백만권 이상 판매한 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도서관을 들고 다니다

종이책은 여러 권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다. 따라서 읽고 싶은 책이 곁에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자책은 자신만의 도서관을 들고 다닐 수 있다. 특히 책가방이 무거운 학생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필자와 같이 참조할 서적이 많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읽고 싶은 책이 없는 경우 즉시 구매하여 자신만의 도서관에 추가할 수 있다. 특히 킨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자책 서비스들이 클라우드에 기반하고 있기때문에 전용단말기 뿐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등에서도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

필자의 Kindle Library: Library는 클라우드에 존재하므로 어떤 기기에서나 접근이 가능하다.
필자의 Kindle Library: Library는 클라우드에 존재하므로 어떤 기기에서나 접근이 가능하다.

이런 편리함은 독서의 차원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거에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참고문헌을 찾아서 보려고 해도 불가능한 경우(즉 책이 도서관에도 없고 팔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세계의 모든 책이 내 손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독서가 새롭고 흥미로운 발견이 가능한 ‘끊임없는 여정’이 되었다.

 

더 이상 혼자 읽지 않는다

전자책은 단어찾기, 밑줄치기, 메모남기기 등 다양한 부가기능이 존재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더 이상 책을 혼자 고립되어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이책은 커피 한잔과 함께 고독을 즐기며 읽는 매체였고 읽다가 마음에 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밑줄쳐 자신만의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전자책에서는 밑줄이나 메모를 다른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는 독자들과 생각을 나누고 그들이 읽고 있는 다른 책을 추천받기도 하며 저자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을 중심으로 한 소셜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공개된 노트와 밑줄을 책에대한 평가와 함께 볼 수 있는 Kindle 사이트
공개된 노트와 밑줄을 책에대한 평가와 함께 볼 수 있는 Kindle 사이트

더 나아가 책의 형식도 지금처럼 순차적이고 긴(sequential and long) 모양이 아니라 네트워크화되고 인터렉티브한 (networked and interactive) 모양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David Weinberger, Too Big to Know, Basic Books, 2012]. 책이 어떻게 진화할 지에 대해서는 “책이란 무엇인가?“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외에도 종이책에 뒤지지 않는 가독성 등을 고려하면 종이책은 이미 사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이책의 사망과 함께 출판업계가 사라질 것인가? 그렇지 않다. 책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고 책의 콘텐츠를 담는 그릇(컨테이너)만이 종이에서 전자책 단말기 또는 태블릿 PC로 바뀌는 것이다(물론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책의 형식은 진화할 것이다). 따라서 사라지는 것은 종이책을 인쇄하고 유통하는 업체인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점, 출판유통업체, 인쇄소 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존 킨들과 같은 전자책 출판 플랫폼을 기반으로 책은 유통될 것이다.

 

우리나라 출판업계가 살아남으려면

CD시장과 DVD시장에서 음반사와 유통업체, 영화제작사와 배급사 등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출판사와 저자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철저한 준비와 전략이 필요하다.

 

전자책은 서비스이다

우선 전자책은 기기가 아니라 서비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와 출판사간의 불신 등으로 말미암아 현재 우리나라 전자책은 읽을 책이 없다. 수 만종의 전자책을 판매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소위 말하는 베스트 셀러는 판매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없이는 우리나라 전자책 서비스의 미래는 없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전자책 구매 경험의 개선이다. 아마존은 2007년 출시때 부터 책을 쉽게 구매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책을 사고 다운로드 받는 것이 어렵다면 전자책의 가치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함께 읽는 책 등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킬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야 한다

현재 국내의 전자책 시장은 한마디로 말해 파편화 되어 있다. 교보문고 샘, 출판협회의 크레마 터치 등 전자책 단말기업체에서부터 대형 서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경쟁자들이 한국의 아마존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들과 마찬가지로 전자책 유통 플랫폼도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에 가져온 충격이 출판업계에도 재현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애플의 아이북스나 구글 플레이가 가져온 충격(?)은 아마존 킨들이 가져올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규모의 경제를 지닌 전자책 플랫폼을 형성하여야 한다. 하나의 플래폼으로 통일하기 어렵다면 DRM free 포맷을 기반으로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방법도 고려하여야 한다.

빠른 시일내에 규모를 갖춘 국내 플랫폼이 형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는 아마존 킨들이나 애플의 아이북스와 같은 해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생존확률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아직 킨들은 한글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지는 않는다). 특히 해외플랫폼을 선택하는 경우 시장을 한글문화권으로 확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판매모델과 가격정책을 다양화하여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전자책도 여러가지 제도에 묶여 다양한 가격정책을 펼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자책은 종이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패키징과 가격정책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면 스스로를 묶고 경쟁하는 꼴이다. 예를 들면 챕터별로 구매하는 모델, 아마존에서 시도하는 교과서 대여모델, 음악/영화서비스에서 사용되는 월 구독 모델 등 다양한 판매모델과 가격정책을 시도하여 저자/출판사/독자 들이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교보문고의 샘의 경우 구독모델을 도입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독자에게 매력적인 모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수익 및 배분 구조를 다변화 하여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판매모델과 가격정책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익구조의 측면에서는 독자로부터 얻는 수익 이외에 광고를 기반으로 한 수익모델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광고를 기반으로 무료인 책도 가능할 것이다. 비용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저자/출판사/유통플랫폼 간의 수익배분방식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수익배분방식의 변화는 판매모델의 다양화와 더불어 이기주의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어 쉬운 일은 아니나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미국의 전자책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고 이 열기가 우리나라에 당장이라도 상륙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내 출판 및 유통업계의 흉내내기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아니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변화해야 한다.

 

관련 포스트

(이글은 2011년에 작성된 글을 현 시점에 맞게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글 : 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bit.ly/15eOTpR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