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리스너 (good listener) – 경청의 기술에 대한 단상

내 생각에는 리스닝 스킬의 개발 단계는 대략 4단계로 이뤄지는 것 같다.

첫번째는 fact gathering 이다.
즉, 남이 하는 말에서 중요한 사항들을 잘 알아 듣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약간의 유추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그 사람이 한 말을 잘 담아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수능 언어영역, 혹은 외국어를 배울 때 토플이나 토익같은 영어시험에서 측정하는 능력이 바로 이런 능력이다. 말하는 능력이나 쓰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 듣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무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이 능력조차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경우가 참 많다.

두번째 단계에서 발달하는 능력은 바로 상대방의 말의 허점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말이 안되는’ 것을 꼬집어 낼 수 있는 능력으로, 주로 회사의 중간 관리자들에게 발달하는 능력이다. 나쁘게 발달하면 남의 말의 꼬투리만 잡으려고 하는 쪽으로 발달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에 무슨 실수는 없는지 계속 덫을 놓고 기다리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상대방의 말에 논리적 헛점이 있는 경우에 이런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줄 수가 있다.
하지만 나의 관찰로는 나쁘게 발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가장 큰 이유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능력이 발달하면 스스로의 지적 능력을 과신하게 되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즉, 남의 논리에 허점이 보이는 일은 처음 겪어보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이 꽤나 똑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이 능력이 발달하면 조직내에 아무런 발전도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큰 사고도 나지 않는다. 즉, 보수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곳일수록 이 능력을 중시하는 중간관리자가 더 많을 수 있는 것 같다.

세번째 단계로 진화하게 되면 리스닝 스킬이 상대방의 말을 나의 논리로 leverage하는 능력인것 같다.
즉,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을 쏙쏙 흡수해서 내 논리에 끼워맞출 수 있게 된다. 이 진화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논리를 내 논리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한번 들어가게 된다. 즉, 상대방이 하는 말이 밑도끝도 없는 무논리가 아닌 이상, 나름대로의 이유와 추정이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논리를 나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나의 논리와 스토리를 강화하는데 사용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상대방이 하는 말이 틀렸다고 부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살짝 틀어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방이 A = B이고, B = C 라서 A= C 라고 이야기하면, 그게 아니고 B= C 일수도 있지만 B=D라고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에 A=D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상대방을 설득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D 인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리스닝 스킬의 진화단계는 상대방의 논리를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발전시켜 주는 것이다.
나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대화 상대의 입장에서, “zero-base”에서 이해한다. 그리고 그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채워주고,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강력한 논리로 할 수 있게 되고,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위의 네 단계의 리스닝 스킬이 단계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4번째 단계의 리스닝 스킬을 타고난 사람을 간혹 보게 된다. 여간 부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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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잘 듣는 것 만큼 중요한 리더십 덕목도 없다. 결국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은 리스닝 스킬이 아니라 리더십 스킬이란 얘기다. 솔직히 나는 아직 2-3단계를 왔다갔다 하는 리스닝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4단계로 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다.

최근들어서 ‘남의 이야기를 제로 베이스(zero-base)에서 들어주기’ 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이 말을 실천하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 노력이 결실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쉽지 않은 이유는 두가지 때문인데, 첫번째는 참을성, 두번째는 버릇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참을성인데, 상대방이 조금 느린 논리전개를 보이거나, 핵심부터 바로 말하지 않으면 종종 조급해지곤 한다. ‘긍정은 성숙함의 상징’이라고 하던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한다.

두번째는 버릇이다. 예전회사에서부터 ‘모르면 그냥 물어봐라’라는 것이 길들여져서 그런지, ‘이건 무슨 뜻이냐?’고 묻기 일수다. (외국계 회사의 direct communication의 습성 때문에 그런것 같기도 하다) 즉,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냐?’ 라든지 ‘이건 무슨 뜻에서 하는 이야기냐?’ 라고 묻는 것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들릴 여지가 있어서, 일단 그 사람 자리에 서서 왜 그런 논리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그냥 이게 무슨 뜻인지 묻는 것 뿐인데, 듣는 사람은 자기 논리를 공격한다고 느끼는 것이 나에게도 느껴진다.

결국에 듣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참을성을 기르면서, 장기적으로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goo.gl/wDcZ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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