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감옥의 시대_석호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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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감옥의 시대이다. 석호필 열풍을 일으켰던 웬트워스 밀러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후 형과 함께 탈옥했으며, 현실에서도 탈옥한 사람들은 영웅으로 회자된다. 물론 감옥에 간다는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감옥은 매력적인 장소이다. 육체를 제한함과 동시에 탈출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모순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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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석호필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아니, 더 심하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플랫폼 감옥으로 들어간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는 게임플랫폼과 PC용 버전을 만들어 사용자를 묶어버렸고, 페이스북은 타 웹사이트에 자사의 로그인 서비스를 연동시켜 사용자 정보를 묶어버렸다. 네이버 역시 첫 화면부터 방대한 주제의 컨텐츠들로 사용자들이 네이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키보드를 봉쇄한다. 하나의 몸이 서비스 플랫폼의 감옥에 묶여있는 것이다.

모바일은 더 심하다. 첫 화면을 잡는 자가 승리한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모바일 서비스 개발사들은 엄지족들의 잠금화면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음의 버즈런처, 네이버의 도돌런처. 그리고 페이스북 런처까지. 개발사들의 노력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심지어 이제는 잠금화면을 해제하지 않고도, 대부분의 기본 액티비티를 실행 할 수 있게 되었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사의 서비스에 사용자들을 묶어버린 것이다. 사용자는 느끼지 못한다.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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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감옥의 역사가 어떻든 그 시작은 웹이었다. IT산업에 ‘플랫폼’이라는 구체적인 정의가 나오기 이전은 순수한 ‘웹’의 세상이었다. 미국은 야후, 알타비스타가 있었고, 한국은 심마니, 엠파스, 그리고 네이버가 있었다. 초기 인터넷 시대엔 사용자를 모으는 것보다, 웹을 효과적으로 크롤링 해올 수 있는 로직이 중요한 문제였다.

포털이 방대한 인터넷의 정보를 크롤링 한 이후엔, 사용자 트래픽이 이슈가 되었다. 포털은 너나 할 것 없이 웹페이지의 시작화면을 자사의 포털(또는 서치 엔진)로 설정하기 위해 팝업버튼을 사용자에게 노출했다. Microsoft는 윈도우의 독과점 지위를 이용한 explorer 번들을 끼워 파는 행위로 법적 문제까지 경험했다.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모자이크, 불여우로 통용되는 파이어폭스, 그리고 구글의 큰 축을 담당하는 크롬 브라우저 역시 사용자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일련의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사용자의 첫화면을 노리는 존재는 포털뿐만이 아니게 되었다. 동영상의 황제 유투브, 또 하나의 국가 페이스북, 사진의 성지 인스타그램, 재잘거림의 트위터. 사용자들은 더 이상 포털이나 구글과 같은 사이트들만 첫 화면으로 설정해 놓지 않는다. 자극적인 뉴스보다 지인의 일상이 더욱 궁금하고, 내가 보고 싶은 동영상이 우선이다. 오늘의 핫이슈, 타인들의 블로깅은 그 다음이다. 첫 화면을 우리의 의지로 설정 한 것인지, 서비스 기업들의 농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플랫폼 감옥들에 묶여버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자사의 서비스에 사용자를 묶는다는 개념은, 단순히 첫 화면만 묶어버린다든가, 특정 브라우저를 이용하게 하는 1차원적인 개념이 아니다. 왜 ISP는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묶어야만 하는 것일까. 트래픽이 힘이고 돈이기 때문이다. 포털이 사용자를 묶으면 사용자의 컨텐츠 소비 데이터를 모을 수 있으며, 브라우저 역시 사용자가 웹을 이용하는 패턴을 누적 할 수 있다. 데이터는 힘이 되고 돈이 된다. 사용자는 광고대상이 되고, 사람이 많은 곳에 광고주가 몰려온다. 또한 자사의 플랫폼(브라우저든 포털이든)을 이용하여 새로운 광고 수익을 창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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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를 모으기 위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둘중 하나에 집중했다. 브라우저를 만들던지 포털을 제공하든지. 하지만 구글은 세상의 모든 사용자들을 구글로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시행했다. 검색 시장에서의 선도적 지위를 바탕으로, 검색 데이터뿐만 아니라 웹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모든 행동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크롬을 만들었다. (물론 Microsoft의 bing도 있지만… 흠흠)

chrome

브라우저와 검색 엔진을 모두 갖고 있기에 구글은 ‘사용자를 플랫폼에 가둬버리는 행위’를 세련된 전략으로 변모 시킬 수 있었다. 이미 윈도우를 기반으로 한 MS의 디바이스가 세계에 퍼져있었고, 그곳엔 익스플로러가 필수적으로 설치되었다. 익스플로러의 브라우저 점유율 90%. 구글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익스플로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다행인 것은 검색 분야에선 구글이 최고이기에 홍보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점유율을 늘려줄 수 있다. 따라서 세계 1위 검색엔진 구글닷컴을 바탕으로 크롬 확산에만 집중 할 수 있었다. 구글은 크롬에 집중했고, 세가지 전략으로 사용자들에게 다가갔다.

 

#1. 크롬 웹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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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s엔 앱스토어, 안드로이드엔 구글플레이가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의 유저를 늘리는 것과 같이 구글은 크롬 기반 유저를 늘리기 위해 크롬 자체 웹스토어를 만들었다. 어플리케이션을을 늘리기 위해 third party에게 플랫폼을 오픈했고 개발사들은 구글의 장단에 맞추어 크롬기반의 앱을 개발했다. 크롬의 레이아웃을 변경해주는 앱이 만들어졌고, 모바일 기반인 인스타그램을 크롬에서 체크 할 수도 있다 데이터의 저장, 전송, 심지어 마인드맵까지 크롬 내에서 해결 할 수 있게 되었다.

#2. 이기적 유전자, 폐쇄성

또한 구글은, ‘폐쇄 정책’으로 사용자들이 크롬을 사용하게끔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애플은 폐쇄진영, 구글이 개방 진영을 대표한다고하지만 구글 역시 폐쇄 전략을 시행하는 기업이다.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옥스퍼드대학교의 석좌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 이런 내용을 포함했다. ‘인간이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이유는, 그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동은, 유전자가 이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이익 추구에 불과하다.’
구글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론 오픈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그 목적은 웹과 앱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사용자가 크롬이 아닌 다른 브라우저로 gmail에 접속하면 ‘크롬 브라우저 추천 메시지’를 보여주었고, 구글 독스를 이용할 때도 역시 크롬을 사용 할 때 효율성이 높아지게 만들어 놓았다. 간략한 알림이지만, 멘션을 접한 사용자들은 ‘더 좋은 서비스’를 이용 할 수 있다는 말에 크롬으로 이동했다.

#3. 크롬북(SW + 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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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구글은 크롬북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크롬북은 말 그대로 크롬 기반의 노트북이다. 윈도우나 산사자처럼 크롬이 OS로 깔려있는 만큼 모든 활동은 웹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웹브라우저는 크롬이다. 익스플로러와 사파리는 들어올 자리가 없다. 사용자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쓰기 위해 인스톨 파일을 다운 받고, 클릭을 하고, 저장 폴더 위치를 지정하고 셋팅을 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크롬 웹스토어에서 원하는 앱을 선택해 인스톨 버튼만 클릭하면 모든 활동이 끝난다. 크롬북을 이용하면 웹의 모든 활동들이 크롬 브라우저에서 이루어지기때문에, 크롬의 웹 점유율이 높아지는 동시에 사용자는 크롬 웹스토어를 이용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니, 이용해야만 한다.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겠지만, 구글은 ‘크롬북’을 판매하는 순간 크롬에 묶여진 또 다른 사용자를 획득한 것이다.

 

결국 크롬은 사용자들이 웹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요소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창살을 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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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망치지만, 우리가 얼마나 감옥에 끌려가고 있는지 말하기 위해 구글 크롬을 끌어왔다. 우리는 감옥에 살고 있다. 이브가 사악한 뱀의 유혹에 버티지 못하고 사과를 물었듯이, 우리 역시 감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유혹에 넘어간다.

지하철을 타면 80%이상의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내릴 때까지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게임을 하고 있고, 메신저를 하고 있다. 한창 책을 읽고, 한강을 바라보고, 길거리를 둘러보아야 할 나이대의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스마트폰을 얼굴에 붙이곤 터치를 하기에 바쁘다. 길을 걷는 사람들도 앞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주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곤 스마트폰을 바라본채 그냥 걷는다. 반대쪽에서 사람이 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정신은 플랫폼 감옥에 있는 것이다. 그런 광경을 바라볼 때면, 나는 이러한 상황이 옳은 것인 것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석호필이 되야한다. 형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유의지(free will)로 감옥에 들어가서 형과 함께 당당하게 감옥을 탈출하듯이, 언제든 IT세상에 당당히 걸어 들어가고, 나와야 할 때 나올 줄 알아야 한다. 플랫폼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석호필은 감옥을 탈출 할 수 없게 된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시즌이 이어질 수 없다. 플랫폼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시즌은 계속되어야 한다.

작성자 : AJ

블로그 : http://daylatte.com/?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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