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정신의 방] 5화. 등잔과 등대

지난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기능은 동일하지만 계속해서 바뀌는 비즈니스 모델. 그 속에서 딱 맞는 키워드를 찾았다. 근데 맞게 찾은거야?

네이트온. 원조 국민메신저다. 네이트온 없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카카오톡으로 세대교체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늦게나마 네이트온UC로 재탈환을 노려보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실패했다.

Scene15. 등잔 밑

나는 그 네이트온UC를 만든 기획자를 알고 있었다. 네이트온 PC버전 시절부터 5년넘게 네이트온을 갈고 닦았던 대선배였다. 1년 쯤 전에 트위터를 통해 알게됐고, 짧은 시간에 비해 사석에서만 3-5번 만날 정도로 교류가 잦은 편이었다. 나와 정확하게 같은 분야의 기획자를 만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사부라고 부를만큼 친하게 지내오고 있다.

그렇다. 내가 찾는 사람이 등잔 밑에 있었다. 난 도대체 왜 UC 라는 뜻에 대해서 왜 물어보지 않았을까. 내 아이템 얘기를 자주 했었더라면 도움을 좀 더 일찍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쨋든 대뜸 연락부터 했다. 당장 만나자고 졸랐다.

나: UC가 뭐예요?
사부: 통합커뮤니케이션(Unified Communication)의 뜻이지
나: 헐…
사부: 갑자기 왜 물어보는거야?
나: 아니 제가ㅠㅠ 포지셔닝이 인맥관리 쪽인줄 알고 있었는데, 하려던게 UC인것 같아서… 그것도 우연히 알게 됐다며. 근데 UC라는게, 통합인데, 모바일에서만 통합하는 것도 통합인가 싶어요.
사부: 그것도 통합이 맞지. 원래 네이트온UC도, 문자와 메일을 아우르고, PC에서의 경험들을 계속 이어주려고 했던 거니까.
나: 그런데 네이트온UC는 왜 실패했어요?

선배가 실패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대기업이다. 수많은 검증과 검토를 거쳐야만 겨우 사업승인을 하는 대기업이 자본과 인력으로 못했던 일이라면 스타트업이 못한다고 생각했다. 선배 입장에서도 어느덧 전 직장의 이야기여서 자세한 내용을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 회사(대기업)에서 바라봤던 UC의 시장과 가능성은?
/ UC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은?
/ 안드로이드 서비스와 아이폰 서비스의 차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 원래는 어떤 기능들을 넣으려고 했었는지?
/ 그때와 지금은 시장이 어떻게 변해있는지?
/ 도대체 뭘로 돈을 벌 수가 있는지?
/ 연락처 서비스로 UC플랫폼을 만드는 것에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 내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은 무엇인지?
/ 유닛은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인지?
/ 우리 팀은 이 서비스를 하기에 적합한 인재들인지?

장장 5시간동안 그간의 역사에 대해서, 서비스 기획자로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서 하나 하나 캐물었다. 거의 취조급이었다. 하나 잡고 뽑으니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딸려나왔다. 내가 풀지 못했던 시험지의 정답해설지를 보는 듯한 짜릿함마저 들었다.

나: 근데 (하이)테크기반 서비스는 아니여서.. 내놓으면 금방 쫓아올 것 같아요.
사부: 연락처를 가지고 서비스한다는 것 자체가 스타트업 몇명이서 하기 힘든 서비스야. 개발자 수 십명이 많이 고생했어. 해보면 알아 ㅋㅋ
나: ㅋㅋ??
사부: 대기업도 쉽게 뛰어들기 힘든 서비스 영역이니까, (아무도 안하는 이 때) 퍼스트무버가 된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사실, 이 때는 이 말이 와닿는 때가 아니었고, 우리는 잘 극복할 수 있을거라 믿었고, 하는 중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요즘 들어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연락처 하자고 해서 미안하다 (ㅠㅁㅠ)/)

Scene16. 어둠 속의 등대

B2C서비스에 있어서 고객과의 접점에 있고, 트렌드를 몸으로 느끼고, 사용자 반응을 보며 멘탈이 깨져본 사람이 바로 기획자와 운영자다. 엔드유저포인트. 사장은, 본부장은, 그룹장은 보고서로 받아보고 대략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기획/운영을 했던 사람은 그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있다. 연락처 관리 앱을 1년동안 운영했던 내가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 서비스를 하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 멘토는 내 길을 먼저 걸어가 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만날 수 있는 ‘멘토’라는 사람들은 나의 길을 먼저 걸어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냥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내 분야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질 않고, 잘 알지 않으니 다른 지도를 주는 것이다. 정글탐험가에게 북극의 빙산을 가이드 하라고 할 순 없다. 셰르파와 같은 현지 가이드가 필요했다. (시간과 정신의 방 4화. 크레바스 중)

나는 내 진짜 멘토를 찾았다. 온갖 풍파를 다 겪어본, 그래서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세르파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때 이후로는 명함 뿐인 멘토를 만나고 있다면 그만 만나도 좋다고 말하곤 한다. 멘토는 고민될 때, 헷갈릴 때, 힘들 때, 언제든지 전화해서 물어보고 불러내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요즘 때가 좋은건 다들 SNS를 한다. 페이스북의 과거애인의 친구까지 찾아주는 능력에 감탄할 때가 있는데, 동종업계 같은 아이템을 다룬 선배 한 명 못찾을까. 다행스럽게도(?) 대기업에서는 스타트업이 하던 서비스를 비슷하게 했다가 잘 접기도 한다.(ㅋ)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실무자를 찾아서 왜 접었는지 물어보자. 온라인 채팅이나 메일보다 오프라인으로 끌어내자. 얼굴보며 물어보면 답을 안해줄 수가 없다. 대뜸 만나자고 하면 대부분 거절할수 있으니 평소에 좀 네트워킹을 잘 쌓아두고, 필요한 찰나에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사회학 이론에서는 약한 연결의 힘(The strong of weak tie)라고 부른다. 가까운 친구들(strong tie)보다 먼 지인들(weak tie)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고, 의외로 도움이 될 때가 많다는 이론이다. 조금만 검색해보면 관련글이나 경험담도 쉽게 볼 수 있다.

http://youtu.be/mikl7rBNry4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를 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큰 일을 성취하는 사람들과 그런 일을 단지 꿈꾸기만 하는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반드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via 스티브잡스

스티브잡스도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잡스보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불쌍한 중생들인데, 요청할때 모른 척 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도움을 먼저 청해야겠지만 말이다.

Special Thanks to YOU.

글 : 강미경
출처 : http://goo.gl/0FhO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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