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야, 금융의 미래를 부탁해

지난 11월4일 국회 대정부 질의 시간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IT와 금융거래 간 접합면이 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중장기 과제로 고민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금융기술(핀테크)의 전폭적인 수용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또 다른 소식은 중국이 알리바바를 비롯한 5개 민간 기업에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지난 10월 중순 기존의 금융체계와 달리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 자회사를 차렸다.

금융시장에서 개인투자자를 의미하는 ‘개미’라는 단어를 사용해 자회사 명칭도 ‘앤트 파이낸셜 서비스 그룹’으로 지었다. 펑레이(Lucy Peng) 앤트 파이낸셜 최고경영자(CEO)는 “앤트 파이낸셜은 소기업 및 소상공인과 개인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금융을 출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2년 SK텔레콤, 롯데 등 대기업과 안철수연구소, 이네트퓨처 등 벤처기업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브이뱅크(V-Bank)라는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하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첨단 금융을 시도하기 좋은 구도로 보였으나 대기업의 편법 은행업 진출로 의심받기에도 충분했다. 당시 이 시도는 은행 설립을 위한 최소 자본금 확보에 실패하면서 무산되었다.

2008년에는 금융위원회가 인터넷 전문은행 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때는 금융실명제법에서 직접 대면을 통해 실명을 확인토록 한 규정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이미 검토했고 시도도 해보았고 당시 사회 분위기에 금융 당국의 의지박약이 더해져 첨단 금융 시대가 당장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뾰족한 수를 쓰지 못했던 셈이다.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다시 추진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당장 시행한다 해도 세계적인 ‘핀테크’ 트렌드에 한참 뒤처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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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과 인터뷰 중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가운데). 알리바바는 10월 중순 금융 자회사를 차렸다. 중국은 이번에 알리바바의 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면서 우리나라보다 첨단 금융시장에 먼저 뛰어들었다. 중국이 자신감 있게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10년 여 동안 인터넷 전문 금융업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4년 3월 기준으로 미국 10대 인터넷 전문은행의 총 자산은 4400억 달러에 달하고 총예금은 3039억 달러에 이른다. 전체 상업은행 시장의 3%에 달하는 규모다. 일본 역시 2000년부터 일찍이 인터넷 전문은행을 허가해 모두 6개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성업 중이다. 유럽 역시 영국에서 1995년 에그뱅킹(Egg Banking)이 시작된 이래 2002년 중반까지 관련 업체 수가 35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한국은 금융의 미래를 어디에 물어보고 있나

이미 중국은 알리바바의 온라인 금융·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를 통해 하루 1조7000억원씩 거래되는 것을 보며 거래 안정성이나 규모 면에서 좀 더 폭넓은 금융 서비스, 즉 은행업을 진행해도 문제가 없으리라 계산했을 것이다.

중국 당국으로서는 이런 전자금융 사업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통화와 자본 흐름을 선점하고 미래의 국제경제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꿈을 꿀 법도 하다. 특히 금융거래에서 시스템의 안정성, 충분한 규모, 보편적 본인인증 서비스가 결합될 수 있는 모바일 환경이 충분히 만개한 지금이 시장에 뛰어들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렇게 거대 중국은 개미에게 금융의 미래를 맡겼는데, 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은 여전히 금융의 미래를 과거의 소수 기득권에게 물어보는 형국이다. 

글: 그만
원문: http://ringblog.net/2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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