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위한 ‘투자와 사채’ 이야기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나는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서만 일했다. 동시에 기획자이기도 하면서 개발자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덕분에 스타트업계에 대한 이해도 있고, 비개발직군에 대한 이해도 있고, 개발직군에 대한 이해도 있다. 그래서 어떤 개발자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만한 역할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냥 지인 중 한명이라면 공감대가 형성이 안되니 얘기를 할 이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조언도 해줄 때도 있고, 그런 이야기들을 어디가서 흘리지도 않는 편이니까.

그래서인지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개발자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오픈된 공간에서, 혹은 오프더레코더의 일대일 미팅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중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이야기는 이해가 안가는 기획과 터무니없는 개발 기간에 대한 토로다. 물론 내가 기획자이니 도대체 기획자라는 종특은 어떤 생각으로 그런 기획서를 내놓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일 수도 있고, 귀 닫고 있는 기획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물어보는 것일 수도 있다.

투자

시간을 두고 좀 더 이야기를 깊게 나눠보면 결국엔 그 뒤편에는 < strong >투자라는 키워드 다른말로 투자자의 입금 가 자리 잡고 있음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게 투자란… 아. 말해 무엇하랴. 나는 투자를 받지 못했고,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투자를 받았다면 내 회사의 사주가 조금 달라질 수 있었겠지. 돈 냄새를 맡을 줄도 모르면서 경영자의 마음보단 사용자의 만족 이런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무자의 마음이었기 때문이ㄱ…ㅣ는 하지만, 어찌됐건 대부분 회사는 투자 없이 생존하거나 성장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고객, 더 높은 성장, 더 똑똑한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투자는 피할 수 없는 성장 계단과도 같다. 지금 당장 얼마의 투자만 있다면 어떤 것을 얻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는 경영진들은 큰 투자를 받아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영혼까지 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 내 영혼은 산다는 사람이 없었어!

결정

하지만 투자를 앞두고 자신의 비전과 뚝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밸류에이션을 산정하거나 투자자와 딜이 클로징 되기 전, 혹은 IR을 준비하기 위해서 경영진 관점에서 선택하는 것 중 하나는 개발팀을 갈아 마시는 것이다.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처럼 재무적인 성장이나 폭발적인 사용자 증가를 약속하기는 쉽지 않으니, 서비스 개발이나 개선이 담긴 확실한 청사진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일정을 잡게 되고, 제대로 된 기획과 제대로 된 검토와 제대로 된 설계와 구현의 단계를 거칠 시간도 없이 런칭 시점을 투자 시기에 맞물려 픽스시켜놓고, 그때부터 기획이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커리어를 걸고도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생각없이 진행된 기획은 모든 것의 씨발점이 된다. (시발점의 오타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씨발이 맞다) 좀 더 본질에 고민할 시간이 없고, 시간에 쫓기는 기획은 처음에는 분명 그럴 듯 해 보인다.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의 끝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이것만 조금 당기면 실타래가 막 풀리는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치열한 고민 없이 잡아당긴 기획이라는 끈은 실타래를 더 꽁꽁 엉키게 한다.

부채

그럼 이제 집중… 과연? 집중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그 기획서만 보고도 떠오르는 물음표가 백만 개일 텐데. 하지만 경영진의 푸시로 인해 개발팀은 밤을 새워가며 개발에 매달리게 된다. 수많은 예외처리, 고려해야 할 사항들, 당장 오픈을 위해 생략한 핵심피처들…. 빠른 완성을 위해 급하게 쌓아 올린 뼈대들은 기술 부채가 된다.

어제의 코드가 오늘의 레거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변하는 IT업계의 특성,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가 만든 결과물은 업계표준퀄리티라고 봐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성숙한 혹은 규모가 있는 서비스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유지보수의 개발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서비스는 당연히 레거시 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아니 레거시가 되어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기술부채를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며 서비스가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이 될 때도 있다.

사채

납득이 안가는 기획과 터무니없는 개발일정은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채가 사채가 되는 과정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소개해주려고 한다.

당장 내일의 투자가 중요한 대표는 스텝바이스텝 개발을 요구하는 코파운더에게 까라면 까를 시전하고, 손발이 되어주던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투자라는 목표에 자신만의 색을 잃어버리고 산출물에 아무런 영혼도 철학도 담지 않는다. 설계랄 것도 없이 화면의 나열뿐인 기획서에 실망한 개발자는 설득하고 설명해야 할 노력도 아깝다고 생각하며 developing이 아닌 coding만 한다. 치밀한 설계와 뼈대가 없는 채 서비스는 출시되고, 리뷰는 ‘업데이트되더니 앱이 엉망이 됐네요’라는 피드백으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사용자는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빠져나간 이탈률을 다시 돌리기엔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이 든다.

전화위복이라고, 통장 두둑이 투자금도 들어왔으니 사람들을 갈아서 만든 서비스를 재건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철학도 비전도 설득도 없는 경영진의 전략에 실망한 개발자들은 등을 돌리고 퇴사를 선택하고 만다. 요즘 이쪽 업계가 어디를 가도 개차반이더라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과 다시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는 않다. 떠나는 이유는 단지 그뿐이다. 퇴사 이유를 밝히지도 않는다. 잃어버린 신뢰. 투자금은 그렇게 비어버린 포지션과 레거시를 개선하기 위해 더 높은 경력과 더 많은 연봉의 실력자를 찾아야 하고, 서비스 개선은 계속 늦어진다.

영업비용과 마케팅으로 사람들을 계속 몰아오지만, 밑 빠진 독을 메꾸는 속도보다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라 투자금도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바닥이 드러난 투자금을 메꾸기 위해 다시 서비스를 개간하려 하고, 모든 상황은 점점 악화될 뿐이다. PR 담당자를 뽑아 언론사나 매체에 이미지 메이킹과 리브랜딩을 시도하지만, 이미 업계엔 소문이 파다하여 개발자들은 회사의 채용공고에 관심이 없다. 경영자만 모를 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당부의 말

몇 년간 일하면서,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면서 이제까지 들었던 이야기들을 한곳에 모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의 이야기는 진짜이기도 하고 내가 지어낸 허구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들었던 사연의 주인공들 중 누군가는 팀이 깨졌고, 누군가는 퇴사를 준비중이며, 누군가는 번아웃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있긴 하다.

그래서 분명히 이 글을 본 독자 중에 누군가는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내가 그래서 회사를 나왔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되도록 공유는 참는 것이 좋겠다. IT업계, 특히 스타트업은 너무 좁아서 정말 어떻게 어떤 인연이 닿을지 모르고,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창업해서 대표자가해자가 된다거나?) 욕을 두 배로 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난 이 글에 공감할 수 없어. 우리 팀은 이렇지 않아’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본인이 공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팀의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자기 손으로 자신을 바보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되도록 공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회사가 그렇다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가깝고 먼 사람들에게서 나온 수많은 사연이 모여 쓰인 글이다. 혹시라도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직장 동료님들은 공유 안 하셔도 된다. 회사 오래 다니고 싶어요

그냥 천천히 읽어보고, 잠시지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글 : 강미경
출처 : http://goo.gl/bxrm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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