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비하인드 스토리 #9] 진정한 실리콘밸리를 알고싶다면 HBO의 실리콘밸리를 봐라

미국 스타트업 캠블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희승 님이 국내에서는 잘 모르는 실리콘밸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벤처스퀘어에 기고해 주기로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체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캠블리(Cambly)의 이희승입니다. 여러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의 많은 분이 HBO의 티비시리즈 ‘실리콘밸리’(The Silicon Valley)를 잘 모른다고 하셔서 오늘은 이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했으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

지난 5월 샌프란시스코 본사로 출장을 갔을 때, 이번 겨울 YC프로그램을 통해 테크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하게 된 변호사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갑자기 “HBO의 ‘실리콘밸리’ 봤어? YC프로그램에 포함시켜서 모든 창업자가 의무적으로 보도록 해야 할 것 같아. 너무 교육적인 것 있지!”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당시 시즌3가 새로 방영되고 있던 참이었고 그 친구 역시 새로운 업계를 알아가고 있던 중이라 과장된 면이 있었지 싶습니다. 하지만 회사 동료나 친구들도 비슷한 얘기를 할 정도니, 정말 실리콘밸리의 삶이 궁금하시다면 꼭 한 번 정주행하시길 바랍니다. 박스의 창업자 에론 레비가 이렇게 말할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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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anny Silic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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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골짜기 (uncanny valley)는 안드로이드나 컴퓨터 그래픽이 놀랍도록 실제와 흡사하면서도 실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때 느끼는 감정에 관한 로보틱스 이론입니다. 아마 HBO의 ‘실리콘밸리’를 볼 때 테크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감독 알렉 버그 (Alec Berg)와 마이크 저지 (Mike Judge)는 현실감 있는 연출을 위해 트위터의 창업자 딕 코스톨로 (Dick Costolo)를 포함한 250여 명의 테크업계 관계자를 컨설턴트로 고용했고, 10명의 작가 역시 전 스타트업 전문 기자와 전 구글 HR 직원 등 업계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타트업계 인사이더들의 통찰력 있는 견해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인 만큼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어 스냅챗의 CEO 에반 스피겔 (Evan Spiegel)은 “이 쇼는 코미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훌륭한 제작진과 방대한 사전 조사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피스’나 ‘빅뱅이론’ 등 어쩌면 비슷한 인물들을 다루는 시리즈들은 잘 만들어진 코미디에 머무는 반면, ‘실리콘밸리’는 ‘소름끼치게 현실적이다’라는 평을 받고 있으니까요. 제 나름대로 그 이유를 해석해봤습니다.

놀랍도록 현실적인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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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극 중 인물들은 실존 인물을 본떠 (혹은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괴짜 억만장자 피터 그레고리 (Peter Gregory) 같은 경우, 피터 틸(Peter Thiel)을 모델 삼아 만들어진 캐릭터인데 실존 인물이 더 괴짜스럽다고 합니다. 피터 틸은 극 중에서처럼 실제로 Arallon이라는 작은 인공 섬나라를 만들었으며, 대학은 돈 낭비라는 TED 연설을 한 후 대학을 중퇴하는 학생들에게 $100,000의 장학금을 주는 Thiel Fellowship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실리콘밸리’를 본다면 어떤 것이 실제이고 어떤 것이 회화화된 것인지 혼란스러워질지도 몰라요. 각 인물에 대한 분석은 이 포스팅에 가면 자세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인물들뿐만 아니라 업계의 일반적인 현상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풋볼플레이어 같은 성격의 프로그래머들을 일컫는 신조어 브로그래머 (brogrammer = bro+programmer)도 여러 형태로 실존하고요, 사업 아이템만 많은 원트러프러뉴어(wantrepreneur =want+entrepreneur)는 한국 스타트업계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당연히 미국에도 있구요. 회사가 인수된 후 제대로 통합되지 못해 주식이 귀속될 때까지 놀고 있는 rest-and-vest 또한 비슷한 케이스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빅헤드 (Big Head)는 특별한 케이스이지만요.

실리콘밸리를 열광하게 한 디테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보헤미안적 마인드에 가려진 자본주의를 풍자한 각본, 그리고  실제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의 특징을 잘 살려낸 캐릭터도 이 시리즈의 인기에 한 몫 했지만, 실리콘밸리의 테키들을(techies) 열광케 한 것은 소품, 인테리어,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숫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버그와 저지는 이 시리즈의 시청자들이 화면 속 컴퓨터 스크린에 말도 안 되는 코드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Reddit이나 Quora 같은 사이트에서 신랄하게 비판할 사람들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썼던 거죠. 시즌1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압축 알고리즘 역시 스탠포드의 공학 교수 타시 와이즈만 (Tsachy Weissman)과 함께 가설을 세우고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에 관한 논문까지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각본 속 회사 ‘파이드파이퍼’를 크런치베이스에 등록하고 웹사이트까지 만들었습니다. 정말 고객이 누군지를 제대로 아는 것 같아 제작진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한층 더 들어가서 대사 속에 녹아있는 텀시트나 밸류에이션, 회사의 자본 구조 등 건조하기 짝이 없는 계약 조항등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물론, 웃음 포인트는 별거 아닌 듯 $10M (약 115억 원)을 10만 원 수표 취급한다는.. ㄷㄷ) 이런 특정 에피소드와 관련된 세부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깊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실리콘밸리의 반응은?

첫 시즌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도 첫 시사회에서 ‘극 중 어떤 캐릭터도 진짜 개발자가 아니다… 개발자들이 괴짜이긴 하지만, 다른 종류의 괴짜다.”라고 말하며 비판했다죠. 주변에서도 시즌1은 그렇게 호응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자신을 본뜬 캐리커처를 등장인물로 삼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희화화시킨다면 누구든 조금은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풍자와 희극을 통해 저지와 버그가 실리콘밸리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는가?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시즌 2의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말도 안 되는 괴짜들이 힘을 합쳐 결국엔 해냅니다. 단 한 명의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든 복잡한 시스템을 예술적으로 구현해내는 것이든 빌리언 달러 컴퍼니를 만들어가는 것이든ㅡ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내는 괴짜들이 모여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니까요. 그래서 본사에 출장을 갈 때마다 제레드 (aka 도날드 & OJ)가 말하듯 되새깁니다:

“It’s magical.”

마지막으로 몇 마디만 더 보태겠습니다. 다음 주 홍대에서 해외취업에 관한 간단한 세미나를 진행하게 됐는데요. 관심있는 분들은 온오프믹스에서 찾아보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그럼 조만간 다른 글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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