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 시대를 준비하는 자세

옥스퍼드사전은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다. 이곳이 지난해 뽑은 2016년의 단어는 탈진실(post-truth)이다. 탈진실이라는 말의 사용 빈도는 지난해 전년대비 무려 2,000%나 급증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해 6월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할 당시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당시였다고 한다. 페이스북의 경우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광고 네트워크를 통해 거짓 뉴스를 표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탈진실을 대표하는 가짜 뉴스, 거짓 뉴스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이다.

소셜미디어로 확산되는 거짓 뉴스=사실 이런 지적이 지난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했던 2014년 전 세계 10대 트렌드에 따르면 온라인에서의 오보 확산(The rapid spread of misinformation online)이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에 유언비어나 가짜 뉴스, 음모론 등 다양한 정보가 가득하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런 정보는 왜 확산될까.

소셜미디어는 구조상 사용자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최적화되어 있다. 소셜미디어 자체가 그렇다고 정보의 선악을 판별하거나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거짓 뉴스가 확산되기 쉬운 성질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한 실험에선 이탈리아 페이스북 사용자 230만 명을 대상으로 지난 2013년 선거 시즌 조사를 실시했다. 19만 개가 넘는 게시물과 2,300만 개가 넘는 좋아요, 댓글 440만 건 등을 통해 페이스북 사용자가 가짜 정보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진짜든 가짜든 정보 자체의 신뢰도가 화제가 되면서 퍼진 시간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시 말해 소셜미디어 상에서 화제가 된 뉴스는 내용 자체가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페이스북은 뉴스피드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거짓 뉴스를 가려내는 시범 서비스를 지난해 연말 실시하기도 했다. 미국 대선 이후 거짓 뉴스의 출처로 페이스북이 지목을 받으면서 비난을 받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려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SNS 시대 이전에도 있었다=하지만 이런 거짓 뉴스의 문제를 단순히 소셜미디어의 성격상 발생했기 때문이라고만 얘기할 수는 없다. 이유는 주요 미디어를 통한 거짓 소식이 이전에는 없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 매체가 힘을 가졌을 때에도 수많은 거짓 뉴스가 지면을 장식했다. 미국에선 박쥐와 인간이 반반인 배트보이가 FBI를 잡았다거나 심지어 힐러리 클린턴이 외계인 어린이를 발견해 입양했다는 보도가 1990년대 나오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인터넷에 올라가는 광고가 웹상에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추적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방문했다면 전혀 관계없는 뉴스를 읽고 있을 때 꽃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 광고가 표시된다.

알고리즘을 제공하는 측에선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페이스북을 이용할 때에도 이런 추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 네트워크를 통해 거짓 뉴스가 표시된다. 다시 말해 신뢰할 수 있는 원본인지 여부를 알 수 없는 기사가 SNS 등 개인 공간에 표시되는 것이다. 거짓 뉴스가 지금까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광고로 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새로운 문제라면 문제인 것.

앞서 밝혔듯 지난해 가짜 뉴스에서 눈에 띈 건 미국 대통령 선거다. 한 조사 결과 거짓 뉴스 1위는 도널드 트럼프를 옹호하는 내용, 2∼5위는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반대 내용이었다고 한다. 거짓 뉴스가 대선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자유주의자의 관심을 모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널리즘에 몸담고 있는 사람 중에는 거짓 뉴스 때문에 전 세계가 불안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실제로 힐러리 클린턴에게 타격을 준 건 가짜가 아닌 진짜 이야기였다. 지난 2016년 7∼9월 사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기사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건 이메일 문제였다. ABC나 NBC, CBS 등 미국 내 주요 TV 뉴스 프로그램이 다룬 주요 주제도 단연 이메일 문제였다.

힐러리 클린턴을 무너뜨린 건 진짜 뉴스였다=선거전에서 대립하는 양 진영에는 모두 뛰어난 리포터가 있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찌를 수 있게 조사 내용을 발표한다. 인원 구성상 기본적으로는 대통령 후보 2명은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포터 수가 같다면 확보한 조사 내용도 거의 비슷할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문제가 된 건 이메일 문제와 클린턴 재단 의혹 2개였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항상 이 2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이 된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이보다 훨씬 많은 문제가 생겼다. 다시 말해 한 가지 문제를 놓고 거론되는 시간이나 비율은 자연스럽게 더 적다는 얘기다. 후보에게 할애하는 기사 공간의 양은 둘다 거의 같은데 말이다.

여론 조사를 실시한 갤럽에 따르면 선거 기간 동안 이메일 문제는 힐러리 클린턴을 다루는 미디어 콘텐츠 상단에 계속 등장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시기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대선에 미디어가 영향을 미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 뉴스를 흘렸다기보다는 관점의 부족 문제가 더 컸을 수 있다. 수많은 미디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사악한 후보 2명에게 투표할 사람이 적다거나 결함투성이 후보, 신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내보냈다.

주요 미디어가 수많은 스캔들을 계속 흘리면서 대선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가 뭔지 불명확해졌고 수많은 사람도 덩달아 뭐가 더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를 해버렸다는 게 사실은 거짓뉴스보다 더 큰 문제인 것이다.

SNS 시대에 맞는 올바른 검증수단·정보소비 교육 필요하다=물론 거짓 뉴스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매스미디어를 중심으로 뉴스가 쏟아지던 때에도 거짓 뉴스가 없었던 게 아니지만 뉴스 유통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 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뉴스 자체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 수 있다. 최근 한 조사 결과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향방을 좌우하는 것 중 전혀 사실 무근인 뉴스 306개가 페이지 2만 3,000개와 하이퍼링크 130만 개로 이뤄진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편향적 뉴스 그룹은 검색 최적화(SEO)를 통해 사용자에게 자연스럽게 더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클린턴 후보를 비방하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봇이 암약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동화 계정을 통해 경선에 의도적으로 개입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봇은 선거가 끝나고 활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중 봇 40만 개가 선거 관련 트윗을 실시했는데 이 중 75%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게 봇을 통해 계정 다수와 팔로우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한쪽에 치우친 사상이나 정체성을 일관되게 전파해 특정 개인의 의견을 바꾸거나 공격하는 등 명확한 목적성을 실현하려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을 통한 이런 심리적 전략이 비밀리에 이뤄져 사실상 뒤에서 누군가를 조종해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껏 인쇄매체나 라디오, TV 같은 매체가 선거에 큰 영향을 줬지만 지난해 보여준 미국 대선이나 브렉시트 같은 현상은 가짜 뉴스 이상의 영향력을 과시한 꼴이 됐다. 어찌됐든 거짓 뉴스가 심각한 문제인 건 분명하다. 실제로 악의성을 갖고 조작한 거짓 뉴스는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상위 20개 기사를 분석한 결과 870만 1,000회를 기록, 진짜 뉴스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렇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뉴스 공유나 유통을 섣불리 막으려 한다면 표현의 자유까지 막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존 매스미디어는 모두 진실, 소셜미디어는 가짜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지금은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하고 이 환경에 맞는 대응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가짜 뉴스로 대변되는 진실보다 감정을 움직이는 문제도 있지만 반대로 기성매체를 통한 뉴스에 대한 검증의 장이 되기도 한다는 순기능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도입하고 거짓 뉴스를 모두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거짓 뉴스로 보이는 걸 발견하면 제보를 하고 판명이 나면 경고 안내를 표시를 하는 등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 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정보가 쏟아지고 큐레이션이 난무하는 지금 중요한 건 올바른 정보 소비를 위한 교육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앞서 소개한 페이스북은 물론 구글 등도 가짜 뉴스에 대한 대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 독일은 선거에서 페이스북 내 가짜 뉴스를 내리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법률을 검토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 단순히 가짜 뉴스 이상의 심리적 전략을 통해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에 대한 알고리즘상의 대응을 비롯한 대비책도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합리적이고 공정한 검증 수단과 장치 마련, 올바른 정보 소비를 위한 교육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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