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에 관한 잘못된 신화

[최신 인문사회과학이론으로 알아보는 직장인의 심리]  산업화 시대의 의사결정 삼위일체는 합리, 효율, 속도였다. 이 중 합리는 근본교리와 같은 것이었다. 근대 이후 조직은 합리를 맹종했고 그에 맞춰 조직 전략, 시스템, 규정, 문화 등을 찍어냈다. 의사결정자들은 맹종의 대가로 효율과 속도의 시혜를 입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익을 위해 욕망을 조절하고 장기적으로 불리할 일은 하지 않으며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모험을 회피하는, 그런 인간은 현실에 거의 없다. 합리적 판단으로 이익과 손실을 정확히 저울질하는 것은 SF소설의 휴먼형 로봇에게나 가능할 일이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단지 합리화할 뿐이다.
– 로버트 A. 하인라인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만의 저서 [합리성의 신화를 부숴라] (더난, 2006)는 합리에 대한 고발이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합리주의와 합리성은 마치 천국처럼 ‘있었으면 하는 것, 원하는 것’이고 현실에는 없는 이데아라고 했다. 그러니 ‘합리적 인간’이란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네만 교수는 논문 “위기상황하 의사결정(1974)”에서 ‘인간은 비합리적이며 감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논증했다. 그는 또한 실험을 통해, 주식 팔 때와 쥐고 있을 때를 혼동하고 도박장에서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모험을 하는 것이 바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인간 의사결정의 대표적 사례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탈선 열차 비유”일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저 [정의론]에서 좀 더 구체화하여 차용했다.)

고속 기관차가 오고 있다. 저 앞의 선로 A에 인부 5명이 공사를 하고 있다. 기관사는 공사가 있는 줄 모르고 인부는 기관차가 오는 줄 모른다. 당신은 다가오는 기관차와 저 앞 공사 지점의 중간에 있다.

문제 1. 당신 옆에 기관차의 선로를 바꾸는 레버가 있다. 당신이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선로 A에서 공사하던 인부 5명이 죽는다. 그러나 당신은 선로를 바꿀 수 있다. 그러면 대신 선로 B에 있던 다른 인부 1명이 죽는다. 어떻게 하겠는가.

마이클 샌델은 문제 1에서 응답자 대부분이 선로를 B로 바꾸어 인부 1명이 죽는 편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 2에서는 조금 달라진다.

문제 2. 당신의 옆에 선로 공사를 하러가던 인부 1명이 서 있다. 이 인부를 당신이 선로로 민다면 그는 죽지만 기관차는 멈출 것이다. 그러면 선로 A에서 공사를 하던 인부 5명이 살게 된다. 어떻게 하겠는가.

5명이 죽는 대신 1명이 죽는 것은 합리적, 이성적으로 옳은 판단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 1에서와 달리 문제 2의 응답자들은 선택을 망설이고 대답을 꺼렸다. 다른 점은 레버를 당기느냐, 자신의 손으로 미느냐 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이제 문제 3-1과 3-2를 보자. 이 사례는 꽤나 충격적이다.

문제 3-1. 상황은 문제 1과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로 B에 있는 이가 당신과 친한 이모부라는 점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 3-2. 상황은 문제 2와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의 옆에 서 있던 이가 당신과 친한 이모부라는 점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 1에서는 응답자 대부분이 선로를 B로 바꾸어 1명을 희생시켜 5명의 목숨을 구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문제 3-1의 응답자 상당수는 이모부 1명을 살리고 인부 5명을 죽게 두었다. 문제 3-2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샌델은 ‘심지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며) 크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합리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의 토대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절대적인 가치기준이라고 믿고 있는 도덕, 윤리, 가치조차 상황에 따라 변한다.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