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의 성지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위치한 플러그앤플레이(Plug and Play) 테크 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센터로 불린다. 28만 평방피트 규모 건물에는 전세계에서 모인 400여 개 스타트업이 넥스트 유니콘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플러그앤플레이 서니베일 본사 전경. 플러그앤플레이 센터는 전세계 22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플러그앤플레이는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온 이란계 이민자 사이드아미디 (Saeed Amidi) 에 의해 설립됐다. 미국에서 생수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그는 팔로알토의 건물을 매입해 막 창업한 IT기업을 대상으로 임대 사업을 시작한다. 초기 입주 기업은 페이팔, 구글, 마일로닷컴 등. 사이드는 이들에게 적은 임대료를 받는 대신 투자를 진행한다. 결과는 대박. 페이팔이 매각되면서 사이드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서니베일에 인큐베이팅 플랫폼인 플러그앤플레이를 설립하고 실리콘밸리 투자자, 창업자, 기업가가 한 곳에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조성한다.

현재 서니베일 본사에는 4D리플라이(4DReply), 페이보리(Favorie), 엠텍글로벌, 에이아이시스템즈(AI systems) 등 한국 스타트업 4곳이 입주해있다. 지난해 9월 중소기업청이 진행한 ‘글로벌 창업기업 육성사업’에 전국창조경제혁신센터 추천으로 선발된 팀이다.

헬스케어, AI, 모바일,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국 스타트업을 만나기 위해 13일 (현지시각) 10시 센터를 찾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국기. 1층 로비를 둘러싼 벽면부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리고 건물 벽 곳곳에는 이곳을 거쳐 간 스타트업 이름이 적힌 간판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스타트업의 이름을 확인하느라 눈을 돌리는 것도 잠시. 아침부터 센터를 방문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금세 로비가 북적였다. 서니베일 본사는 전 세계에서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스타트업 관계자가 반드시 거쳐 가는 대표적인 명소라고 한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로비를 지나 1층에 예약된 회의실에서 한국팀과 플러그앤플레이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

4개팀은 플러그앤플레이의 가장 큰 강점으로 강력한 네트워크를 꼽았다. 투자자와 기업관계자, 멘토가 센터에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투자 기회도 여러 방향으로 열려있다는 것. 또 다양한 관계자와 네트워킹 기회는 많지만, 불필요하게 끌려다녀야 하는 행사는 없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일정관리앱 앳(AT)을 운영하는 페이보리 김광휘 대표는 “스타트업마다 성장 단계가 있는데 이곳은 방목해 놓았을 때도 스스로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단계에 놓인 스타트업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EIR(Executive In Residence)도 이들이 꼽은 플러그앤플레이만의 특별 이벤트. 일반 피칭과는 다르게 주제별로 진행되는 EIR는 발표 스타트업이 속해있는 분야와 정확히 매칭되는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투자 가능성과 스타트업 만족도 역시 다른 행사보다 높다. 피칭이 끝난 뒤 참석한 투자자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방문한 주 금요일에는 헬스케어를 주제로 진행되는 EIR에는 웨어러블 산소포화도 측정장치를 개발하는 엠텍글로벌이 참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벼운 간담회를 마치고 국내팀이 입주해있는 2층 스타트업 공간으로 이동했다.

스타트업 공간에서도 여러 국가의 국기를 볼 수 있는 건 마찬가지. 대만, 캐나다, 미국, 브라질,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센터를 찾은 스타트업이 오픈 공간을 함께 이용하고 있다. 스타트업 코워킹 스페이스는 테이블 비용만 내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지원하지 않아도 플러그앤플레이가 제공하는 혜택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공간을 둘러본 후 점심은 2층에 위치한 플러그앤플레이 까페테리아에서 해결했다. 야외 테라스에서 샌프란시스코의 환상적인 날씨를 만끽하며 먹는 점심은 센터가 제공하는 또 다른 혜택인 듯싶다.

점심을 마친 후 에이아이시스템즈의 멘토링 시간에 동석할 기회를 얻었다.

플러그앤플레이 인터네셜 프로그램팀은 매주 정해진 시간만큼 멘토링를 받는데 팀이 직접 멘토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술 멘토로 참여한 앨런 말라키(Alen S. Malaki)는 GE, 모토로라, 시스코 등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네트워크 전문가로 에이아이시스템즈의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에이아이시스템즈는 이날 파트너십에 대한 멘토링을 받았다. 앨런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행사나 기업을 소개해줬다.

앨런은 “에이아이시스템즈가 보유한 기술의 강점은 활용 가능 분야가 많다는 점”이라며 “가능성이 큰 팀이지만 성공하려면 좋은 현지 파트너를 찾는 것이 관건” 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현지화된 팀을 구성하는 것”을 1순위로 꼽았다.

에이아이시스템즈 김성용 이사는 “플러그앤플레이 멘토링의 좋은 점은 사업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업과 바로 만날 수 있도록 접점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아이시스템즈는 멘토 도움으로 파나소닉 등 현지에 있는 글로벌 기업과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한국팀은 지난해 플러그앤플레이측 관계자가 직접 한국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선발한 팀이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인터네셔날 프로그램 담당자 메간 레미스(Megan Ramies)는 “당시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이 굉장히 뛰어나 인상에 남았다”며” 한국팀은 잠재력이 큰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팀이 많다”고 말했다.

메간은 프로그램 선발 기준으로 기술, 팀, 트랙션 3가지를 꼽았다. 어떤 팀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제품 사용자는 얼마나 있는지 수치도 꼼꼼하게 살핀다는 것. 그녀는 실리콘밸리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 오면 당장 VC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VC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많은 인터네셔날팀이 갖고 있는 오해 중 하나인데 투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에요”

메간은 실리콘밸리 진출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실리콘밸리에 오기 전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할 것도 당부했다.

한편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글로벌 창업기업 육성사업’ 은 3월 말 인터네셔날 프로그램 끝으로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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