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나에게 선물하는 문화패키지

계절마다 찾아오는 잡지가 있다. 그런데 기존 정기구독 형태의 잡지와 달리 컬처매거진과 티켓, 할인권, 캘린더 등이 함께 포장된 패키지 형태의 잡지다. 그래서 이름도 패키지+매거진이 합쳐진 패커진이다. 플러그(plugg)매거진의 편집장이자 동시에 발행인인 강문정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대인은 바쁘다. 보다 쉽고 간단한 문화생활을 누리기 쉽지 않은 이유다. “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문화생활을 알차게 즐길 수 있는 솔루션이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패커진 플러그는 시작됐다.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먼저 구독 방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약간은 요즘 트렌드를 역행하는 오프라인 잡지였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반의 출판사가 아니고서야 잡지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생각하기 어렵다. 국내 출판 시장 자체가 적은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비용적인 측면에서 크게 고려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 매거진이나 앱으로 런칭을 했어도 됐을텐데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사실 중학교때 유럽으로 넘어가 대학교에서 경영학 공부까지 마치고 나니 국내 사정과는 약간 다른 꿈을 꾼것도 사실이에요. 초기 공동 창업자가 벨기에 사람인것도 한몫 하고요” 강대표는 유럽에서 문화란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문화생활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한 부류가 아닌 생활밀착형 문화를 지향한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점심시간을 틈타 잠시 들릴 수 있는 전시회처럼 잔뜩 차려입고 우아하게 즐기는 수준의 문화라기보다는 대중문화에 좀더 가깝다.

유럽에서 청소년부터 청년 시절까지 보낸 경험은 강대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물론 시작부터 플러그를 시작한 건 아니다. 광고 에이전시에서의 근무 경험을 쌓아오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건 2015년 5월부터다. 창업 초기에 함께 일을 시작한 벨기에 출신의 파트너가 떠날때 까진 대표 혼자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하다, 김태나 디렉터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2인 체제가 됐다. 그래서 지금은 기획, 취재, 편집, 디자인을 대표를 포함한 2명이 진행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니해도 시장 분석이다. 국내에서 문화 생활이 힘든 이유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뻔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다. 사업초기부터 젋은층을 공략할 목표로 시작하다 보니 금새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가격을 낮춰 부담없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장을 바꾸는 게 급선무였다. 문화 생활 영위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마치 근처에 있는 극장을 가듯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먼저인 상황이었다.

플러그의 패커진은 공연, 전시, 뮤지컬, 연극, 클래식, 뮤직 페스티벌, 영화, 음악 등 장르의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 문화 생활 경험이 전후해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다던가, 반대로 모든걸 즐기고 싶어하는 마니아층이 주 타깃이다. 매번 새로운 패커진이 나올 때마다 컨셉이 있기 때문에 장르별로 선호도가 갈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패커진을 열었을 때 ‘이번호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란 기대감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런 궁금증이 한국 독자에겐 없어요. 외국 생활하면서 몸에 밴 습관과 다른점이기도 하고요. 이것때문에 사업 초기에 고생 좀 했죠.” 한마디로 서프라이즈같은 이벤트가 국내에선 안 먹히는 시장이다. 모든 내용은 미리 선공개를 해야 특정 소비군에서 판매가 이뤄진다는 것. 강대표는 국내 독자의 수준을 ‘공연을 기획한 사람보다 그 공연을 더 잘아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대체적으로 한국 소비자는 스마트하다.

“이번호에 초대장 뭐 들어가요?” 강대표가 독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철저히 외국 문화다. 놀랄만한 일을 즐기는 경우는 드물다. 단편적인 예가 몰래카메라다. TV속 예능에서는 그 과정을 희화로 풀어내지만 그 속내에는 여전히 네거티브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잦다. 매달 잡지 부록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도서 관련 블로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잡지 보다 부록… 제사 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보다 나은 콘텐츠를 보급하기 위해 이뤄져야 할 선호도 조사는 이런 독자의 취향을 엿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문화예술 공연시장은 선호도 조사가 다른 산업에 비해 조금 까다로운 시장이다. “장르는 물론이고 나이와 성별이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아요” 그나마 윤곽이 드러난 독자군은 3040세대로 가장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아무래도 20대보다 소득이 높다보니 3040의 선호도가 높을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비단 경제적인 부분만으로 볼 수도 없다고 한다. 심리적인 부담이 적은건 사실이지만 이보단 젊을때 치열하게 살아 온 것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고 보는 게 맞다. 플러그 패커진에서 유독 30대 여성 독자의 수요가 가장 높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남자는 게임이나 운동 같은 스포츠로 풀지만 여성은 문화적인 부분으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경우가 많다. 성별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의외로 아이와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주부들의 문의 역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남성 중에서 유일하게 독자 분포를 보이는 중년 남성군의 경우 문화생활 경험이 많은 마니아인 경우가 많다.

현재 패커진은 계간지다. 처음엔 월간지로 시작하다 국내 문화계 시장 패턴에 따라 자연스럽게 계간지로 바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공연이 매달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뮤지컬/전시는 보통 수개월 텀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매달 새로운 것을 전달해야 하는 잡지와 시간차가 존재했다.

강대표는 패커진을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컬처 매거진’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단순정보 전달에서 탈피해 매거진을 통해 접한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들고 공연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강한 동기부여를 만드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패키지 하나로 모든 문화생활을 가능하도록 매 호마다 초대권 2~4장, 할인권 5~6장, 문화정보지, 전단이나 기타 할인 쿠폰 등 문화를 즐기기 위한 모든 재료를 준비했다.

온라인 멤버십 컬처패스는 플러그가 새롭게 준비중인 서비스다. 공연 티켓의 모바일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보통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지만 상품권을 건네듯 티켓으로 주는 버릇이 있어서 모바일 상품권에 대한 인식 부족이 부족한 상황이다.온라인 체크인 방식이기 때문에 취소, 환불 절차가 필요 없다는 장점을 지녔다. 기존 예약 시스템과 달리 티켓이 아니라 일종의 패스(Pass)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따라서 일일이 표를 바꾸기 위해 현장에서 줄을 서는 일도 없이 마치 요즘 극장처럼 모바일로 전송된 표를 보여주고 공연장으로 입장하는 시스템이다. 기본적인 플랫폼은 전시 예약 서비스인 캔고루와 비슷하다.

이용자는 반대할 일이 없지만 업계 티켓 발권 시스템 자체가 없어져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모바일 티켓으로 원스톱 체크인이 되도록 만들어 티켓부스가 공연장에서 사라지기 위해선 먼저 공연 생태계 자체가 바껴야 한다. 비로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모바일 웹서비스로 신규 공연에 ‘like’ 기능을 부여해 일정 인원이 모이면 플러그가 직접 공연 제휴 제안도 가능하다. 킥스타터 같은 펀딩 플랫폼과도 닮았다.

“힘들어요…”

에디터가 모를리 없다.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만큼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은 작업이란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기서 현대인의 독서 습관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예전보다 책을 읽지 않지만 습득한 정보 데이터의 총합은 이전보다 훨씬 많다. 다만 그 정보를 얻는 방법이 다양해졌을 뿐이다. 소비자가 변하면 생산자도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심끝에 새로운 돌파구로 생각한 건 와디즈(wadiz)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마케팅 비용도 적지 않은 데다 홍보하는 것 또한 스타트업 미디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물론 다른 오픈마켓이나 기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동시 진행이 불가능 하지만 문화를 소비하는 일이 판매 보다는 펀딩이 좀더 가깝다는 생각에서다.

최근들어 부쩍 증가한 사회적 이슈나 사건 역시 문화계에 적지않은 타격을 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나라꼴이 이런데 무슨…’ 자기 위안, 보상 심리로 인한 일련의 행동이 타인에겐 다분히 엔터테인먼트로 보일 수 있으니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회사 이름인 플러그(plugg)는 우리 플랫폼에 꽂아(plug) 새로운 문화생활을 누리라는 원대한 포부로 만든 이름이다. plugg에서 gg가 두 개인 것도 사람은 혼자살 수 없다는 1인 시대에 약간 반항끼 다분한 의도였다고. 이른바 혼자 공연을 즐기러 오는 ‘혼공족’이 32%나 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도 사실이지만. 본디 문화생활이란게 혼자 공연을 보러 가더라도 공연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다 우린 혼자가 아니다. 물론 당신도. You’re not alone.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