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밸리 넘어라”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조건

국내에서는 기술 스타트업에 밀려 큰 빛을 못 보고 있지만 아이디어와 뚝심으로 묵묵히 어려운 길을 걷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이다.

세운상가 5층 팹랩 서울에서 스타트업 2곳을 만났다. 이번에 만난 오트웍스, 에잇컵스은 모두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진행하는 IITP(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제품화 지원 사업에 참여해 시제품 개발을 완료한 팀이다.

오트웍스(Hauteworks)는 평소 자전거를 즐기던 강선혁 대표가 자전거 동호인이나 어린이를 위해 제작중인 스마트 후미등 ‘라요’를 개발했다.  관성측정센서와 저전력 블루투스를 내장한 자전거 후미등으로 라이더의 주행 상태를 내장된 6축 센서를 통해 가속, 감속, 오르막, 내리막 등의 상태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이런 센서를 안전을 위한 제동등 용도로 쓰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사용자의 주행데이터를 모아 빅데이터화한 다음 사고나 교통량, 자전거 도로의 상태를 수집한 값으로 사물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게 목표다.

센서로 수집된 데이터는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1분 단위로 전송하고 이를 유의미한 데이터로 만드는 것. 예를들어 ‘암사고개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고 가정 했을 때 이런 결과에 대한 백데이터를 수집해 근거자료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라요를 장착한 자전거라면 자전거 전용도로는 물론 주행 가능한 일반도로까지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다. 비단 자전거 뿐만 아니라 아웃도어 액티비티에 필요한 IoT 디바이스로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에잇컵스(Eightcups)는 수분 섭취량을 측정하는 스마트 보틀 1세대 제품을 출시하고 현재 2세대 제품을 개발 중이다. 기존 제품이 수분 섭취량만 측정했던 것과 달리 기상 시간과 체중 같은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시간에 맞춰 알림을 통해 수분 섭취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에이컵스 스마트 보틀의 강점은 동기부여에서 찾을 수 있다. 물을 마실 때마다 포인트를 지급하는 데 마치 광고를 보면 돈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2만원까지 환급 가능한 이 프로그램은 수분 습관을 기르기 위한 시간인 100일간 진행한다.

전원은 무선 충전. 온오프 스위치는 따로 없고 물을 마시다가 수직으로 물통을 내려 놓을 때 수위를 전후 과정으로 체크해서 마신 량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충전은 무선 충전 방식을 쓴다.

2중 구조로 만들다 보니 크기보다 작은 355ml용량이다. 안쪽에 센서가 있어서 공간 손실이 있다고. 미국 수출이 꾸준한 편인데 사이즈를 늘려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 2세대 제품을 준비 중으로 음료 종류를 구분하고 칼로리 계산까지 가능하다고. 조만간 킥스타터 런칭을 준비 중으로 올해 연말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사실 타이드인스티튜트를 통해 소개받은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 제품을 소개하는 게 원래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인터뷰 막바지에 일어난 의외의 일 때문에 뜻하지 않게 인터뷰 시간이 길어졌다.

오트웍스 강 대표가 에잇컵스 제품을 들고 꺼낸 한마디. “보통 사람은 제품을 보면 이걸 만드는 데 얼마가 들지 계산이 잘 안 되자나요.” 맞는 말이다. 원래 원가란 게 파는 사람만 아는 거지 사는 사람이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 이 제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충과 넋두리였다. 이에 질세라  에잇컵스의 주 대표도 한마디 거든다.

“생산 문제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심천을 찾았지만 언어 문제도 있고 품질에 대한 부분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고. 결국 품질 문제로 비용이 높아지더라도 국내 생산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에잇컵스가 자본금이 많지 않았음에도 엔젤 투자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건 1차, 2,000대 물량이 금세 소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로는 생산 다음 과정이다. 데스벨리 역시 기술이나 IT계열과 달리 개발 과정보다 생산과정이 좀더 힘들고 고된 싸움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국내 제조 능력은 우수한 편입니다” 어느 공장이나 시행착오를 하기 마련이지만 한국팀이 ‘세계의 공장’이 모여있는 중국까지 가서 제품을 제조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데 초기 불량률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모 스타트업은 제품 발주 후 중국 심천 호텔에 전직원이 상주하며 전수검사를 해야만 했다고. 주 대표가 원가 상승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내 생산을 고집했던 이유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중국 공장은 스타트업이 무조건 싸다고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앞서 말한 데스벨리가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경우 설계, 디자인 과정이 아닌 제조 과정에서 쏠리기 때문이다.

“불량률을 줄이고 양질의 제품을 뽑아내는게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에잇컵스 역시 제대로 제품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업체를 찾느라 몇 번이나 제조 공장을 바꿔야만 했다고.

주 대표의 중국 공장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강 대표의 한 마디. “소프트웨어 개발은 우리만 정신 차리고 잘하면 되는건데… 하드웨어 제품 양산은 그렇게 쉽지 않아요” 금형을 파는 순간 수정이 안되는 건 물론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되돌릴 수도 없다. 작업 난이도와 어느 부분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지 갈림길도 그때 즈음 나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원하는 목표 품질이 나오지 않는다면 금형을 다시 파야 할 수 밖에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슬램덩크 명대사처럼 제조업은 마지막 제품이 나올 때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고 있을 수 없다. 금형을 떠서 본체를 만든 상황에서 회로 기판(PCB)가 조금 늦게 제작됐는 데 사이즈가 달라 조립이 안 되는 바람에 금형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로 인한 출시 지연과 재작업에 필요한 비용은 고스란히 의뢰했던 스타트업의 몫이었다. 뜻밖의 데스벨리였다.

결국 “유능한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사전 제작(pre product)을 잘하는 곳이라고 프리 프로덕을 잘하는 것”이라고 주 대표는 단언했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거야 말로 가장 큰 리스크를 줄이게 되는 것임엔 분명하다.

이 날 만난 IoT 관련 스타트업 2곳은 다행히 데스벨리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동안 시장이 바뀌는 바람에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시선도 많지만 제품은 원가 계산으로 매출 산정이 끝나더라도 소프트웨어는 트래픽이나 데이터가 아직까지 기업 가치 고려에 많은 부분은 차지하고 있는 분야다.

지금은 IoT 스타트업이 의미 없는 데이터를 모으는 걸로 보일 수 있어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 의미 있는 데이터를 발견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 두 회사는 굳게 믿고 있다.  물론 ‘그 데이터를 모아서 무엇에 쓸 건데?’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겠지만. 분명한 건 양산 다음 과정이자 의미있는 숫자의 발견이야 말로 지금의 제품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 빛나는 마케팅 소재가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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