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과학으로 미디어 제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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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논문이라면 사이언스와 네이처 같은 과학 저널에 게재되어 전 세계 연구자에게 공개되면서 과학 발전에 기여를 한다. 하지만 이런 권위 있는 과학 잡지에 게재된 논문을 구독하는 비용은 상당히 높아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예산을 핍박할 수준이다. 여러 저널을 발간하는 세계 최대 과학 분야 출판사인 엘스비어(Elsevier)의 경우 매출 중 40%가 이익이다.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을 상회하는 엄청난 이익률을 자랑하는 것.

과학 논문이 저널에 게재되는 구조는 과학 분야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일그러진 구조다. 논문을 집필하는 건 물론 과학자지만 이를 심사하는 것 역시 과학자다. 출판사는 논문을 과학저널에 게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과학자 등에게 일부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논문 심사는 기본적으론 무료로 실시하는 자원 봉사로 이뤄져 있다. 이런 점에서 논문 작성과 심사는 과학자가 봉사하는 형태로 이뤄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구조는 비유하자면 있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원자재, 논문을 다른 고객, 리뷰어를 통해 품질 관리를 수행하며 검사가 끝난 제품, 논문이 게재된 과학 잡지를 전 세계 과학자에게 강매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거래는 다른 업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상한 세계를 만들어낸 인물은 체코 출신 영국 이민자인 미디어 제왕 로버트 맥스웰(Robert Maxwell)이다. 유대계 체코인이었던 그는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 영국군으로 공을 세웠고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연합군 소속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정보부 장교로 활동, 9가지 언어를 이용해 죄수를 심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중 당시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찰스 다윈의 손자인 칼튼 다윈 등 세계 최고 수준 과학자를 보유하고 있던 영국 정부는 과학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최고의 과학 출판사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해 영국 출판사인 버터워스(Butterworths), 독일 유명 출판사인 스프링거(Springer)를 협업하게 해 스프링거의 전문성을 버터워스에 습득시키려 한다. 맥스웰은 스프링거로부터 과학 논문을 영국 내에 배송하는 업무를 하청 받는 건 물론 출판물 판매권 획득을 바탕으로 아예 스프링거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경영권을 손에 쥔 맥스웰은 과학 편집자 등을 고용한다.

1951년 맥스웰은 1만 3,000파운드를 들여 버터워스와 스프링거 양사의 주식을 사들여 경영을 완전하게 지배하는 데 성공하고 출판사 페르가몬(Pergamon)을 설립한다. 당시 과학 저널 제작을 맡던 학술 단체는 멤버끼리 내부 토론이 너무 활발한 탓에 오히려 속도감이 결여됐고 맥스웰에게는 성가신 존재가 된다. 이런 이유로 연구 분야 확대를 위해 새로운 과학 저널이 필요하다며 저명한 학자를 대상으로 설득을 한다.

1955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논의하는 제네바회의 기간 중 회의가 열리는 근처에 사무실을 빌려 세미나라 칭하고 저명 과학자를 끌어들이고 페르가몬이 출판하는 과학 저널 편집자로 독점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등 과학자를 ‘접수’한다.

맥스웰은 닥치는 대로 과학 회의에 참석하고 술과 담배를 충분히 준비한 파티를 열어 과학자를 대접했다. 스위스에 있는 멋진 별장에 초대해 요트를 내주거나 파티를 여는 등 화려함과는 인연이 없던 당시 과학자들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접대 공세를 펼쳐 과학자를 페르가몬의 저널에 끌어들인다.

덕분에 1959년까지 페르가몬은 40종에 달하는 저널을 발행하는 거대 과학 출판사로 성장한다. 후일 페르가몬을 인수하게 될 엘스비어의 경우 16세기에 창업했지만 영어권 저널은 10종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큼 페르가몬이 얼마나 급속하게 힘을 키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맥스웰은 이렇게 설립한 저널에 과장 섞인 수식어를 붙이라고 요구한다. 그 중에서도 그가 좋아했던 문구는 국제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이었다. 또 그의 국제적 감각이 돋보였던 건 1950년대 후반. 1957년 당시 소련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서방 과학자들은 러시아 우주 연구의 추월에 놀란다. 맥스웰은 1950년대 초반 러시아 학회와 얘기를 이미 나누고 러시아 연구를 영어로 출판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러시아 과학 기술을 서방 과학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준비를 이미 해놓은 것이다.

과학 잡지 다수를 보유하고 있던 페르가몬은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 과학 저널을 구독하는 사업을 했지만 이런 연구 기관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곳이어서 정확하게는 각국 정부와의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었다. 미소 우주 개발 경쟁으로 대표되는 과학 기술 발전을 중요시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과학 예산은 늘었고 맥스웰의 사업은 순항을 나타낸다.

그는 경쟁 매체의 존재에 개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라이벌의 존재는 이익을 작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과학 저널의 경우 시장 파이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유는 과학 논문 자체는 유일무이한 발견에 관한 작품이며 다른 논문의 대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수 논문을 게재하는 새로운 과학 잡지가 나타난다면 과학자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도서관에 해당 과학 잡자에 추가 구독해달라고 할 뿐 파이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1960년대 후반 과학 출판사는 과학 발전을 돕는 데 필요한 파트너로 인식됐다. 페르가몬은 출판 프로세스를 더 가속화하고 세련된 표지를 채택해 규모를 더 확대했다. 과학자 중에선 페르가몬의 힘이 강해져 논문에 대한 권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페르가몬의 세련된 편집이나 맥스웰의 인간미 등에 압도됐다고 할 수 있다.

맥스웰은 과학자의 요구를 항상 기다리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초기 단계에서 저명한 과학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과학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려 했다.

맥스웰은 과학 잡지 세계를 변혁했지만 과학자의 연구 자체에 대한 업무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과학 잡지 등장이 논문 출판 시스템을 크게 바꾸게 된다. 1974년 MIT가 생물학 연구 성과를 발표할 목적으로 시작한 저널 셀(Cell)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다. 똑똑한 젊은 연구자를 편집에 투입, 게시물 신청 논문 대부분을 거절하는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걸작이라고 부를 만한 논문만 게재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과학자에게 선택된 멤버가 되려는 생각이 있다는 걸 간파한 것. 과학자는 셀에 논문을 싣고 싶어 했다.

셀의 등장으로 논문을 발표하는 ‘장소’가 중요해졌다. 당시까지 과학자는 게재하는 과학 잡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셀의 등장으로 게재하는 과학 잡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셀은 논문이 얼마나 자주 참조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논문을 랭킹화하는 임팩트 팩터라는 지표를 이용했다. 이렇게 논문 내용의 우열을 평가하고 이런 평가는 과학 잡지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유력 과학 잡지에 논문이 게재되면 논문 저자 역시 과학자로서의 지위를 높일 수 있게 된 건 물론이다.

셀과 네이처, 사이언스 3개 과학 저널은 가장 권위 있는 과학 잡지로서의 지위를 얻는다. 이들 앞글자를 따서 CNS라고 부르게 된다. 이렇게 과학 잡지가 권위를 얻으면서 당시까지 과학자가 만들어온 과학은 과학자와 저널 편집자의 공동 제작(?)이 된다. 과학자는 저널 편집자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발견을 추구하게 된다. 저널 편집자가 선호하는 논문을 쓰는 과학자는 정기적으로 논문을 게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벨 생물학상 수상자인 시드니 브레너는 한 인터뷰에서 학계가 저널 편집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를 연구하도록 자극을 받고 있다며 이런 시스템을 부패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엘스비어가 영어 과학 잡지 출판 사업을 확장, 경쟁 출판사를 사들이면서 1년에 35개 잡지까지 성장시킨다. 물론 경쟁자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맥스웰이 예상했던 대로 논문 구독 가격이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1975년부터 1985년까지 10년간 과학 잡지의 평균 가격은 2배로 늘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84년 2,500달러이던 한 과학 잡지의 연간 구독료는 1988년에는 5,000달러 이상으로 오른다. 이 시기 하버드도서관은 저널 구독 예산이 50만 달러를 넘겼다고 한다.

맥스웰이 만들어낸 시장의 덫을 가장 먼저 알게 된 건 대학 도서관 직원이었다. 대학에서 할당된 예산 범위 내에서 과학 잡지를 구독하는 도서관 직원은 해마다 오르는 과학 잡지 구독료를 통해 맥스웰의 사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과학자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과학자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자금 지원을 했지만 1988년 페르가몬의 이익률은 47%를 기록한다. 반영구적인 자금 조달 머신을 손에 쥔 맥스웰은 승자가 됐다.

맥스웰은 과학 세계에서 돈을 쥐어 짜내는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정치력을 추구해 신문사 인수에 나선다. 데일리미러와 선데이메일을 인수했고 어학 학습 기업인 벌리츠, 케이블 방송국 등을 산하에 둔 미디어 제국을 구축한다. 미디어왕이라는 칭호를 최대 라이벌인 루퍼트 머독과 나누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90년 연금을 악용한 회계 조작을 한다는 의혹 보도, 1991년 영국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부동산 가격 급락 등 급변이 이뤄지면서 맥스웰의 제국은 크게 요동쳤고 경영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또 1991년 뉴욕데일리뉴스 인수 비용을 위해 페르가몬을 경쟁자인 엘스비어에 4억 4,000만 파운드에 매각한다. 하지만 1991년 11월 5일 맥스웰은 자신이 소유한 고급 요트에서 빠져 익사한다. 미디어왕의 급사는 자살이나 타살 등 온갖 추측을 불러왔지만 정확한 원인은 지금도 알 수 없다. 제왕을 잃은 그의 기업은 줄줄이 파산했고 미디어 제국은 붕괴한다.

한편 맥스웰에게 과학을 통해 부를 안겨준 페르가몬을 얻은 엘스비어는 지금도 수많은 과학 잡지를 보유한 최대 출판사로 계속 군림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About Author

이석원 기자
/ lswcap@venturesquare.net

벤처스퀘어 편집장.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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