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산업 ‘은행 vs 스타트업’ 프레임 넘어라

필자는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전문 한불 번역사로 활동하다가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초보 창업자가 됐다. 빠른 리듬으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배 창업자와 이 분야 전문가의 글을 큐레이션해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읽곤 한다. 한불 번역사이다 보니 자연스레 불어로 이뤄진 창업 정보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쪽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떤지, 창업자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점에 주목하는지 호기심을 넓히게 됐다. 글을 기고하는 것도 혼자 접하기 아쉬운 글을 열정적인 창업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최근 눈에 띈 건 핀테크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는 핀테크 열풍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사실 제대로 된 지식은 많지 않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두 용어를 접목한 이 말은 흔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기 일쑤. 몬트리올에서 활동 중인 한 스타트업 미디어 창업자는 핀테크에 대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은 물론 간단한 역사까지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미디어가 핀테크 분야에 뛰어든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다뤄왔다. 주요 은행과 고도로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대조하는 얘기도 곧잘 접하게 된다. 흥미로운 얘깃거리지만 매혹적인 이 생태계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핀테크 업계에 자리 잡은 선입견에는 어떤 게 있을까.

◇ 이미 존재해왔던 분야=핀테크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분야다. 금융기관은 19세기부터 혁신적인 금융 관련 솔루션을 제안해왔다. 1838년 전신 시스템 발명과 1866년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 설치를 떠올려보자. 전 세계 금융 시장 인프라가 탄생한 계기였다.

신용주화. 당시 백화점 고객을 위한 신용카드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미국에서 신용카드의 모태인 신용 주화(Charge coins)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셀룰로이드 또는 금속으로 만든 이 동전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열쇠고리에 끼우고 다닐 수 있었다. 주로 백화점이나 호텔 등에 외상이 있는 고객을 위한 것이었다. 이 동전에는 보통 계좌번호와 함께 판매자명, 마크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다.

◇ 일찍이 혁신적이었던 은행들=기존 은행과 금융기관 역시 일찌감치 혁신을 꾀해왔다. 1958년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첫 리볼빙 신용카드인 뱅크아메리카드(BankAmericard)를 발행, 신용대출 시장을 혁신한 바 있다.

Tandata TD1400 Prestel System, 홈링크(Homelink) 뱅킹에 쓰인 장치다.

한편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은 1967년 첫 자동금융거래단말기, ATM 기술을 개발해 도입하기도 했다. 인터넷뱅킹은 1983년 홈링크(Homelink) 시스템을 시작한 스코틀랜드은행의 노력 덕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됐다.

◇ 은행과 스타트업의 오랜 파트너십=은행과 스타트업은 핀테크가 태동한 시점부터 파트너였다. 발명가이자 카톨릭 사제였던 지오반니 카셀리는 나폴레옹3세 측근의 투자를 받아 세계 첫 전신 장치인 나폴레옹 신호기(Sémaphore napoléonien/Napoleonic semaphore)를 개발, 프랑스 전역의 메신저로 쓰이게 했다. 물론 주로 당시 정권의 금융 관련 목적이었지만.

Sémaphore napoléonien(나폴레옹 신호기). 필자의 코파운더 역시 프랑스인이다. 옛 건물이나 시설이 도시 곳곳에 남은 프랑스에서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다고 한다.

지금은 어떨까. 수많은 기존 금융기관과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이 손잡고 있다. 피델리티와 로보 어드바이저 기업인 베터먼트(Betterment), 골드만삭스와 보안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기업인 심포니커뮤니케이션즈(SymphonyCommunications) 협력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핀테크 생태계는 흑백 논리와는 거리가 먼 분야다. 서로간에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을 하는 복잡한 업계인 것. 이 업계에 다윗과 골리앗 같은 패러다임이 맞지 않는다는 건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습관적으로 기존과 젊으면서 작은 구조를 대립해 보려는 태도는 삼가는 게 좋다. 이보다는 기술 발전과 이를 통해 사회에 가져다줄 이점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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