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그레잇과 스튜핏 사이

지난여름, 하루아침에 이 구역의 조희팔이 됐다. 조희팔, 그야말로 먹튀의 아이콘이 아니던가. 아니, 내가 왜? 억울함도 잠시, 메신저 창이 깜빡였다. 본능적으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어김없이 성토대회가 열렸다. 기자의 죄목은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권유한 죄.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리워드를 받는 프로젝트에서 배송지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레잇을 외치며 펀딩에 참여했던 이들이 한 순간 ‘펀딩스튜핏’을 외치기 시작했다.

출처 GettyImages

크라우드펀딩은 말 그대로 개개인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해주는 펀딩 방식이다.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이 초기 자금을 조달하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알릴 수 있는 기회다.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스타트업이 그들의 가치를 전하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미리 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 잘만 진행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투자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샤플’=지난 6월, 크라우드 디자인 플랫폼 샤플도 와디즈에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만원을 후원하면 20인치 캐리어를 리워드로 받는 프로젝트였다. 샤플은 프로젝트 기간 동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세련된 디자인, 편리한 성능, 생산과 판매구조의 혁신에 동참한다는 취지. 백팩부터 25인치 캐리어까지 다양한 구성. 샤플은 하루 만에 목표 금액 4000%을 달성했다. 샤플이 내놓은 제품과 이야기는 서포터즈의 마음을 움직였다. 샤플은 한 달간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약 15억의 펀딩을 기록하며 와디즈 펀딩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물론 역대급 흥행과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샤플이 제작과 배송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스타트업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제작 규모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샤플이 약속한 배송일은 8월 18일. 샤플은 약속한 날짜부터 배송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캐리어 부피 때문에 하루 택배 물량이 한정되어 있어 일반 택배보다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문제는 상당수의 서포터즈가 여름휴가를 염두에 두고 펀딩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8월 말 그 언저리쯤 캐리어가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과 최악의 경우 괴나리봇짐을 싸서 여행길에 나서야 한다는 초조와 불안이 묘하게 뒤섞였다.

배송지연, 품질 보증 등에 관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단체 행동 카페가 개설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샤플 중국 현지 공장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포장 문제로 얼리버드로 펀딩에 참가한 서포터즈가 가장 늦게 제품을 받는 불합리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물건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서포터즈 사이에 퍼져나갔다. 배송료 문제부터 불확실한 배송기간까지, 책임을 요구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단체 행동을 위한 샤플캐리어 구매자모임도 개설됐다. 진창수 샤플 대표는 배송 지연에 대해 사과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배송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항공운송을 감행했고, 샤플은 지난 9월 12일 리워드 배송을 완료했다.

◇얄미운 그 이름 배송지연=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에서 약속한 날짜보다 물건을 늦게 받는 사례는 사실 드문 경우는 아니다. 킥스타터에서 펀딩에 성공한 페블, VAGO 등도 개발 이슈와 제조 과정 문제로 배송 지연 문제를 겪었다. 약속한 배송 날짜보다 늦게 배송될 수 있다는 공지도 드물지 않게 받아볼 수 있다. 금액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는 일반적인 재화의 교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크라우드펀딩의 성격 때문이다.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은 단순히 메이커의 창작물을 사고파는 쇼핑이 아니라 메이커의 창작활동과 목표실현을 위한 과정을 지원하는 취지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배송 시기와 환불, 교환에 관한 규정은 메이커가 정한다. 배송과 제품 교환, 환불에 대한 규정도 프로젝트 팀이 규정한 대로 진행한다. 약속한 시기에 리워드를 발송을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이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앞서 제조, 운영상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다. 대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서포터즈에게 크라우드펀딩의 취지를 밝히고 배송지연 등에 관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고지하고 있다.

리워드 상품이 도착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메이커가 책임을 회피했을 때, 이른바 먹튀가 발생한 경우다. 미국 스타트업 더포킹패스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더포킹패스는 ‘애틀랜틱시티에 운명의 날이 다가온다’는 보드게임으로 킥스타터에서 12만 2,800달러 펀딩에 성공했다. 그러나 약속한 게임은 1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결국 더포킹패스 대표 에릭 슈발리에는 게임을 완성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프로젝트 종료를 선언했다. 더포킹패스의 먹튀 사건에 미국 연방무역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후원금 대부분이 개인 자금으로 유용된 점이 확인됐다. 관계 당국은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크라우드펀딩 분쟁에 관계 당국이 개입한 첫 사례다.

◇후원자를 위한 장치도 마련돼야=현재까지 국내 크라우드펀딩 사례에서 대형 먹튀 사건은 없었다. 그럼에도 후원자 마음 한 편에 먹튀에 대한 불안감은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통신중개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일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오픈마켓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쉽게 말해 입점사가 물건을 판매하고 배송하지 않으면 입점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메이커가 책임을 회피하면 후원자가 보상 받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 최대 크라우드펀딩 와디즈의 경우 펀딩액 중 20%는 메이커가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했을 때 전달한다. 메이커와 후원자를 연결하되 최소한의 후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남중구 법무법인 담우 변호사는 “메이커와 후원자도 계약관계에 놓여있다”며 “정해진 날짜에 상품이 발송되지 않거나 물건을 받지 못할 경우 계약위반 소지가 크다. 크라우드펀딩은 후원이라는 개념 때문에 일정기간 내 지연은 계약위반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남 변호사는 “펀딩액 일부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해놓거나 보험에 가입해 놓는 등 메이커를 믿고 지지한 후원자를 보호할 규정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크라우드펀딩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이자 세상에 없던 제품과 가치를 메이커와 서포터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도다. 더불어 메이커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를 후원하고 결과물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전에는 없던 생산방식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물론 성장통도 왕왕 일어난다. 최태형 와디즈 프로는 “현재 크라우드펀딩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는 새로운 시스템이 대중화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며 “크라우드펀딩 시스템에 관한 이해, 대중화를 통해 메이커와 서포터즈가 새로운 걸 만들어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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