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뚱뚱한 고양이의 제작 연구소’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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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 밤 날씨 예보에서는 뉴욕 북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 내려와서 늦가을 처음으로 영하로 내려갈 거라며 두꺼운 코트를 꺼내야 할 거라며 경고(?)를 했었다. 아침 일정과 오후 일정을 마치고 여유 있게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2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쯤은 뉴욕에서 있을 수 있는 작은 일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맨해튼을 30분 정도 남겨두고 기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30분 간 움직이질 않다가 선로에 문제가 생겨 전 기차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방송이 있고 다시 왔던 길을 다시 뒤로 한참을 달려 이름도 모르는 기차역에서 또 다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언제 다시 출발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각자 살아남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집까지 가는 우버 택시는 너무 비싸다며 어쩔 수 없이 남겠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여학생은 엄마에게 데리러 와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은 말없이 자리에서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7시에 시작하는 행사를 참가해야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이미 2시간 넘게 맨해튼 근처까지 온 마당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주위 사람을 꼬드겨 우버 택시를 타고 다음 기차역까지 함께 타고 가기로 했다. 비는 쏟아지고 있었고 기온은 영하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최저 기온이라는 건 입김을 불어 확인할 수 있었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왜 5명이 함께 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뒷자리에 4명이 그것도 큰 덩치의 미국인 사이에 끼어 50분을 달려 다음 기차역 자메이카에 내렸다. 다음은 지하철로 목적지까지 찾아가야 한다. 이미 시각은 7시 30분이 넘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오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게 뉴욕 스타일인가? 나도 굳이 불쌍하게 비를 맞느니 멋있게 맞겠노라며 여유 있는 척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목적지까지 걸어갔다.

이렇게 찾은 곳은 뉴욕 맨해튼의 메이커스페이스 팻캣팹랩(Fat Cat Fab Lab)이다.

팹랩은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메이커스페이스다

왜 뚱뚱한 고양이(Fat Cat)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왜 제작 연구실(Fab Lab)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면적은 20∼25평 정도 되는 좁은 공간에 많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비에 홀딱 젖은 불쌍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이미 오픈하우스 행사는 끝이 났는지 5명만 남아서 뭔가에 열중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4시간을 넘게 찾아온 처량한 손님을 위해 특별한 오픈 하우스를 가질 수 있었다.

제작 연구실은 회원의 멤버십 비용과 기부 비용, 장비를 바탕으로 비영리로 운영되는 메이커스페이스다. 하지만 당시 만났던 잭(Zack)이란 친구는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라는 이름보다는 해커스페이스(Hackerspace)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메이커스페이스나 해커스페이스나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관계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차이가 있고 나름대로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지금부턴 해커스페이스라고 해야겠다.

지난 메이커페어에 출품했던 메이커프로젝트

무엇보다도 젖은 머리가 다 말라갈 때 즈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재밌는 게임이 보였다. 공기총으로 표적을 맞추는 게임. 어릴 적 작은 놀이동산에 가면 꼭 한 번씩 해 보게 되는 재밌는 게임. 지난 가을 메이커페어에 출품했던 작품이었고 필자도 직접 본 기억이 났다.

메이커든 해커든 이 사람은 항상 프로젝트를 머릿속에 넣고 살아가는 것 같다.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떠 올리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겨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근성이 바로 메이커 또는 해커의 근성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무엇인가 머리와 손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메이커스페이스 또는 해커스페이스다.

스티브잡스의 작업공간은 소위 차고라고 부르는 개러지(Garage)였다. 해커에게 이런 공간은 사치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제작 연구실의 잭도 “개러지 스페이스(Garage Space)는 백만장자들이나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코멘트를 붙였다. 개인이 3D 프린터나 각종 공구를 개러지에 갖춰놓고 취미 생활을 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싼 장비를 한 장소에 모아놓고 멤버끼리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각자의 프로젝트를 위해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장소가 해커스페이스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놓은 공간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각종 장비들을 갖추고 있는 FAB LAB

장비들은 종류가 많았다. 3D프린터는 기본. 재봉틀도 보였고 전자장비, 컴퓨터도 자리 잡고 있다. 그 외에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좀더 규모가 크고 해커들만 이용할 수 있는 장비가 더 있다. 레이저 커터, 쇠 깎는 기계, 자르는 기계, 전기톱 등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모를 장비도 정말 많았다.

FAB LAB에는 각종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FAB LAB에 있는 레이저 커터. 멤버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홈디포(Home Depot)란 대형철물점에 가면 온갖 장비를 진열해 놓고 직접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장비를 파는 것이 목적이었겠고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집에 작은 DIY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수백만 원이 드는 장비를 갖출 수 없는 실정이라면 메이커스페이스나 해커스페이스를 찾는 것은 당연한 듯싶다.

사회는 생물이라고 한다. 필요하면 만들어지고 필요치 않으면 도태된다. 메이커스페이스와 같은 이런 작은 공간이 사회 구성원의 생각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그런 생각이 더욱 더 창의적인 사회를 만들어 우리 사회가 숨을 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개인 오픈하우스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9시 45분 기차가 있는 팬스테이션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비는 멈추지 않았고, 생각해보니 그 날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굶은 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고생하면서 얻은 30분 남짓 제작 연구실 오픈하우스. 무엇보다 값지고 많은 것을 배우게 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당장 드는 생각 중에 하나. “감기만 안 걸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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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하 벤처스퀘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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