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국인 ‘빨간펜 선생님’ 애슐런러닝

지금 이 순간에도 기사 작성을 위해 글을 쓰고 있지만 직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 역시도 글쓰기는 어려운 분야다. 하물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글쓰기는 어떨까? 이메일을 보내지만 영어 교육을 잘 받고 외국어 소통에 문제가 없더라도 격식을 갖춘 글쓰기까지 완벽하게 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글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작문 실력까지 동시에 갖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애슐런러닝(Echelon Learning)은 영어에 특화된 글쓰기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이다. 학습용 전용펜에 달린 특수카메라가 학습 교재에 특수 인쇄된 미세한 점을 읽어 위치를 파악해 학생의 글씨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학생의 필체 그대로 디지털화 한다. 이렇게 쓴 글은 적도 반대편 호주에 있는 실제 초중고 선생님이 채점을 하고 동영상으로 피드백을 주는 방식의 첨삭 교육을 제공하는 게 애슐런러닝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제공하기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 과목도 첨삭 교육이 가능하다.

일단 다음달부터 시범 서비스에 들어가는 교육 과정은 3단계로 나뉜다. 익스플로러는 일단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과정이다. 어드밴처러 과정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글쓰기에 돌입하기 위한 테크닉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패스파인더 과정에 들어가면 보다 고급 표현을 쓰기 위한 심화 과정이다. 과정별로 각각 20권씩으로 구성돼 일주일에 한권씩 학습할 수 있는 분량으로 만들었다.

한권에서 학생이 혼자 학습하는 분량은 80% 정도다. 이때는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선생님이 실시간으로 채점하고 피드백을 준다. 마지막 20%는 앞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학생이 실제 영어 글쓰기를 하고 이를 호주의 선생님에게 전송해 평가를 받게된다. 전통적인 ‘이론+실기’ 형태의 교육 방법이다.

“교육 솔루션으로 방향으로 정하고 어떤 시장으로 먼저 진입할지 고민하다 영어 글쓰기가 가장 적합하다 판단했습니다.” 애슐런러닝의 백승우 대표 이야기다. 요즘 북미 지역에서는 영주권 심사를 할때 어학능력평가 부분에서 점차 토플과 토익의 비중을 줄이고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로 구성된 IELTS 점수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시험 과목 중에서 다른 부분은 전부 비영어권에서 교육이 가능하지만 유독 글쓰기 과정 만큼은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을 하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것을 호주에 거주하면서 번번히 목격하던 차였다.

애슐런러닝은 호주를 비롯해 영미권에 있는 현직 초중고 선생님이 직접 학생이 작성한 작문을 원격으로 직접 평가하는 방식. 글쓰기 교육 경험이 갖춘 선생님이 아이패드나 서피스 같은 태블릿을 통해 직접 채점이나 첨삭을 하면서 피드백을 주는 평가 방식을 쓴다. 해외에서는 선생님이 일과 후 겸업을 해도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강의시간 노트북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타이핑을 하는 행동 자체만으로 학업 성취도가 낮아지고 손으로 필기하는 것보다 머릿속에서 정보를 정리하고 재구성해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애슐런러닝이 유독 ‘손글씨’에 집착하는 이유다. 손으로 필기 후 복습하는 학습 과정은 노트북 필기에 비해 30%나 기억 효율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디지털 기기를 아예 배제한 학습방법 또한 효율성 면에서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책으로 공부할 경우 추상적 질문에 대한 정답률이 평균 66%로 디지털 스크린으로 공부 했을 때의 정답률이 48%를 훨씬 상회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정답률에서는 형세가 뒤바뀐다. 디지털 스크린으로 공부할 경우 73%의 정답률을 내는 반면 책으로 공부할 경우는 58%에 그쳤다. 디지털 스크린은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넓은 맥락보단 정보 자체에 집중하게끔 좁은 시각을 제공한다. 디지털 스크린과 책을 병행해 학습해야 하는 이유다. 온고지신의 올바른 예다.

북미권을 주축으로 다시 손글씨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는 또 있다. 언어의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인 기록. 즉 쓰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호주 역시 모든 중고등 과정 교과서를 파일로 제공하는 데 글쓰기 기능을 갖춘 태블릿 형태의 PC 이외에는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기 일쑤다.

요즘 사람들이 글쓰기 능력이 예전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로 PC를 통한 기술적 도움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요즘 어지간한 워드 프로그램에서는 오탈자 수정을 자동으로 해주고 자주 쓰는 단어를 예측해 자동 완성 해준다. 글쓰기 품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우리 신체는 이런 환경에 맞춰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학창시절 지겹도록 수없이 해왔던 ‘빽빽이’는 이미 검증된 학습 방식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타이핑과 펜을 쥐고 직접 쓰는 라이팅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르는 것과 그리는 것의 차이는 정보량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요즘은 소셜 네트워크, 이메일 등 다양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이 글쓰기다. 기록을 남기고 내용을 습득하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언어라는 매개체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쓰임새가 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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