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두려움 아닌 ‘상생과 협업의 존재’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로봇 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사고현장에 투입된 로봇은 금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췄고 결국 사람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현장에 투입됐다. 그들의 생사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희망적인 생각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이듬해인 2012년, 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황당한 제안을 전세계 로봇 개발팀에게 던진다. 연구개발비를 아끼지 않고 지원할테니 2013년말까지 재난구조에 투입할 로봇을 만들어오라 한 것. 바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 DARPA Robotics Challenge)다. 참고로 다르파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개발해 인류에게 보급한 기관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승팀 상금 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걸었던 배경(?)에는 8가지에 달하는 고난도의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로봇 기술력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DRC 대회를 통해 참가팀이 해결해야 할 8가지 과제는 아래와 같다.

  1. 로봇 스스로 차량을 운전해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한다.
  2. 차량에서 하차에 건물 입구까지 장애물을 통과해 걸어가야 한다.
  3. 출입구 근처 사고 잔해를 수습 후 이동 경로를 확보할 것.
  4.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진입
  5. 사다리 기어올라 가기
  6. 공구를 이용해 정확한 지점의 벽을 뚫을 것
  7. 가스 누출 파이프 잠그기
  8. 소방호스 배관 연결

결론만 말하자면 6개국 24개 참가팀 중에서 우승을 거머쥔 건 국내 카이스트팀이다. 로봇 종주국이라 불리던 미국과 일본에서 다수의 팀이 참가했지만 압도적인 시간, 점수차로 격차를 벌렸다.

DRC의 황당한 제안 덕에 원전사고 이후 3년간 전세계 로봇 개발팀은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루게 됐다. 그리고 그때 축적한 기술은 고스란히 오늘날 무인 운전 차량에 녹아들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만 12개 기업/연구소가 자동주행을 실험중이다. 로봇 기술은 이렇게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다방면에서 활용중이다.

여기서 한가지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무인 차량은 단순히 새로운 이동수단이 아닌 ‘소유의 경제에서 공유의 경제’로 넘어가는 아주 중요한 분기점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더이상 차량 소유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O2O를 기반으로 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급부상해서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자동차를 사지 말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존재한다. 자가용은 소유자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택시나 카풀 서비스처럼 사생활에 대한 우려가 덜하다. 사람들이 여전히 차량 구입을 갈망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무인 자동차는 상황이 다르다. 탑승자 이외엔 아무도 없다. 이 시기가 도래하면 이미 차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생에 첫차 구입에 있어 충분한 갈등 요소가 될 공산이 크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무인 자동차가 단지 신기한 대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어떻게 여기에 합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다.

웨어러블 역시 무인 자동차와 그 궤를 함께한다. 이미 20년 전부터 다파의 연구 과제로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거쳐 군수용으로 현장 보급 직전 단계까지 발전했다. 헐리웃 영화속 아이언맨은 현실이다. 단지 날지 못할 뿐이다. 초기 인터넷이 군사망을 위해 구축됐듯이 웨어러블 기술 역시 장애인과 노약자로 착용 범위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 현재 44개 회사가 개발 중이다.

센싱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인해 로봇이 힘을 느끼면서 인간과 함께 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로봇은 공장에서 사람의 접근을 막고 혼자 묵묵히 맡을 일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 로봇은 사람과 함께 부대끼며 외력을 느끼고 그 상황에 맞게 제어하는 기술을 익혔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가며 반복 작업이나 힘이 드는건 로봇의 몫으로 두고 섬세한 조작이나 임기응변이 필요한 작업은 사람이 해결하는 협업의 시대가 도래한 것. 스마트 팩토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한재권 교수

한 교수는 “기술을 보지말고 무엇이 필요한지. 이 기술이 어떠한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봇은 인간의 고령화,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안이자 국가간 헤게모니 싸움의 주체가 됐다. 로봇 기술이 유행처럼 사라지기 힘든 까닭이다. 게다가 로봇 기술 강국인 일본, 중국이 한국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성장통’은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작정 적대시할 게 아니라 로봇과의 경쟁협업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보다 증강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도구로 활용하자”는 게 한 교수의 의견이었다.

기술이란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나쁜면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에서 우리 인류는 언제나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냈다.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식량이 풍족해지면서 인류의 굶주림은 해소됐지만 그 이면에는 농약이나 GMO, 각종 대사질환 같은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반대 급부로 유기농 제품이나 다이어트 산업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면서 지리적인 제약을 없애면서 움직임이 줄어든 인간은 건강을 해치게 되면서 달리기를 비롯한 다양한 건강 산업이 발전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나쁜점을 해결할 때 새로운 산업이 생긴다는 방증이다.

‘향후 20년간 70%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 미래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고액 연봉자 그리고 급여가 낮은 힘들고 고된 3D 직군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건 자명한 결과다. 따라서 새로운 직군을 찾기 위해 우리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존재할 수 없는 부분이나 아직까지 최신 기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 즉 굉장히 인간적인 부분을 공략해야할 필요가 있다.

한 교수는 이를 ‘로봇의 결핍’이라 칭했다. 다시말해 인간성이란 인류가 지닌 고유의 특성 말이다. 기술의 본질은 언제나 그 뒷면에 있다. 로봇이 아직까지 범접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접근, 이것이야 말로 다음 세대에 진정한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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