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스마트홈의 ‘동상이몽’

인공지능 격전지가 본격적으로 양분되고 있다. 한 곳은 아스팔트 위고 한 곳은 거실 카펫 위다. 인공지능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앞세워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들만의 세상인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그 중심 축에는 아마존과 구글이 있다. 물론 똑똑한 두뇌만 있다고 해서 산업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는 근육과 뼈 같은 이른바 근골격계를 탄탄하게 구성할 굵직한 게임체인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자동차 업계는 차세대 먹거리가 누빌 판을 ‘길바닥’으로 잡았다. 1886년 독일의 칼 벤츠가 인류 첫 자동차를 만든 이래 지난 130여년간 그들의 생태계는 좀처럼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GM이 꿈꾸는 자율주행차의 컨셉이다. 이제 더이상 스티어링 휠도 페달도 없다. 그렇다면 차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장 사업 분야가 커지고 점차 자동차에 IT 기술이 접목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리한 운전이 가능해졌지만 완전 자율 주행은 여전히 많은 해결과제를 지닌 상태다. 지금 당장 자율 주행 차를 맘편히 타면서 코를 골면서 잘 수 있는 강심장은 손에 꼽을 테니까.

자율 주행 차량을 통해 도로를 점령하겠다는 배경에는 스마트폰의 확장 개념이 있다. 스스로 굴러가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써 말이다. 요즘 신형 모델이 모두 최신형 인포테인먼트를 탑재한 것 역시 이런 가설을 뒷받침 해준다. 모빌리티(Mobility) 그러니까 이동수단은 인류에게 편안함을 제공함과 동시에 멍 때릴 수 있는 시간까지 할애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로라(Aurora)는 폭스바겐, 현대와 협업 중이다. 사진은 폭스바겐의 자율주행 차량인 세드릭(Sedric)

게다가 자율주행이 점차 고도화되면 차 안에 있는 승객은 이동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운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객 역시 내릴 곳을 미리 알리고 탑승했으니 역을 지나칠까 하는 우려에 노심초사할 일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만들지 않았던 기존 가전 제조사와 전장 분야에서 힘을 쏟을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인터넷에서 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를 해결할 장소가 필요하니까. 게다가 통신 속도 역시 나날이 발전 중이다.

이미 자동차 계기판인 클러스터는 디지털화가 이미 수년전부터 빠르게 진행 중이다. 최신 모델은 대부분 바늘과 분침 대신 널찍한 컬러 디스플레이를 달고 나온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포털이 눈독을 들이는 부분은 바로 이 영역이다. 통신 모듈만 갖추면 보다 크고 배터리 걱정 없이 차량에 탑승한 내내 원하는 콘텐츠를 보낼 수 있다.

광고 수입이 절대적인 포털에서는 달리는 광고판으로써의 매력을 지닌 곳이다. 자율 주행으로 인해 운전자가 점차 집중해야 할 부분이 줄어드는 시대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훨씬 효과적이다.

구글 어시스트를 내장한 레노버의 스마트 디스플레이

요즘 아마존, 구글 등이 탐내는 장소이자 격전지는 집안이다. 정확하게는 거실. 이 역시 십수년전부터 인텔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시도한 프로젝트지만 그 당시는 시기상조였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고통받고 있는 인텔에게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 갔다. 결론적으로 거실 공략을 호시탐탐 노리던 PC는 자동차 트렁크가 품고 말았다.

최신형 Soc 자비에(Xavier)는 엔비디아 드라이브 페가수스(NVIDIA DRIVE Pegasus) 인공지능 컴퓨팅 플랫폼의 핵심이다. 페가수스는 자비에 Soc 2개를 내장한 자동차 번호판 크기의 차량 등급 폼팩터로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차량용 슈퍼컴퓨터다. 완전 자율주행에 해당하는 레벨5 로보택시를 위해 개발했다. 페가수스는 초당 320조회의 연산 처리 능력을 갖췄다.

현재 엔비디아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보쉬를 비롯해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의 개발을 위해 25개 이상의 기업이 엔비디아 기술 제공하고 협업 중이다.

불과 몇해 전만해도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장은 애플 진영의 카플레이와 구글 진영의 안드로이드 오토로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물론 차량용 제조사가 선택한 방법은 ‘중도’였다. 차를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의 OS에 의해 구매가 결정되는 불상사를 막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인공지능 음성 비서로 진화가 된 지난해부터는 약간 판도가 달라졌다. 일단 자동차는 알렉사가 선점했다. 지난해 CES 2017에서 강력한 인상을 줬던게 분명하다. 안드로이드 진영처럼 API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을 계승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도요타는 올해 도요타와 렉서스 차량에 시스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알렉사를 탑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북미 고객에 한해서다. 이를 통해 운전자는 뉴스 업데이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제어, 쇼핑 및 할 일 목록 작성, 연결된 스마트 홈 장치 제어 등의 작업 음성으로 가능해진다. 또한 원격으로 온도를 설정해 집을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거나 음성 명령으로 차고 문을 여는 등의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다.

포드 역시 알렉사 도입을 밝힌 바 있고 BMW 역시 모델 라인업에 알렉사 지원 부분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지난해는 아마존의 독무대였다. 올해는 구글이 사활을 걸고 있다. 전시장 곳곳은 물론이고 번화가인 베거스 스트립까지 알짜배기 광고판을 싹다 구글로 도배했다. 전시장 참관객의 발인 모노레일을 구글로 래핑한건 대표적인 예다. 구글이 내건 키워드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호출하는 주문(?)인 ‘Hey Google’이다. 과연 올해는 숙적인 아마존 알렉사와 어떤 경쟁을 펼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여기서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과거 구글이 음성비서의 호출명령어는 다름아닌 ‘OK, Google’이었다는 것. 애플이 ‘Hey, Siri’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뭔가 동료를 부른다는 입장으로 본다면 OK보다는 Hey가 훨씬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애플 페이, 안드로이드 페이, 삼성 페이도 같은 맥락이다. 동일한 서비스는 비슷한 이름을 쓸 때 옮길 때 장벽이 낮고 후발주자는 훨씬 쉽고 빠르게 대중에게 인지를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아직까지 구글은 OK와 Hey는 모두 호출명령어로 허용하고 있다.

구글이 이렇게 온라인 쇼핑몰을 의식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플랫폼과 생태계 사수 목적으로 본다면 애플의 시리를 먼저 견제해야겠지만 세계 최대의 검색 및 온라인 광고 회사에게 사용자 유출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음성인식 기술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집안에 사용자를 가둬두겠다는 전략이다. 콘텐츠를 소비할수 있는 통로는 티비와 스피커. 하지만 진입 장벽이 TV 보다는 스피커가 수월하다 훨씬 가격부담이 덜하니까.

일단 현 시점에서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대세인 아마존 알렉사를 품은 에코 시리즈를 사거나 안드로이드 후광을 품은 구글 홈 미니를 사는 것. 물론 당장은 어느 것을 사도 큰 문제가 없다. 다행이도 스마트 홈을 꾸미기 위한 각종 센서와 기기들은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를 모두 지원한다. 심지어 애플의 시리까지도.

LG전자 씽큐 인공지능을 통한 스마트 가전을 앞세워 일단 구글 진영으로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스마트폰 제조로 다진 안드로이드와의 의리를 택한 것. 소니, 레노버, 뱅앤올룹슨 등은 조만간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 출시 계획을 밝혔다.

사실 스피커 정도는 스트리밍 재생용으로 부담없이 살 수 있다. 문제는 연결되는 기존 가전 제품이다. 다양한 디스플레이 전문 제조사에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안드로이드 TV를 출시한다. 올해 구글이 부활을 꿈꿀 수 있었던 이유다. 안드로이드 약빨이 제대로 통했다.

냉장고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게다가 가족의 접근성으로 따져보면 가장 높다. 냉장고를 허브로 낙점한 이유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의 패밀리 허브 전략은 이번에 빅스비(Bixby)와 맞물려 버전 3.0으로 진화했다. TV를 보면서 동시에 냉장고 속을 들어보는 게 가능해졌고 말하는 사람을 빅스비가 인식해 가족구성원에 따라 각기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화자인식(Voice ID)를 통해 음성비서 서비스를 개인화시킨 것. 구글과 아마존 틈바구니에서 삼성은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자동차 산업과 스마트 홈 업계는 최대한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 사용자를 가둬두는게 중요하다. 포털을 비롯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는 이를 ‘체류시간’이라 부른다. 목적은 확실하다. 최대한 그들의 플랫폼 안에 오래 묶어둘 만큼 돈이 되니까. 그래야만 그들의 광고주가 원하는 제품을 알리고 판매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말 귀를 알아먹는 스피커 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올해는 유독 로봇이 눈에 띈다. 12년만에 뜬금없이 소니의 로봇 강아지 아이보가 부활한 것도 이런 이유로 볼 수 있다. 혼다 역시 지난 CES 2018을 통해 로봇 4종을 선보였고 수많은 로봇 관련 제조사에서 신형 모델을 쏟아냈다. 저마다 똑똑함으로 무장한 채 말이다. 특히 일본은 다가오는 2020년 동경 올림픽을 기점으로 로봇 홍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이다.

자동차와 스마트 홈. 이 두가지 속성은 ‘AI는 내 운명’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노는 바닥이 다르다. 물리적인 간극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차에서 일어나는 일이 집안에서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시점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모두 같은 플랫폼 안에서 생태계를 일궈가고 있어서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이종결합’이 기대되는 한 해다. 서로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은 같지만 엄연히 저마다 설정한 목적지는 달랐다. 어차피 포털 입장에서는 도로 위나 거실 어느쪽에서 먼저 잭팟이 터지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그들은 데이터만 수집하면 남는 장사니까. 포털은 인공지능을 위한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딥러닝 시켜 스스로 고도화시킬 사용자만 늘리면 끝나는 게임이다.

결국 인공지능 분야에선 포털이 당분간 산업 전반을 끌고 갈게 자명하다. 닷컴 버블을 버티고 IT공룡이 된 인터넷 기업이 기간 사업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 위세가 커졌음에 다시한번 격세지감을 느낀다. 케캐묵은 단어가 됐지만 바야흐로 컨버전스. 융합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그런데 자동차와 가전 제조사도 같은 생각일까?

포털은 이들을 상대로 ‘줄 세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문제는 ‘나를 따르라’라는 전술은 더이상 현대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이런 속담이 생각났다. 자전거인끼리 흔히 하던 말이었는데 찾아보니 실제 아프리카 속담이었다. ‘혼자 가면 빨리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간다’. 부디 그들도 이 말의 뜻을 헤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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