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 혁신과 기업가 정신

[엔슬칼럼] 작년 한해 국내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은 분주했다. 정부정책에 힘입어 일자리창출을 견인하는 핵심주체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벤처기업의 성장 동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현대연구소의 정책보고서 내용은 의아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스로 보유기술이 ‘국내유일’이라고 평가한 벤처기업 비중이 2012년 11.1%에서 2016년에는 0.7%까지 급감했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연구개발 투자와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쉽게 진단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에 중국에서 탄생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은 무려 20개나 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왜냐하면 중국과 한국의 기술격차가 줄어들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앞서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혁신을 위해서는 또 다른 진단이 필요함을 뜻한다.

출처=GettyImages

스타트업 투자정보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최고가치의 유니콘기업 상위 10위 명단에 미국벤처기업이 6곳, 중국은 무려 4곳이나 올라있다. 전체 유니콘 기업 수(총 215개) 가운데 미국기업이 108개로 절반이고 그 뒤를 중국이 58개로 뒤쫓고 한국은 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보스톤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스타트업들은 창업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할 때까지 기간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한다. 중국 스타트업들은 평균 4년, 미국은 평균 7년이 걸려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내수시장과 창업열기를 북돋아주는 중국정부의 지원정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은 중국에 비해 기술력은 우리가 우위라는데, 왜 벤처·스타트업계에서는 이렇게 급격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필자는 최근 2, 3년간 엔슬협동조합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멘토로서 또는 각종 창업지원기관의 평가위원으로서 현장의 많은 스타트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는 창업자는 20대 청년에서 50대 전문가 그룹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 사업화 구상에 대하여 또는 자기가 수년을 거쳐 연구 개발해온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성공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또한 그 결과 그들이 개발한 제품과 서비스로 시장진입을 통해 대박의 꿈을 가져다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건 응당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또한 그 이윤 성취동기를 비난할 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창업의 동기, 실천, 결과로 이어지는 순환의 첫 단계에서부터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멘토링을 시작할 때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제품이나 아이디어 내용에 앞서 꼭 먼저 “어떤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창업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고객은 누구입니까?(이건 경영의 구루 「드러커」 박사가 강조한 말) 이 제품과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고객에게 어떤 효용을 줄 수 있나요? 고객이 이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요?”라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면 대부분 스타트업들은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 자기제품에 대한 특징과 장점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창업 이전에 창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내가 왜 창업하게 되었는지, 즉 창업에 대한 담대한 꿈을 내재화 시키지 못했음을 뜻한다.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가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한 창업의 목적은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대박의 꿈은 아니었다. 이 세상을 한번 자기들 힘으로 바꿔보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고 지금까지는 없었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는 담대한 꿈이었다. 스티브잡스는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인간의 조그마한 손안에서 모두와 소통하면서 모든 것을 해결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을 꿈꿨다. 이게 바로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동력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꿔가고 있다. 출시하자마자 이용자들의 열광 속에 세계 11억 인구가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스마트폰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온 스타트업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왜 본인이 창업의 길에 들어섰는가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사업에 성공해서 돈방석에 오르는‘성공 신화’만 꿈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을 멘토링 할 때 새롭게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상인 근성’이다. 기업가와 상인이 꿈꾸는 것은 실로 다양할 것이다. 그것을 하나의 실천동력으로 정신세계와 연결시키면 기업가 정신과 상인의 근성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이윤 추구를 뛰어넘는 ‘지금 이곳에서’ 치열하게 ‘존재’하는 생명으로서의 기업가와 상인의 ‘지향과 실천의 정신세계’라 할 수 있다. 즉, 창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기존의 것을 바꾸어 고객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혁신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업주의에 너무 익숙해 있다. 초기부터 얼마의 매출을 올려, 손익분기점을 언제까지 달성하는 등의 재무계획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쫒기 듯 짧은 기간 내에 승부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전한 기술구현이 안된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장진입을 하게 되고 소비자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자금단절기)에 이르러 좌절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처음부터 혁신적인 담대한 꿈과 사명감을 가지고 창업한다면 단기적인 이익실현의 목표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긴 호흡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상의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돈, 즉 재무적 목적이 아니었기에 시간적 제약 없이 시장진입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스타트업들의 열악한 창업 여건에서 정부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창업지원기관 역시 스타트업들을 평가할 때 역시 단기간의 재무적 성과를 강조하다보니 스타트업들에게는 ‘기업가정신’이라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버드대 교수 출신으로 `기업가 정신`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아이젠버그 교수도 ‘기업가 정신’이란 `돈`을 쫓는 게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고 창출해 내기 위해 기회를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고객에게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뛰어난 가치를 선사할 때 큰 수익이 남게 되고 결국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져 스케일업(Scale-up)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창업 15년만에 세계적 바이오시밀러회사를 키운 서정진 셀트리온회장은 한 창업페스티벌에서 예비창업자에게 이렇게 격려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나만의 보물지도를 가진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니, 나머지 반은 묵묵히 완주하기만 하면 됩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세요. 절망이라는 단어가 인생에 얼씬도 못하게 하세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겁니다.“

여기서 보물지도란 표면적으로는 벤처를 창업할 수 있는 원천기술과 아이디어를 의미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기업가정신과 인생을 걸만한 꿈을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다. 새해에는 국내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업가 정신’으로 가득채운 보물지도를 가지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엔슬협동조합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은퇴한 조합원으로 구성된 청년 창업 액셀러레이터다. 조합원의 풍부한 경험과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필요한 자금과 네트워크,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엔슬협동조합은 경험과 전문성이 담긴 칼럼을 매주 벤처스퀘어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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