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 스마트폰이 나아가야 할 길

신제품 출시 현장에 취재를 가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보통은 제품에 대한 극단적인 의견이다.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취향과 관점에 따라 소감은 명확하게 갈리기 마련이다.

며칠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MWC 전날 전야제(?)로 열린 삼성 갤럭시 S9 언팩 행사가 그랬다. 처음 언팩 행사와 마주한건 4년전 갤럭시 S6 언팩 행사였다. 매번 장소를 바꿔가며 하는 탓에 언제나 낯설지만 매번 크고 화려했던 건 변함 없었다. 가운데 무대를 두고 청중이 주위를 애워싸는 공간배치 마져도.

대부분의 스펙이나 기능, 디자인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비공식적으로 공개가 끝난 상태였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요즘 대부분의 신제품 공개행사는 이런식이다. 언론은 팩트 확인을 위해 참석할 뿐 대부분의 정보는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이미 다 얻고 루머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형태가 된지 오래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전시장이 암전이 된 후 중앙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된다. 사실 키노트 전 시작된 영상에서 이미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거의 다 나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상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하자면 다양한 일로 계속 실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속에 비춰진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 비슷한 말을 읊조린다. “난 못해. 못하겠어. 못해….” 기존에는 할 수 없었던 일. 그리고 VR 같은 최신 기술이 만나 기존에 할 수 없었던 일은 현실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내뱉은 말 역시 못해(can’t)에서 할 수 있어(can)으로 바뀐다.

지난 십여년간 스마트폰은 우리이게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손 안에 컴퓨터였다. 그래서 매년 신기종이 나올때마다 제조사는 기존 모델과의 차이점을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치열한 경쟁 덕분에 하드웨어 성능은 불과 10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PC나 노트북에서 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다양한 기능을 녹여낼 수 있다.

이번 언팩 행사를 통해 삼성 갤럭시 S9 시리즈가 새롭게 던진 화두는 더이상 고성능 스마트폰이 아닌삶의 도구였다. 오프닝 영상에 비춰진 모습 역시 삼성이 그리는 그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 고동진 IM사업부 사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인공지능, 머신러닝, VR, 5G를 핵심 키워드로 정하고 “IoT로 연결된 모든 디바이스는 인공지능을 통해 한층 진보하고 강력하게 연결될 것말했다. 기기간 연결에 보다 박차를 가하겠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페이, 삼성헬스와 연합한 현존하는 가장 큰 가전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은 삼성의 스마트팅의 몫이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플랫폼이 될 스마트팅을 통해 연결되고 보다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인공지능 서비스인 빅스비와 맞물려 돌아가는 그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주인공인 갤럭시 S9의 언팩 행사는 심심할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은 그들이 그동안 정성껏 가꾼 생태계로 유인하기 위한 아주 매력적인 수단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업계 1위라는 자리를 내려 놓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카드가 카메라였다. 화면도 배터리도 동일한 상태에서 오직 바뀐건 카메라 하나다. 일단 DSLR 처럼 사용자가 조리개를 조절할 수 있게됐고 AR이모지를 통해 나만의 캐릭터를 이모티콘으로 쓰거나 이 상태로(!) 화상통화까지 가능하다. 단순히 사용자 따라하기 수준의 이모지였다면 아이폰X처럼 한두번 해보고 금새 잊을 기능이었는데 다행이 소포트웨어적인 개선이 있었다. 물론 이미 본 기능이라 신기함이 반감되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나를 본딴 캐릭터를 만들어 준다고는 하지만 그리 닮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촉박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미 있는 요소 중에 골라 나만의 아바타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소름끼치도록 똑같은 캐릭터를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단지 경쟁사 제품보다 좀더 자유도가 높을 뿐이다.

LG전자 역시 상황은 삼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LG전자의 부스 역시 CES IFA가 떠오를 정도로 가전 일색이다. 물론 전면에는 기존 가전과의 연결성에 특화된 V30S 씽큐를 내세웠다.

이미 아마존의 알렉사나 구글의 어시스턴트 같은 인공지능 플랫폼이 있지만 이들을 외면한 채 삼성의 스마트팅을 비롯해 LG의 씽큐까지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이유는 하나다. 다른 인공지능 경쟁사는 저마다 그들의 인공지능 서비스를 지원할 서드파티를 찾아야 한다. 물론 그 안에는 삼성이나 LG도 포함된다. 하지만 삼성은 모든걸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량을 바탕으로 무혈입성할 공산이 크다. 적어도 가전 분야에서는 그렇다.

언팩 행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료 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하드웨어 스펙으로 승부를 볼 시기는 끝난거 같아..” 어찌보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언팩 행사에도 어떤 SoC를 쓰고 기존보다 얼마나 빠른지 이런 수치 비교 조차 무의미 했을지 모른다. 이미 하드웨어 수준은 정점에 다다랐다. 더 빨라질 이유도 없다. 모든 처리는 클라우드로 가능하기 때문에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는 고성능 프로세싱을 굳이 스마트폰이 처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십년전 가전 시장으로 회귀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최신 IT 기술이 집약된 커뮤니케이션 기기라 생각했던 스마트폰이 이제는 다시 사람과 가전, 자동차 등을 이어주는 마치 ‘값비싼 리모컨’으로 전락한 기분이 들어서다. 물론 단순한 입력장치 정도로 머물리는 없다. 스마트폰은 지금도 인간에게 충분한 보조자임에 틀림없으니까.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넘어 다양한 기기와 연결되고 지금까지 못 했던 것들을 하게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앞으로 스마트폰이 나아길 길이 아닐까. 언팩 행사 오프닝 영상에 나왔던 ‘Do what you can’t(네가 할 수 없는 걸 해봐)’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에 대한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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