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숲에 살아 숨쉬는 네트워크 ‘오가닉미디어밸리’

서울 시내 염곡동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초구 양재동과 내곡동 사이에 위치한 염곡동은 지형이 심장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해 염통골이라 불렸다. 빌딩숲을 이루는 도시 풍경과는 달리 인릉산이 인접해 자연의 숲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상 서초구에 속하지만 염곡동은 스타트업에게 익숙한 지명은 아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네트워킹 접근성이 좋은 강남이나 보육공간을 거점으로 위치해있다. 스타트업에게도 생경한 지역에 오가닉 미디어밸리가 지난 3월 터를 잡았다. 220평 규모에 60명 이상 수용 가능한 코워킹스페이스, 회의실, 개별사무공간을 갖춘 오가닉미디어밸리는 오가닉미디어랩 윤지영 대표가 코파운더로 참여한 공간이다. 윤지영 오가닉미디어랩  대표는 “오가닉미디어밸리는 실험실 네트워크가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오가닉미디어밸리에 모인 실험실 네트워크=오가닉미디어밸리는 오가닉미디어랩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 서비스가 함께 제공되는 곳이다. 오가닉미디어랩은 지난 2년간 윤 대표와 신뢰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실전 비즈니스에 적용하고 있는 실험실 네트워크를 뜻한다. 실험이라고 하면 연구소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실험은 네트워크 관점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콘텐츠와 비즈니스와 고객과 조직을 살아있는 네트워크로 보고 이들이 어떤 관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실행하고 경험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A가 B에게 책을 추천해서 B가 책을 구매한다고 치자. B는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추천자 A가 한 사람의 유통역할이 되면 그로인한 리워드가 주워진다. 이 때 A와 B의 작은 연결에서 네트워크가 생성된다. B는 C에게 C는 또 다른 D에게 옮아갈수록 네트워크는 확장된다. 서비스 제공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이 이뤄진다. 이들의 관계는 신뢰네트워크로 엮이고 결정의 근거가 된 가치는 관계 안에서 커나간다.

오가닉미디어밸리에는 이러한 과정을 겪고 시행착오를 먼저 겪은 이들이 있다. 윤 대표는 “함께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이들의 네트워크가 시너지가 됐다. 정보망이 교환되고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과정을 한 곳에서 시도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곳이 오가닉미디어밸리”라고 설명했다.

윤지영 오가닉미디어밸리 대표

우리는 이런 사람을 원한다=오가닉미디어밸리는 업종,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그럼에도 조건은 있다. 윤 대표가 밝힌 요건은 ‘같은 방향을 보는 구성원’이다. 그는 “각자의 존재이유에 대해 아는 것, 시대의 가치를 만드는 방법이 같은 곳을 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에 따르면 연결된 세상에서는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존재이유는 그들이 마주한 구체적인 문제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유휴자원과 숙박 수요를 연결한 에어비엔비가 대표적인 예다. 추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과정에서 연결이 이뤄진다. 결과적으로 신뢰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공유한 가치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선순환의 시작점이 된다.

윤 대표는 “비영리와 모금단체, 소셜네트워크를 만드는 회사, 의료정보회사건 업의 종류는 다르지만 메커니즘은 모두 같다. 모두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 우리는 왜 존재해야하는가에서 출발한다”며 “고객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관점으로 보면 해결 방법은 모두 같다. 윤 대표는 “업이 무엇이든 고객이 정보를 얻거나 물건을 구매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데이터를 서로에게 유용하게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관계로 만드는 것, 신뢰네트워크의 구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말 그대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체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존재이유를 아는 것은 각자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때 안과 밖, 직원과 고용주, 고객과 경계가 허물어진다. 서로를 위해 수평적으로 일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구성원에게 오너십이 움튼다. 짜인 조직, 정해진 직무에 따라 일을 하는 것에 아니라 상대방에게 무엇을 도와줄지에 대한 관점에서 할 일을 찾는다. 구성원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조직 없는 조직화의 모습이다.

윤 대표는 “조직 없는 조직화가 되면 각자가 오너십을 가지고 모든 사항을 결정한다. 스스로의 역할과 구성원 간 관계를 정의해나간다. 현재는 각자가 조직이라는 우산 안에 있지만 최종 목표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되는 것이 꿈”이라며 “오가닉미디어밸리에서도 조직 없는 조직화의 실험이 이어진다. 준비가 되면 매커니즘 위에 올라가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가닉미디어랩이 있다. 우리가 항시 대기 중이다=오가닉미디어밸리에서는 입주 스타트업에 한해 오가닉네트워크 언어를 이해하는 교육인 ‘쿠킹클래스’도 진행될 예정이다. 윤 대표는 “오가닉네트워크의 핵심개념인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다”며 “신규 회사가 오가닉미디어와 네트워크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테이스팅 교육과 이론과 실제를 적용하고 다른 오가닉네트워크와 실험할 수 있는 쿠킹클래스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OS도 지원한다. 신뢰네트워크 구축 툴을 완성한 커넥서스가 네트워크 분석시스템 공동모듈을 제공한다. 기획과 디자인, 개발, 세무·회계 서비스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윤 대표는 “원점에서 시작하지 않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구조”라며 “스타트업은 참여만하면 되는 플랫폼”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서 윤 대표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는 “한 사람이 변화시키는 새로운 세상”을 말한다. 세상을 변화하게 하는 동력이 거대 자본과 비즈니스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변화의 동력은 바로 가치 있는 관계다. 신뢰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누군가가 일하는 관점을 바꾸고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삶이 변한다. 누군가의 변화가 나의 변화가 되고 우리의 변화가 사회를 다른 모습으로 바꾼다.

오가닉미디어밸리는 지난 3월 29일 ‘블록체인과 오가닉 네트워크’를 통해 변화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블록체인을 주제로 잡은 건 그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실험한 오가닉생태계와 놀랍도록 닮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네트워크이자 함께 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네트워크가 성장하는 유기체, 탈권력 탈중심 체계에 자리 잡고 있는 강한 신뢰로 움직이는 블록체인은 오가닉 미디어의 예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제 오가닉 네트워크가 추구해온 조직 없는 조직화와 맥을 같이 하는 블록체인이 하나로 합쳐지는 작업이 시작된다. 오가닉네트워크는 함께할 이들을 기다리며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다. 염통(심장)골에 자리 잡은 것에 걸맞게 매순간 살아 숨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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