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컴비네이션, 데스밸리를 건너는 방법

수백억대 대형 IT 사업 입찰 공고가 났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그룹사 계열 대형 SI들이 입찰에 참여했다. 여기에 한 국내 스타트업도 입찰에 뛰어들었다. 이들 중 누가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을까. 대형 SI 업체들의 각축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프로젝트를 수주한 건 스타트업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컴퓨팅 역량을 갖춘 다섯 스타트업이었다. 프로젝트 기회를 확인한 다섯 스타트업은 각자의 역량을 정의한 후 한 팀으로 결합했다. 이들은 결국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출처=GettyImages

벤처결합데스밸리 건널 수 있을까=우리나라 스타트업 5년 생존율은 27%.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 3년에서 5년차, 기술개발 후 제조역량을 갖추지 못했거나 유통, 마케팅 등의 단계에서 초기 자금을 소진할 즈음 데스밸리에 빠진다. 후속 투자유치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사정은 더 어려워진다.

“키스톤 콤비네이션이 필요할 때” 이홍 광운대 교수는 데스밸리 탈출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야구에서 2루수와 유격수가 각자의 능력치에 협조 플레이를 더해 시너지를 내는 것처럼 스타트업의 결합으로 데스밸리를 극복하자는 의견이다. 서두에 언급한 다섯 스타트업 결합은 벤처 컴비네이션(V-Combination)의 대표적인 예다.

기존 데스밸리 극복 방식은 한계가 뚜렷했다.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역량으로 위기를 탈출하거나 정부 지원에 의존해야 했다. 팀 내부에 위기에 대처할 역량이 충분치 않거나 정부 지원 시점이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협력 모델 또한 존재하지만 기술, 기능 결합에 초점을 둔 단발성 협력에 불과했다. 협력 기업이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치곤 했다.

벤처결합은 기존 협력 모델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 교수는 “벤처 컴비네이션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에 초점을 둔다”며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해당 기업과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결합을 주도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퍼실리테이터란 개별기업을 이어주고 하나의 팀으로 묶는 전문 인력, 사전적 의미로는 중재 및 조정자를 뜻한다.

이 교수는 벤처 컴비네이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기업역량 평가, 벤처결합에 대한 동기부여, 벤처결합 촉진을 위한 자금지원, 퍼실리테이터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기업역량의 경우 개별 역량이 뛰어남에도 다른 역량이 부족해서 데스밸리에 빠진 경우가 있다”며 “이를 감안하고 기업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벤처 컴비네이션의 모범 사례 아이스타팩토리’=아이스타팩토리는 벤처 컴비네이션을 통해 데스밸리 돌파구를 마련했다. 초이스밸류와 메이키스트, 이제이홈, 휠라이프 각 스타트업의 개별 역량을 따로 또 같이 활용한 벤처 컴비네이션을 통해서다.

아이스타팩토리 각각의 장단이 뚜렷했다. 초이스밸류는 연구개발과 사업화 능력이 있는 반면 제품 양산 관련 네트워크가 취약했다. 메이키스트는 IoT 기술, 시제품 제작에 강점을 보였지만 사업화에 약했다. 이제이홈은 양산공장이 있고 운영과 생산능력이 풍부했으나 R&D 능력이 부족했다. 휠라이트는 마케팅과 제품 유통에는 강점을 보였지만 제품 생산은 지지부진했다.

결합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초이스밸류의 시제품 개발을 메이키스트가 맡게 되면서다. 이 과정에서 PCB 양산과 조립은 이제이홈이, 마케팅은 휠라이트가 진행했다. 초이스밸류는 사업화에 매진하고 메이키스트는 개발에 전념하면서 각자 주 역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하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한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논의하다 2018년 2월 주안역 부근 300평 규모 협동조합 아이디어팩토리를 설립했다.

“모아놓고 보니 안정적인 구도가 나오더라” 강석민 아이디어 스타트업 팩토리 이사는 결합 이후의 상황을 언급했다. 실제 이들의 결합으로 인적자원과 연구개발 공유가 활발해졌다. 인력은 20명으로 늘어나고 각자의 인적 네트워크가 시너지를 냈다. 현재 공동 개발 중인 개인 모빌리티 자전거는 메이키스트가 하드웨어 개발, 초이스밸류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고 있다. 이제이홈은 디자인과 양산을, 휠라이프는 기구부 설계를 담당한다.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기도 한다. 각 회가가 제품을 공동 개발하면 온라인 마케팅은 휠라이프가 맡는다. 제품에 투자된 현물과 현금 지분에 따라 판매수익을 배분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같이(Ttogether)가 가치(Value)가 된다” 아이디어 스타트업 팩토리의 슬로건이다. 강 이사는 “각각이 제 역할을 하면서 아이디어 스타트업 팩토리를 키우기도 하지만 아이디어 스타트업 팩토리를 토대로 만드는 각각을 상상하고 운영한다”고 전했다.

키맨 페실리테이터역할 중요=아이스타팩토리의 사례는 이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트업이 원하는 방향, 팀원 구성, 스타트업 궁합 등 수많은 변수와 그 안에서 스타트업이 감내해야 할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벤처 컴비네이션을 수행할 키맨,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호선 혁신경제 이사는 “데스밸리에서 결과물을 내기까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금과 노력이 들 수 있다”며 “전문 퍼실리에이터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것부터 동기부여, 비용 등 활동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향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영설 한국경제신문 전략기획국장 또한 “협업을 기업이 각자 하던 시기에서 나아가 현재는 전문 퍼실리테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각자의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것보다 전문 인력을 통해 투자, 액셀러레이터 등의 연결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권 국장은 “브이컴비네이션을 하는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늘어나고 성공사례가 생겨나야한다”고 강조했다.

이홍 교수는 벤처컴비네이션과 퍼실리테이터가 조직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벤처 컴비네이션은 이전에도 있던 개념이다. 단 (누군가의 개입 없이) 우연히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며 “액셀러레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전보다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벤처컴비네이션, 퍼실리테이터 등 구체적으로 용어를 명명하고 사회적으로 논할 수 있는 불씨를 만들자”고 말했다.

한편 혁신경제 스타트업분과 위원회와 윤호중,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혁신경제포럼이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데스밸리를 넘어 유니콘으로: V-콤비네이션’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는 정부, 투자자, 학계, 스타트업 등 생태계 내 구성원이 참여했다. 포럼에서는 결합과 협력을 통한 데스밸리 극복 방안 등이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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