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경험과 가치 평가

[엔슬칼럼] 지난 9월에 광화문 광장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인 ‘실패 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라는 이름이 다소 생소하지만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란 주제로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마련한 행사다.

지금까지 성공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강연 및 책 등을 통해 잘 나가는 사례만 접하다가 실패 박람회라는 네이밍이 새롭게 다가와서 좀 더 자세히 알아봤다. 한때 피자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여 대박을 터트렸지만 수차례 파산을 겪은 ‘성신제피자’의 성신제씨, 첫 식당을 개업할 때 전 재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방송인 홍석천씨 등이 자신의 실패담을 풀어 놓았다고 한다. 물론 실패 박람회 열렸다고 실패가 미화되지는 않으며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으로 실패자는 고난의 시기를 무조건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재도전과 과정을 높이 평가 하는 선진 사회로 변화 할 때가 됐다.

출처=gettyimages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창업 관련 국민의식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의견이 70.9%, ‘창업했다 실패하면 개인 신용 불량으로 이어진다.’는 응답이 91.7%를 차지한다고 한다. 도전이 낳은 실패는 개인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두려움의 반증이다. 그동안 경제적 및 문화적 측면 등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도 실패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이 곳곳에 존재한다. 실패자라는 편견과 함께 실패에 대한 재 반복의 우려로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 하지 않는 무언의 행동들과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아 인식을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실패와 성공의 연속임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성을 좌우하는 좌측 뇌가 가슴까지는 따뜻하게 못 만드는 한계의 영향이다.

어릴 적부터 실패하지 않으려면 덮어놓고 노력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밤을 새워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트와이스나 방탄소년단이 되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기적이나 행운은 우리 곁으로 날아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검색 기능을 통해 조사된 사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인 마이클 조던은 ‘경기의 승패를 뒤집을 수 있었던 26번의 버저비터 기회를 날렸고 패배한 경기만 해도 300게임에 가깝다. 나는 9,000개 이상 슛을 놓쳤다. 그게 내가 성공한 이유다.’라고 말한다.

수제맥주 열풍의 도화선이 된 서울 경리단길 맥주 집에는 ‘Fail Ale’이란 맥주가 있다. 엷은 색깔의 대표적 에일 맥주 ‘Pale Ale’(페일에일)을 만들려다 실패했는데 잘못 만든 맥주가 나름 맛이 좋아 메뉴에 올렸더니 진짜 페일에일 보다 잘 팔리는 효자상품이 됐다고 한다.

2008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은 벤처 사업가가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행사다. ‘실패’ (fail)와 ‘콘퍼런스’ (conference)의 합성어에서 행사명을 따왔다. 실패를 주제로 삼은 이 회의는 이제는 프랑스, 이스라엘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린다. 페일콘은 2013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이제 실리콘밸리에선 실패를 말하는 게 너무 당연해져 콘퍼런스가 필요 없다고 중단 한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실패를 실패(failure)라 하지 않고 방향전환(pivoting)이라 부른다.

작년에 개봉한 ‘덩케르크’는 2차 세계 대전 초에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 독일군에 포위된 연합군 구출 작전으로 등장인물들은 평범하다. 전쟁 영화이면서도 관객을 자극할 극적인 장면도 없으며 성공이 아닌 실패를 다루고 있음에도 감명을 준다. 후퇴 과정에서 죽음의 공포를 수없이 부닥치는 주인공은 물론 힘든 여건 속에서 용감하게 싸운 공군 조종사조차도 전투 중 전우를 모두 잃었다는 자책감에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들이 영국 본토를 다시 밟기 위해 엄청난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 한 것을 안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살아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감성을 더 강화시킨다. 후퇴를 부끄러워하는 병사들에게 살아 돌아온 것으로 충분하다고 격려하던 노인의 위로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우린 살아 돌아왔을 뿐이에요.(All we did is survive)’

‘그것으로 충분하네. 잘했어, 젊은이.(That’s enough. Well done, lads)’

그동안 멘토링을 하면서 스타트업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4전5기의 실패 경험을 가지고 있는 A는 발명가적인 소질로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 사업화를 추진했으나 매번 한두 가지의 사전 준비 부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제는 제조업 보다는 그동안의 실패경험을 자산으로 창업자들에게 체계적인 사업 준비 방법 등을 전파하는 지식 사업자로 변신 하였다.또 다른 스타트업인 B는 보유하고 있는 역량은 탁월하나 사전 시장 조사 소홀로 사업성이 부족한 아이템을 가지고 고전 하고 있었다. 실패가 아닌 피봇을 하여 볼 것을 조언 한 결과 철저하게 소비자 반응 조사 결과를 반영한 새로운 아이템을 찾았다. 지루하고 힘든 여정을 극복하고 이제는 대형 IT회사인 N사로부터 초기자금으로는 큰 투자를 받아 기술 완성도 제고와 사업화에 몰두 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공한 이는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를 강조하게 된다. 성공 사례집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도 실패할 수 있게 되는 이유다. 반면 실패의 요소는 명확해 교훈도 확실하다. 마이클 조던은 성공을 위한 비법보다는 실패를 복기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법에 집중해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아 크라이슬러를 이끌었던 아이아코카 전 회장은 ‘가치 있는 모든 것들에는 항상 실패의 위험이 도사린다.’라고 말한다. 투자자는 스타트업 가치 평가( Valuation)시 실패 경험도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로 포함 시키는 경우가 많다. 실패 경험은 더 이상 손실이 아니라 향후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엔슬협동조합은 대기업 은퇴 임직원들이 설립한 비영리협동조합으로 조합원의 풍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업화와 시드투자를 제공하고 있으며 투자법인 엔슬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중기부 등록 액셀러레이터, 도약패키지 지원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창업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엔슬멘토단의 경험과 전문성이 담긴 칼럼은 벤처스퀘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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