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로 만드는 자막, 수익은 거들뿐”

“20년의 해외 생활 동안 주위의 다른 것들은 빠르게 변하는데 유독 발전이 느린 분야가 있었다. 바로 자막이다.” 국문과를 전공한 박문수 사이 대표는 일본과 영국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활동했다. 국문학도이자 기술자로 그가 본 세상은 어땠을까. 기술은 생활 곳곳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있었지만 속도 이상의 무언가가 없었다 “모국어에 대한 이해, 자연어에 대한 이해에서 한 단계 나아가 문화, 언어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봤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기술이 메울 수 없는 틈은 존재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서비스 개발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박 대표가 선보인 것은 자막 크라우드소싱 앱 제작에 나섰다.
사이에서 개발 중인 자막 앱은 쉽게 말하면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자막 제작이 가능한 십시일반 자막 제작 플랫폼이다. 기존 자막 제작 툴과 가장 큰 차이는 모바일 편의성이다. 모바일 퍼스트 시대에 맞게 누구나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영상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자막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상을 재생하면 하단에 시퀀스에 따라 자막을 입력할 수 있는 공간인 타임박스가 마련되고 사용자는 자막을 입력만 하면 된다. 구간을 찾아 일일이 입력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자동탐색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 머신러닝 기능이 목소리 부분만 캡쳐해 자동으로 시퀀스를 완성한다. 이 안에 입력을 채워넣는 건 참여자의 몫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자막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PC 대비 10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본질은 콘텐츠 수출입” 박 대표는 자막 앱이 비단 자막을 만드는데만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짜 목표는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힌 영상 콘텐츠가 세계 곳곳에 뻗어나가고 다양한 콘텐츠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박 대표는 “통계적으로 보면 유튜브 해외 영상에 달려있는 자막이 2%대”라며 “나머지 98% 해외 영상은 외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대다수는 수많은 콘텐츠 중 불과 2%를 보고 즐기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영상 플랫폼의 사정도 이러할진데 다른 영상플랫폼에서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시청자,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힌 크리에이터를 위한 자막 플랫폼을 개발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일본 TFC와 제휴 당시 팀원들 모습
“기존 자막은 불법 공유사이트에서 암암리에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 한 공유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만 500명으로 추산된다. 활동하는 사람은 있지만 보상은 없으니 동기가 부족하고 자막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 사이는 기존 자막 제작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한 보상체계도 마련했다. 플랫폼 내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는 물론 자막 제작자도 기여도에 따라 수익이 배분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영상을 세계로 전하고 싶은 크리에이터를 유입시키고 음지에 있던 번역가를 끌어올리면서 자막 질을 담보한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자막 플랫폼 내에서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길 기대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번역에 참여하면서 읽는 맛을 더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의학드라마 번역은 의사가 번역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법조 드라마도 마찬가지. 각 분야마다 뉘앙스가 있고 전문 용어가 있다. 오역을 줄이고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이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영상 번역가에게 수익 배분하는 최초의 사례로 영상 번역각가 그들의 재능을 수익으로 치환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콘텐츠의 세계화는 홍보에 열을 올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팬덤을 통해 크리에이터가 더 빠르게 부각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핵심은 자막”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콘텐츠라도 해외라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박 대표는 자막이 판도를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크리에이터가 가진 감성이 아일랜드 사람과 통할 수도 있다. 내 음악을 브라질 사람이 좋아할 수도, 크리에이터가 그린 그림이 핀란드에서 흥할 수도 있지 않냐”며 “자막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팬덤과 만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번역에서도 팬덤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이 전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며 “누군가는 번역가의 문체를, 단어를, 또 다른 누군가는 번역이 전하는 정서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이는 전 세계 번역 메이커들이 모이는 장이자 번역가 팬덤과 크리에이터 팬덤이 맞물리는 연결고리로 자리잡는다는 구상이다.
“우리는 결과로 말하는데 익숙하다.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라고 말하지 그 과정에 존재하는 벌어진 틈, ‘사이’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이’에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 국가와 사람 사이에 벌어진 틈을 자막으로 메우는 일이다” 현재 베타서비스로 운영중인 서비스는 내년 3월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앱에는 자막 크라우드 플랫폼은 물론 콘텐츠 감상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더불어 내년에는 더 많은 번역가와 만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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