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가 “맥주로 빚어낸 팬덤, 본게임은 이제부터”

벨루가가 제공하는 ‘스트레스 구급박스’

2019년 술술 풀리라는 의미에서 만난 스타트업은 맥주 정기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벨루가다. 벨루가는 둘째, 넷째 주 목요일, 크래프트 맥주 2종과 야식, 맥주도감이 담겨있는 스트레스 구급박스를 배달하고 있다. 어떤 맥주가 담겨있는지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확인할 수 없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영화 주인공의 말처럼 무엇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모름지기 벨루가의 슬로건인 ‘Drinks come ture’처럼 꿈꾸는 맥주를 이룰 법 하다. 벨루가에는 이 중 하나쯤 취향에 맞는 것 하나쯤은 있겠지 싶은 2,200여 종의 맥주가 구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구독자의 잔에 흘러내린 맥주만큼이나 넘쳐흐르는 벨루가의 이야기를 각 잔들에 담아봤다. 아이템 일관성을 위해(?) 특별히 술터뷰로 진행한다.

오늘의 술터뷰는 제주맥주와 함께했다

맥주키즈.. 벨루가의 첫 잔을 따르기까지=학창시절을 보낸 미국 중부 세인트루이스에는 버드와이저 본사가 있었다. 맥주는 흔한 로컬 비즈니스 중 하나였다. 동네 아저씨도, 옆집 주민도 맥주업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맥주는 손닿는 곳에 있었다.

맥주 친화적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김상민 벨루가 대표는 한국에서 다시 맥주와 조우한다. 카투사로 용산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이태원을 중심으로 수제맥주 붐이 불고 있었다. 당시 다양한 종류의 수입맥주를 접하며 본격적으로 맥주를 품게 됐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맥주 사업을 해야겠다”

맥주 사업을 하기엔 자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때가 왔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맥주 사업을 할 수 있는 적기가 찾아왔다. 2016년 당시는 에어비앤비, 우버 등 공유경제 모델 등장한 시기였다. 큰 자본이 들어가지 않고도 사업 모델을 꾸릴 수 있었다. 김 대표 입장에서 보면 양조장을 소유하고 맥주를 직접 생산하지 않아도 맥주 사업이 가능한 모델을 떠올릴 수 있게 된 셈. 김 대표는 “달러쉐이브 클럽처럼 정기구독 서비스만으로도 성장성을 봤다”며 “단순히 필수제로서의 배달이 아니라 기호식품도 큐레이션과 접목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큐레이션은 정기배달의 단점인 이탈률을 줄일 수 있는 장치였다. 어떤 물건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감,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접할 수 있다는 신비로움과 기호식품을 덧대 강력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봤다. 2016년 7월 주류 관련 고시가 개정되면서 맥주와 음식을 배달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서비스 중단..예기치 못한 쓴잔=“심경이 복잡했다. 회원에게 일일이 환불을 해야했다” 2017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벨루가는 4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마케팅도 없이 회원을 끌어 모으고 있던 시점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게 만든 법령이 이번에는 발목을 잡았다. 사정 당국이 음식 배달이 아니라 맥주를 배달하기 위해 음식을 끼워넣은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벨루가의 경우 배달 시 음식이 변질될 것을 우려해 가공 통조림과 스낵류를 함께 배달하고 있었다.

이 후 7월, ‘음식에 부수하여 맥주배달이 가능하다’는 법령이 생기고 더 이상 기존 서비스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 서비스를 계속 진행하면 범법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원고시를 악용한 사례로 낙인이 찍히고 법령이 다시 바뀌는 상황에서 벨루가 입장에서는 항변할 기회조차 없었다. 벨루가는 스스로 사업을 접었다. 과태료 처분이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 아니었다.

“유흥 카테고리에 있던 맥주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바뀐 법령 하에서 바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하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아마 법을 바꾼 몇 안되는 스타트업 중 하나이지 않을까”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가진 돈이 바닥나 김 대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팔았다. 사업을 접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무렵 비셰프 측에서 연락이 왔다. 기존 서비스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음식과 부수하여’ 맥주 배달이 가능하게 된 것. 사업 중단 100일 만의 일이다. 바뀐 법에 서비스 모델을 맞췄다. 이후 cj 측과 협력을 통해 맥주와 페어링할 수 있는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오가는 건배 속에 피어난 채널=“뭣도 모르고 달라들었다” 그래서 더 파급력이 컸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기존에 없던 맥주구독 서비스를 들고 규제의 화살을 피해 막힌 문을 두드리는 형상이니 말이다.

벨루가가 소싱가능한 맥주는 2,200여종.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직접 발품을 팔았지만 요즘은 먼저 벨루가 문을 두드린다. 이용자가 SNS에 야식박스를 올리면 홍보 효과도 상당할 뿐더러 자연스레 판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다소 폐쇄적인 주류업계 분위기에서 답을 찾았다.

“맥주는 정보 비대칭이 아니라 아예 정보가 차단돼 있는 분야 어떤 맥주가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지 찾기 어렵다. 영업사는 대개 수입사 브루어리와 미팅에서 소싱까지 맡고 국내 유통을 위한 영업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중고가 생긴다. 마케팅을 통해 고객과 친밀도를 높여도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작 맥주를 즐길 곳이 없고 영업에만 치중한다해도 일반 소비자가 알아서 해당 맥주를 찾기 어렵다”

벨루가가 맥주 공급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마켓플레이스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벨루가의 경우 최종 소비자에게 상품이 도달할 수 있고 마케팅 채널로도 인식되는 효과가 있고 소비자에게 전달할 경우 한 번에 소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벨루가가 선정한 맥주는 희귀하고 좋은 맥주라는 프리미엄이 붙는 것도 새로운 파급효과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과 새로운 맥주를 경험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어울리며 효율적인 마케팅 채널이 된다.

한 잔의 추억이 만들어낸 팬덤=현재까지 3만 병 이상의 맥주를 선보였다. 하지만 기술적인 허들이 없어 언제든지 후발주자가 생겨날 수 있다. 김 대표는 “어느 정도 불안감은 있지만 자신감도 있다”고 말한다. 자신감의 근원은 바로 벨루가 회원만이 얻을 수 있는 ‘감정경험’. 김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감정경험에 염두에 두고 구독자와 벨루가의 접점을 촘촘히 심어뒀다.

스트레스 구급상자에 함께 배달되는 맥주도감

맥주에 대한 좋은 경험을 전하는 것은 기본이다. 큐레이션을 통해 계절, 분위기에 어울리는 맥주를 선사한다. 이를테면 무더운 여름에는 청량한 라거를, 발렌타인 시즌에는 달콤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맥주를 보내주는 식이다. 직접 맥주를 고를 수 없거나 선호하지 맥주를 받게돼 생기는 작은 불평도 하나의 경험으로 쌓이도록 유도한다. 맥주도감을 통해 원산지와 역사를 전하고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곁들임 궁합이 좋은 안주를 건넨다. ‘경험’을 통해 기호를 알아가고 도전해보지 못하는 영역에 조금씩 다가서보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택배를 받기 전 가장 설레는 마음처럼 한 달에 두 번,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 온다는 사실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맥주 상자 안에는 새로운 맥주에 대한 기대와 기다리는 자의 설렘이 담겨있다. 유흥 카테고리에 있어 음지의 영역으로 분류되지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위안도 얻을 수 있다. 벨루가 수익 중 일부는 멸종위기 동물로 분류된 흰고래 벨루가를 구하는데 쓰이고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팬덤을 만들고 있다.

내년 이맘 때 벨루가, 축배를 들 것=“지금까지는 준비단계,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 김 대표에게 축배를 들 즈음은 언제냐고 묻자 내년 이맘때로 예상한다. 아이템은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새로운 서비스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준비하던 것들이 실현되고 이를 기반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시점이 올 것 같다. 지금까지가 창업 준비단계였다면 앞으로가 진짜 창업이라고 말 할 정도로 더 열심히 비장하게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으로 기존 플레이어들이 못봤던 돌파구를 발견해서 지금은 하나의 채널이 된 것처럼 내년에는 주류 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있을 정도의 중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맥주 구독서비스도 구독 층을 공고화하는데 힘쓸 예정이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멤버십 서비스를 강화하고 맥주 대중화에 앞장선다. “지금 맥주는 예전 커피와 비슷하다. 아메리카노만 접하던 사람이 카페라떼를 맛보고 새로운 커피에 눈 뜨고 자기만의 기호가 생기는 것처럼 맥주도 ‘바이젠 주세요’ ‘라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나아가 단순히 맥주 회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심리적 위안이 되고 삶의 버팀목이 되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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