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찌꺼기가 프리미엄 식품 원료로…리하베스트의 60단계 혁신 공정 -대기업 납품부터 자체 브랜드 '어글리바이츠클럽' 출시까지 사업 다각화 -"푸드업사이클링 2.0 시대 열겠다"...나노셀룰로스 소재 개발까지 리하베스트(RE:harvest)는 맥주와 식혜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활용해 '리너지(RE:nergy) 가루'라는 혁신적인 식품 원료를 개발하는 푸드업사이클링 기업이다. 푸드업사이클링이란 폐기되던 식품 부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업그레이드된 원료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리하베스트는 '버려지는 음식이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 아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제품명인 리너지는 'RE'(다시)와 'Energy'(에너지)를 결합한 합성어로, 부산물을 다시 가치 있는 원료로 만들어 지구와 사람에게 다시 에너지를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사명 리하베스트 역시 'RE'(다시)와 'harvest'(수확)을 결합해 '다시 수확한다'는 의미다. 회사명과 제품명 모두에 재탄생과 순환이라는 공통된 철학이 담겨 있다. 리하베스트는 2019년 설립 이후 12종의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하는 데 성공했다.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법인을 설립했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해 미국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는 중이다. 서울 강남구 소재 리하베스트 사무실에서 민명준 대표를 만나 푸드업사이클링의 의미와 부산물 처리 공정과 기술, 글로벌 푸드업사이클링에 대한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caption id="attachment_1001339" align="alignnone" width="789"] 사진설명=리하베스트 임직원[/caption] 엄격한 선정 기준에 따라 부산물 선정 리하베스트는 그동안 버려졌던 식품 부산물의 가치를 발견하고, 맥주와 식혜 부산물로 리너지 가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너지 가루는 시리얼, 피자, 과자, 제빵 등 다양한 식품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대체한다. 부산물은 4가지 기준에 따라 선정한다. 첫째, 물량이 충분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확보되지 않으면 부산물 사업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규제가 없어야 한다. 부산물마다 특화된 규격에 따라 수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영양 성분이 풍부해야 한다. 영양 성분이 부족하면 상품성을 확보할 수 없다. 넷째, 청결해야 한다. 오염된 부산물은 처리 공정 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리하베스트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맥주와 식혜 부산물을 시작으로, 현재 케일(케일박), 당근(당근박), 초콜릿(카카오셸), 밀(밀기울) 등 12종의 다양한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하고 있다. 민 대표는 푸드업사이클링 시장이 무한하다고 강조했다. " 원료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데 그 많은 부산물을 처리할 곳이 없어 폐기하고 있습니다.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푸드업사이클링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푸드업사이클링이 뉴노멀로 인식되고 있고, 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라고 푸드업사이클링 시장에 대해 설명했다. 영양·경제·환경 가치 뛰어나 폐기물로 여겨졌던 부산물에는 영양적, 경제적, 환경적 가치가 높다. [caption id="attachment_1001340" align="alignnone" width="392"] 사진설명=밀 부산물로 만든 밀기울와 분말가루[/caption] 부산물에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하다. 대부분의 부산물은 원물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만 추출하고 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에서 가장 맛있는 당분만 추출해 잼을 만든다. 잼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에는 영양 성분이 풍부하다. 밀에서 밀가루를 만들 때 제거되는 껍데기 부분인 밀기울에는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많다. 밀가루에 비해 단백질은 2배, 식이섬유는 무려 20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다. 칼로리는 밀가루가 100g당 364kcal인 반면, 리너지 가루는 338kcal로 오히려 낮다. 부산물은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부산물은 공급이 안정적이어서 가격 변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한 부산물은 하나의 원료가 여러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카카오 부산물에는 단백질이 풍부하면서 초콜릿 향료 역할도 한다. 향료와 단백질 파우더를 함께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부산물은 탄소 크레딧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리너지 가루 1kg을 생산할 때 탄소 배출 11kg 저감, 물 3.7톤 절약, 부산물 3kg 업사이클링 등 환경 효과가 크다. 민 대표는 "리하베스트는 2030년까지 Net Zero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리하베스트의 리너지 가루는 탄소 배출 및 폐기물 발생 저감, 물 사용량 감소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60번의 엄격한 공정으로 생산 민 대표는 리하베스트의 핵심 기술을 설명하며 '부산물의 여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리하베스트가 부산물 처리를 위해 매우 세밀하고 체계적인 다단계 공정을 운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크게 수거, 세척, 건조, 살균 및 풍미 강화, 분쇄 공정을 거친다. 영양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원료화 공정에 반도체 기술 등을 접목했다. 스마트한 수거 시스템 우리나라는 식품 이력제가 있어서 모든 원물이 추적 관리되어야 한다. 리하베스트는 부산물을 식품 원료로 등록하기 위해 처음부터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용 수거통은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니라 스마트 장비다. 수거통에 장착된 센서가 5분마다 온도와 습도를 분석해 자동으로 살균한다. 부산물은 배출되는 순간부터 변질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전처리 과정 공장 도착 후 입고 절차를 거쳐 체계적인 이력 관리가 이루어진다. 자외선과 원적외선으로 원료를 사전 처리하고 전용 세척 용액으로 부산물을 살균한다. 리하베스트는 부산물 자체가 이미 가공 과정을 거친 원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화학 성분 없이 부산물을 처리하고 있다. 혁신적 건조 시스템 건조가 가장 중요한 공정이라고 민 대표는 강조한다. 부산물에 포함된 수분, 기름 등을 제거하여 산패를 방지하고 부산물이 변질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차단한다. 피드백 제어 방식(기계 스스로 제어의 필요성을 판단하여 계속 수정 반복 동작하여 원하는 값을 얻는 방식)을 통해 원료의 영양과 위생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건조한다. 일반적인 열풍 건조 시간은 20시간이지만, 리하베스트는 이를 30분으로 단축했다. 이와 같은 제분 기술에 대해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균 제어와 풍미 강화 건조 후에는 화학 물질 대신 기계적 장치를 통해서 살균을 진행한다. 이후 진공 상태로 보관하면서 풍미를 강화한다. 4번의 정밀 분쇄 부산물은 질기다. 그렇기 때문에 딱딱하고 거친 부산물은 여러 번 분쇄해야 부드러운 파우더가 된다. 일반 분쇄 공정이 보통 1번만 하는 것에 비해 리하베스트는 4번의 분쇄 공정을 거친다. 세척과 건조 이후에는 최대한 곱게 갈면서도 이물질을 분리하는 분쇄 공정을 거치며, 분쇄가 완료되면 소분하여 원료화 공정을 마무리한다. 버려질 뻔했던 부산물이 리하베스트의 60개의 정밀한 공정을 거쳐 프리미엄 식품 원료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리하베스트는 4건의 원료화 공정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HACCP 인증을 받은 자사 공장에서 안전하게 원료를 생산하고 있다. "맥주 부산물이 연간 420만 톤 발생합니다. 이 모든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기술이 필요했어요. 그동안 시간과 경험, 노하우가 축적되어 부산물 처리 기술을 완성해왔습니다. 이제는 해외에서도 푸드업사이클링 기술을 배우기 위해 리하베스트를 찾습니다." 리하베스트 기술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미국, 인도네시아, 캐나다 등에서 리하베스트 공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녀왔었다. 대기업 납품에서 소비자 직접 판매까지 리하베스트는 국내 최대 맥주 제조사 및 수제 식혜, 수제 맥주 공장과 부산물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밀기울, 홍삼 및 생약박, 파인애플, 식혜박 등의 부산물을 수급하기 위해 현재 대기업과 논의 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너지 가루는 이를 필요로 하는 식품 기업에 납품된다. 오비맥주와는 해바라기 씨앗 등을 첨가하여 고단백 푸드업사이클링 식품 '리너지 바'를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다. B사와는 리너지 가루를 첨가한 빵류를, N사와 B사와는 피자 도우 제조에 활용하고 있다. T사와는 밀기울과 리너지 가루, 맥주 발효종을 첨가한 통밀 식빵 등을 만들고 있다. 김치 발효 시 필요한 보리 분말도 리하베스트가 J사에 제공하고 있다. 리하베스트는 올해부터 자체 브랜드도 만들어 직접 소비자와 만날 계획이다. 리하베스트의 '어글리바이츠클럽(Ugly Bites Club)'은 저당, 고단백 컨셉의 푸드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올 10월 중에 출시할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과 해외 확장 리하베스트는 인도네시아 최대 맥주 회사인 빈땅맥주와 함께 푸드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리하베스트는 4년 전 인도네시아에 법인을 설립하고 협력해왔다. 리너지 가루는 인도네시아에서 원료 등록을 완료해 현지 식당에 원료로 공급되고 있다. 올해는 미국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리하베스트의 미국 법인 설립은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글로벌 푸드업사이클링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민 대표는 "푸드업사이클링 시장이 가장 큰 곳이 캘리포니아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친환경을 선호하고 푸드업사이클링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이 가장 높은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는 환경 규제가 엄격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 푸드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습니다"라고 미국 진출의 배경을 설명했다. 리하베스트의 미국 법인 설립은 한국을 글로벌 푸드업사이클링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비전의 첫 단추다.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를 미국에서 검증받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리하베스트는 전 세계 맥주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OB맥주의 모회사인 ABInBev와 전 세계 네트워크를 보유한 푸드업사이클링 협회(UFA)와 함께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할 예정이다. 푸드업사이클링 2.0 선언...부산물에서 나노셀룰로스 개발 부산물에 다량 존재하는 식이섬유를 나노 단위로 분해하면 센서부터 자동차 내장재, 의료재까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추출할 수 있다. 리하베스트는 이 소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기존 푸드업사이클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이다. 식품에서 식품 원료를 개발한 것이 푸드업사이클링 1.0이라면 푸드업사이클링 2.0은 식품에서 전자·자동차·의료 산업까지 산업 소재를 개발한 것이다. ”푸드업사이클링 산업 발전을 위해 수요 발굴 필요“ 민 대표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일 어려운 게 새로운 산업의 수요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 대표는 시장의 수요 창출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학교 급식에 부산물로 만든 원료를 공급하는 방식 등을 통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요가 생겨야 시장이 생기고, 그다음에 필요하면 규제를 하면 된다"며 "그런데 수요가 생기기 전에 규제부터 하는 경우가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푸드테크 기업이 겪고 있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민 대표는 푸드테크 기업 및 기관과 푸드업사이클링협의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올 10월에 출범할 푸드업사이클링협의회는 푸드업사이클링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리하베스트가 꿈꾸는 미래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음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도전이 지구 전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혼자서 하기 힘들죠"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리하베스트의 여정은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의 모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