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 콘텐츠로 바이어가 먼저 찾아오는 구조 만들어
국내 중견 제조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면 북미나 유럽권의 해외 전시, 박람회에 참가한다. 부스 임대료 3,000만 원, 샘플 운송비, 통역사, 마케팅 자료, 출장비를 합치면 최소 1억 원이다. 부스를 찾은 100명 중 구매 권한이 있는 의사결정권자는 5명 정도다. 명함을 주고받지만 박람회가 끝나고 이메일을 보내면 응답률은 3%도 안 된다. 바이어는 그날 수십 개 부스를 방문했고 어느 회사가 무슨 제품을 만드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대리점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대리점은 이미 잘 팔리는 기존 브랜드를 우선시한다. 새 브랜드 제품은 창고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인다. 6개월이 지나도 판매 실적이 없으면 “시장 반응이 좋지 않다”며 추가 마케팅 비용을 요구한다. 지인 소개를 통한 네트워킹도 마찬가지다. 미팅은 잡히지만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이 끊긴다.

김조셉 메텔 대표가 주목한 건 이 세 가지 방법의 공통점이었다. 기업이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박람회에서는 부스를 찾아오는 방문자에게 의존하고, 대리점 모델에서는 대리점의 영업 의지에 의존하며, 네트워킹에서는 소개자의 영향력에 의존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왜 안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없다. “안 되네요”라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김조셉 대표는 2024년 2월 메텔을 설립하며 완전히 다른 접근을 제시했다. 링크드인 콘텐츠를 통해 해외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방식이다. “박람회에서는 우리 제품을 사세요가 첫 메시지다. 하지만 링크드인에서는 우리는 귀사의 문제를 이해하고 있습니다가 첫 메시지”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조셉 대표는 영상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IT 기업에서 콘텐츠 총괄, 프로덕트 디자이너, 제품 기획자 등 다양한 직무를 거쳤다. “표면적으로는 성격이 전혀 다른 직무를 전환한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대상과 이들이 처한 문제를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를 만들고 특정 행동을 독려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콘텐츠 설계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새로운 인식을 주입하기보다 잊혀진 기억과 감정을 꺼내주는 것에 집중한다. 데이터 보안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보다 프랑스 여행 중 여권을 소매치기에게 도둑맞았을 때의 상실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이버 보안 프로그램을 알아볼 명분이 된다. “인식의 변화를 만드는 콘텐츠 설계의 핵심은 소비자가 묻어뒀던 고통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둘째, 콘텐츠는 소비자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AI는 마케팅 산업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문장은 “그렇겠지” 정도의 반응만 얻는다. 하지만 “AI 카피라이팅 툴을 쓰면 당신의 브랜드는 경쟁사와 똑같아 보일 것이다”라는 문장은 소비자를 멈춰 세운다. “소비자는 yes and no로 귀결되는 콘텐츠보다 yes or no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세우게 만든 콘텐츠를 기억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셋째, 콘텐츠는 경쟁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경험과 고유한 관점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김조셉 대표는 AI에게 영상학을 공부한 사람이 방송국 인턴, IT 스타트업 콘텐츠 총괄, 제품 기획자,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거쳐 스타트업 창업자가 될 확률을 물었다.
낙관적으로 계산해도 0.0000000018%였다. “전세계에 9,000만 명의 창업자가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내가 걸어온 여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메텔의 접근 방식은 구체적이다. 먼저 링크드인 세일즈 네비게이터를 활용해 타겟 바이어를 정밀하게 정의한다. 국가, 산업, 직급, 기업 규모로 필터링하면 수천, 수만 명의 잠재 고객 리스트가 나온다. 박람회에서 명함 100장을 뿌리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최근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
다음으로 콘텐츠 전략을 수립한다. 대표자 명의로 매주 2회, 타겟 바이어들이 실제로 고민하는 문제를 다루고 해결 방식을 제시하는 콘텐츠를 발행한다. 단순히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를 읽은 바이어는 “이 사람은 우리 업계를 이해하고 있구나” “이 사람이라면 우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콘텐츠에 반응을 보인 바이어에게는 개인화된 연결 요청 메시지를 보낸다. 이 메시지는 스팸이 아니다. 바이어가 이미 콘텐츠를 봤고, 메시지가 바이어의 관심사와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즉각적인 판매 요청이 아닌 정보 공유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바이어가 3개월간 콘텐츠를 보고 댓글을 주고받고, DM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신뢰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김조셉 대표는 설명했다. 실제로 자동화 설비 구매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바이어는 먼저 연락한다.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구조’다.

초기 투자 비용도 박람회의 10분의 1 수준이다. 메텔의 서비스 비용과 링크드인 세일즈 네비게이터 구독료를 합쳐도 월 400만 원 정도다. 6개월 계약 기준 2,400만 원으로 박람회 한 번 참가 비용의 4분의 1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투자가 고정 비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율이 불리하게 움직이면 즉시 타겟 국가를 변경할 수 있다. 링크드인에서 타겟 필터를 바꾸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모든 과정이 데이터로 추적된다. 콘텐츠 조회수, 프로필 방문자, 연결 수락률, 메시지 응답률, 미팅 전환율이 매월 분석된다. “독일 자동차 산업 타겟의 응답률이 5%인데 화학 산업은 15%다”, “제품 기능을 강조한 메시지보다 비용 절감을 강조한 메시지의 응답률이 3배 높다” 같은 인사이트가 도출된다. 환율이 변동하거나 규제가 바뀌면 2주 안에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
메텔은 지난 21개월 동안 링크드인 기반 해외 고객 발굴 대행 서비스를 운영하며 18만 건이 넘는 각 산업별 콘텐츠 패턴을 분석했다. 현재 누적 고객은 70개 사이며 제조, 바이오헬스케어, ESG, 코스메틱스 분야의 중견 제조업체 비중이 높다. 법인 설립 첫해인 2024년 매출은 1.4억 원이었지만 2025년 기준 연매출은 6~7억 원을 바라보고 있으며 손익분기점 달성이 가시화됐다. 2024년 7월에는 소풍벤처스·더벤처스·마크앤컴퍼니로부터 3.5억 원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김조셉 대표가 메텔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링크드인 마케팅 대행이 아니다. B2B 해외 진출의 패러다임을 “기다림에서 주도로”, “의존에서 자립으로”, “불투명에서 투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박람회 일정을 기다리거나 대리점 계약을 재협상할 필요 없이 링크드인에서 필터를 바꾸고 메시지를 조정하면 된다. 1억 원을 투자해도 응답률 3%에 그쳤던 전통적 B2B 영업 방식이 디지털 직접 세일즈로 전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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