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결산] "플랫폼 지고 팹리스 떴다"… 리벨리온·퓨리오사AI '유니콘' 등극

- C-커머스 공습에 무너진 커머스… 스타트업 생태계 '옥석 가리기' 잔혹사 2025년 스타트업 생태계는 '하드웨어의 역습'과 '플랫폼의 몰락'으로 요약된다. 수년간 시장을 지배해 온 B2C 플랫폼 기업들이 수익성 악화와 성장 정체로 고전하는 사이, 그 빈자리를 고도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딥테크(Deep Tech) 기업들이 채웠다. 이는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붐과 맞물려 한국 스타트업의 지형도가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하드웨어 및 인프라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유니콘 대열 합류 올해 탄생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기업들은 대부분 시스템 반도체와 AI 분야에서 나왔다. 리벨리온(Rebellions)은 시리즈 C 라운드에서 약 3,500억 원을 유치하며 기업가치 2조 원을 돌파했고, 퓨리오사AI(FuriosaAI) 역시 1,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업스테이지(Upstage) 또한 경량화 언어모델(sLLM)로 B2B 시장을 뚫어내며 유니콘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한 기업 가치 상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AI 인프라 도입 확대로 인해 2025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두 자릿수 성장이 예상되며, 특히 AI 추론용 칩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국내 팹리스 기업들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다. 리벨리온은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칩 'ATOM'을 개발하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퓨리오사AI는 엣지 AI 칩 'RNGD'로 자율주행·로봇 분야에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업스테이지는 기업용 AI 솔루션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국내외 대기업 고객을 확보했다. 하드웨어 르네상스… 기술 난이도가 경쟁력 2025년은 '기술 난이도'가 곧 '경쟁 우위'로 직결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빠른 시장 진입과 네트워크 효과가 스타트업 성공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원천 기술과 장기간의 R&D 투자가 필수가 되었다. AI 반도체 개발에는 수백억 원의 초기 투자와 수년간의 개발 기간이 필요하며, 양산 단계에서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와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일단 시장에서 검증받으면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적 해자(Moat)'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투자자들은 높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딥테크 분야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벤처스퀘어가 관찰한 후속투자·Pre-IPO 사례에서도 하드웨어와 인프라 기술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두드러졌다. '실사용자 기반 실증 → PoC → 해외 파트너십 → 후속투자'의 루트가 표준화되면서, 데이터와 실증 역량을 보유한 기업만이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플랫폼의 겨울, 그리고 폐업의 도미노 반면, 커머스와 중개 플랫폼 업계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누적 투자 235억 원을 받았던 명품 플랫폼 '엔코드'와 중견 게임사 '잔디소프트'의 폐업은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의 초저가 공세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국내 버티컬 플랫폼들은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줄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실제로 올해 팁스 선정 기업 중 23개사가 문을 닫았는데, 이는 기술력이 있어도 현금 흐름 관리에 실패하거나 확실한 수익 모델(BM)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B2C 플랫폼 기업들은 고객 획득 비용(CAC)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고객 생애 가치(LTV)는 정체되면서 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에 빠졌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2025년은 파티가 끝난 후 청구서를 받아든 해였다"며 "지난 몇 년간의 유동성 파티는 끝났고, 이제는 실질적인 수익과 성장을 증명해야만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쿠팡의 수난, C-커머스 공습… 국내 커머스의 위기 C-커머스의 공습은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한국 커머스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중국 플랫폼들은 자국의 방대한 제조 인프라와 물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간 유통 단계를 대폭 줄이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는 국내 중개 플랫폼들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했다. 또한 C-커머스 플랫폼들은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 연동을 통해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며, 젊은 소비자층을 빠르게 흡수했다. 국내 플랫폼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화된 큐레이션과 브랜드 가치를 강조했지만, 가격 민감도가 높은 시장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불거진 쿠팡의 초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당국과의 갈등 상황도 연말을 넘어 신년까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엄혹해진 IPO 시장과 유연해진 대기업의 변화 기업공개(IPO) 시장 역시 깐깐해졌다. '파두 사태' 이후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 상장 심사가 엄격해지면서 자진 철회가 속출했다. 파두는 AI 반도체 기업으로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했으나, 실적과 기술 검증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며 상장이 무산되었다. 이는 기술특례 상장 제도 자체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졌다. 그러나 엔더블유시 등 확실한 실적이나 기술을 입증한 기업은 성공적으로 증시에 입성하며 '옥석 가리기'가 진행 중이다. 엔더블유시는 전력 반도체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IPO에 성공했고, 상장 후에도 안정적인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단순 투자를 넘어 스타트업을 자사 공급망에 편입시키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강화하며 새로운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기술을 활용해 혁신 속도를 높이고,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판로와 자원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상생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실증과 파트너십이 생존의 열쇠 스타트업 영역에서는 '실사용자 기반 실증 → PoC → 해외 파트너십 → 후속투자'의 루트가 표준화됐다. 특히 AI·딥테크 스타트업은 데이터·실증 역량 보유 여부가 투자 유치의 핵심 잣대가 됐다. 대기업 기반 액셀러레이터와 통신사의 프로그램이 사업화 지원까지 체계화되면서, 초기 기업의 '실수요 고객 확보'가 쉬워졌다. 이는 스타트업이 단순 아이디어 단계를 넘어 실제 시장에서 검증받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는 것이 필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과거에는 투자 유치가 성공의 지표였지만, 이제는 실제 고객 확보와 매출 달성이 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며 "투자자들도 아이디어보다는 실증 데이터와 고객 레퍼런스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파티는 끝났고 숙취는 남았으나 해는 떠오른다 "2025년은 파티가 끝난 후 청구서를 받아든 해였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의 말처럼, 지난 몇 년간의 유동성 파티는 끝났다. 2026년은 '생존'을 넘어 '증명'의 해가 될 것이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스케일업(Global Scale-up)' 역량과, AI 거품론 속에서도 실질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만이 넥스트 유니콘의 왕관을 쓰게 될 것이다. 하드웨어와 딥테크 중심의 재편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빠른 모방'에서 '독자적 혁신'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생태계의 질적 성숙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플랫폼 기업들도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여전히 기회는 존재한다. 단순 중개를 넘어 큐레이션, 커뮤니티, 브랜드 가치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2026년 이후의 승자는 기술력과 시장 적합성, 그리고 글로벌 확장 능력을 모두 갖춘 기업이 될 것이다. https://www.venturesquare.net/1029925 https://www.venturesquare.net/1029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