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결산] 벤처투자 10조 초과… 민간 자본이 주도한 '딥테크 쏠림'

- "돈맥경화 풀렸다"… 벤처투자 회복세 속 AC는 '컴퍼니 빌더'로 진화 2025년 한국 벤처투자 시장이 긴 침묵을 깨고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캐피탈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9조 8천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3.1% 증가했다. 2022년 이후 얼어붙었던 투자 심리가 풀리며 '돈맥경화' 현상은 해소되었지만, 그 온기는 AI와 시스템 반도체 등 특정 딥테크 분야에만 집중되는 '초양극화' 양상을 띠었다. 이번 회복세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자본의 약진이다. 3분기 누적 기준 벤처펀드 출자자 중 민간 비중은 83.4%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과거 정부 모태펀드가 마중물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금융권과 대기업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가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며 투자의 기준을 재정립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와의 연동성도 뚜렷했다. 2025년 1분기 글로벌 벤처투자는 AI 붐을 타고 분기 기준 약 1,130억 달러로 집계되며 큰 폭의 회복을 보였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AI 인프라 수요 폭증에 힘입어 전년 대비 14% 성장한 7,170억 달러(약 1,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민간 자본 역시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당장 수익화가 가능한 하드웨어 및 인프라 기술 기업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딥테크 투자, 3조 원 시대 개막 국내 딥테크 투자액은 전년 대비 큰 폭 증가해 연간 3조 원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자금의 '양적 회복'과 '질적 재배치'가 동시에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벤처스퀘어 내부 후속투자 기록에서도 Pre-A·Series-A·Pre-IPO 단계의 거래가 다수 관찰되며, 특히 기술형 스타트업에 대한 후속투자가 활성화되었다. 투자 패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단기 회수에 초점을 맞춘 자금이 아니라 R&D·실증 중심의 장기 투자로 자금 성격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AI 추론용 칩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국내 팹리스 기업들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고,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같은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오르는 성과로 이어졌다. 대형 VC의 한 심사역은 "최근 LP(출자자)들은 펀드 출자 시 'AI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이 명확한지, 혹은 글로벌 매출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묻는다"며 "단순 내수용 플랫폼이나 아이디어 단계의 기업은 투자심의위원회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액셀러레이터, '벤처 스튜디오'로 체질 개선 가능할까? 초기 투자를 담당하는 액셀러레이터(AC) 업계는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한창이다. 단순히 유망한 스타트업을 선발해 시드 자금을 대는 기존 방식을 넘어, 직접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경영진을 구성해 창업시키는 '벤처 스튜디오(Venture Studio)' 혹은 '컴퍼니 빌더' 모델이 2025년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딥테크 분야의 기술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대학 연구소나 대기업 사내벤처의 원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AC가 '기획자'이자 '공동 창업자'로서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다. 2025년은 액셀러레이터가 단순 멘토링·시드투자를 넘어 '현장 실증(POC)·B2B 연결·해외 네트워크' 중심으로 기능을 확장한 해였다. 대기업·통신사 기반 액셀러레이터의 2기 프로그램은 멘토링·홍보에서 사업화 지원까지 체계화되었고, 민간 주도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해외 VC·액셀러레이터와의 실무적 접점도 늘어났다. 액셀러레이터들이 현장 중심의 데모·PoC를 프로그램 핵심으로 삼으며, 후속투자·해외진출로의 연계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투자의 양극화, 심화되는 '승자독식'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투자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AI와 반도체 등 핵심 딥테크 분야에는 대규모 자금이 몰리는 반면, B2C 플랫폼과 중개 서비스 등 전통적인 스타트업 모델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의 초저가 공세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국내 버티컬 플랫폼들은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줄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누적 투자 235억 원을 받았던 명품 플랫폼 '엔코드'와 중견 게임사 '잔디소프트'의 폐업은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올해 팁스 선정 기업 중 23개사가 문을 닫았는데, 이는 기술력이 있어도 현금 흐름 관리에 실패하거나 확실한 수익 모델(BM)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실증이 경쟁력 지표… 후속투자의 새로운 기준 스타트업 영역에서는 '실사용자 기반 실증 → PoC → 해외 파트너십 → 후속투자'의 루트가 표준화됐다. 벤처스퀘어가 관찰한 후속투자·Pre-IPO 사례는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특히 AI·딥테크 스타트업은 데이터·실증 역량 보유 여부가 투자 유치의 핵심 잣대가 됐다. 대기업의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의 사업화 채널로 기능하면서 초기 기업의 '실수요 고객 확보'가 쉬워졌다. 이는 스타트업이 단순 아이디어 단계를 넘어 실제 시장에서 검증받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는 것이 필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2025년은 국내 자본과 정책이 '기술의 장기적 가치'에 베팅하기 시작한 전환점"이라며 "정책의 방향성은 명확하나 집행의 일관성과 행정 절차의 간소화 없이는 현장의 체감 변화가 제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술자금의 흐름, 2026년에도 지속 글로벌 기술자금의 흐름이 이어지는 한 국내 딥테크 스택(데이터·인프라·인력)에 대한 장기 투자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액셀러레이터·VC·스타트업 간의 실증 기반 협업과 정부의 구조적 금융 개편이 제대로 맞물린다면, 2026년 이후 한국의 딥테크·AI 생태계는 보다 높은 성장 궤도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VC 심사역은 "2026년은 자금의 유동성보다는 투자의 '선별성'이 더욱 강화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기술기반 유니콘·스케일업 사례 증가가 기대되지만, 명확한 회수(Exit) 전략과 기술적 해자(Moat)를 증명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이 시장의 기초 체력을 회복한 해였다면, 2026년은 회복된 자금이 실질적인 '글로벌 성과'로 이어지는지를 검증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민간 주도의 벤처 생태계가 정착됨에 따라, 스타트업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기보다 명확한 회수 전략과 기술적 해자를 증명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투자 파이프라인과 글로벌 BD 허브의 역할을 병행하는 '실증-스케일업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성공 사례는 민간·공공 연계 프로그램 설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기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글로벌 진출'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자격 요건이 되었다. https://www.venturesquare.net/1029921 https://www.venturesquare.net/1029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