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가 상사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

‘상사가 부하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에 이은 2탄입니다. ^^

이번엔 순수하게 부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사와 반대의 입장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역시 이 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편의상 다섯 가지만 뽑았다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TV를 보는데 눈에 띄는 장면 하나가 있더군요.
“개콘보다 웃긴 건 상사의 썰렁한 농담”

사용자 삽입 이미지매우 강렬한 인상이 들었습니다. 상사의 썰렁한 농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부하 직원, 그리고 그 웃음을 진심으로 알고 함께 웃으며 퇴장하는 상사.
이 둘은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며 어쩌면 서로 배려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간은 희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부하 직원들은 상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요? 좀더 나은 상사, 보스를 기대하며 살아왔던 세월을 기억하며 적어봅니다.

▶ 부하가 바라는 상사

1. 칭찬 좀 해줬으면

잘 하면 당연하고, 못 하면 한바탕 난리굿이네요. 내 생각에는 잘 한 것 같고 남들도 잘했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 팀장은 심드렁하네요. 성과도 분명히 있었고 잠깐의 여유를 가질만도 한데, 왜 우리 보스는 여유를 두지 않고 다른 일을 또 시키면서 이전의 성공을 잊으라고 강요하는 것일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사실 상사 입장에서 보면 칭찬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 명의 직원들을 고루 칭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칭찬이 또 다른 자만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위기감도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성공 역시 실패의 아버지일 수 있으니까 말이죠.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이미 상사들은 체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며 공평한 상황에서 자화자찬 하는 것이 쑥쓰러워서일 수 있습니다. 칭찬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하 직원들이 능력이 저평가 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타 부서 사람들이나 타 직원들로부터 칭찬 받은 직원이 시기와 질투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상황까지 상사는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상사는 부하 직원들을 가급적 과하게 칭찬하지 않는 것입니다.

2. 빨리 좀 퇴근해줬으면

세상에서 제일 꼴보기 싫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별로 하는 일 없이 책상 위에 다리 올리고 앉아서 빈둥거리다가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상사가 아닐까 싶네요. 이 상사는 퇴근 즈음 앉아서 퇴근하는 부하 직원들의 뒤통수에 대고 ‘나 예전에는 안 그랬다’며 은근 압박을 주네요. 퇴근 시간에 잡는 회의는 거의 극악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심지어 약속은 해 놓은 상태. 우울하네요. 괜히 왜 저녁 같이 먹자고 하는지 더 괴롭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어쩔수 없이 야근 시간을 또 채워야 하니까요.

상사가 되어가면 점차 일의 강도는 줄지만 일의 복잡도는 증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일이 한꺼번에 우루르 쏟아지고 처리하는 경향이라기보다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하는 일도 있고 그 위의 윗 사람의 호출에 대기 상태로 앉아 있는 경우도 있죠. 상사들은 또한 자신의 맡은 일과 함께 부하직원들이 올린 내용을 검토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책임의 양에 따라 부하 직원들의 일 전체가 그의 일이 되고 그의 업무 품질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죠.

더구나 이미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 되기 시작하면 예전의 활기찬 사회적 관계 확대보다는 좀더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사귀기보다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부하직원들과 좀더 친해지고 대화하고 싶어하죠. 상사들이 야근을 많이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의무적으로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의도도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부하직원들은 상사를 불편해 한다는 것이 문제겠죠.

어쩌면 다른 직원들이 빨리 퇴근할 수 있도록 누군가 폭탄 제거반 임무를 띄고 상사와 저녁 약속을 잡고 일찍 모시고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상호 소통이 증가하면 새로운 인간적인 면모도 발견하게 될 겁니다.

3. 비전을 보여줬으면

상사라는 사람이 후배들 모아 놓고 회사 욕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더 심한 것은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경우죠. 누가 여기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라고 강요했는지 모르겠는데 자기가 얼마나 헌신하며 살았는지를 연신 강조하죠. 듣기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아주 지겹네요. 회사가 위기에 닥치면 상사는 두 가지 얼굴로 변신하는데요. 하나는 근심덩어리로 부하 직원들 마저 우울증을 전파시키는 경우와 지나치게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의 근심을 애써 외면하는 경우겠죠. 물론 갑자기 자기 살길 찾아 떠나는 사람부터 회사와 전면 투쟁을 통해 사기 살길을 찾는 사람, 심지어 정치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이런 상황 때마다 부하직원은 ‘비전’과 조직의 방향성을 알려줄 영웅 캐릭터를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사는 영웅이기는 커녕 우리와 함께 고민하는 소시민이네요.

상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상사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 속에서 참 많은 문제를 부딪혔을 것이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다각도로 실행해봤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라고 부하직원들이 원하는 것처럼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시간상 상사들이 판단하기 힘든 시기일 수도 있고 이미 비전과 방향성이 확고하게 전 직원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사들에게 비전을 달라고 턱괴고 기다리기보다 함께 우리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전과 방향성이 일시 혼란스럽다고 해서 그 잘못을 상사에게 떠넘기기보다 내가 더 오래 이 회사를 다닐 것임을 확신한다면 스스로 조직의 비전을 제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4. 회식은 빨리 좀 끝내줬으면

요즘은 참 많이 줄긴 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조차도 ‘요즘 사람들 길게 술 안 마셔’ 따위의 세태 이야기를 한숨을 섞어 이야기하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오래 질기게 맛가게 회식을 끌기를 바라는 상사가 있습니다.
2차 3차를 끌고 다니면서 옆에 착 달라 붙어 있는 부하 직원과 함께 술자리든 노래방이든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랍니다. 술이 떡이 되어서는 다음날 자신은 사우나로 출근하고 부하직원들은 오전부터 마감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상사와 다시는 술자리에 앉기도 싫습니다. 더구나 회식에서 뭔 말이 그렇게 많은지, 혼자서 흥분하고 혼자서 즐거워 하고 굳이 안 하겠다는 사람 불러 일으켜 노래 시키고 아주 진상입니다.

회식을 질질 끄는 상사는 대부분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스스로가 그런 자리에서 상사를 상대해왔던 사람이 대부분인데요. 이런 상사들은 자신들이 부하직원이었을 때 똑같이 지겹고 싫었지만 이 때 아니면 상사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술자리와 회식 자리는 늘 공동체에게 같은 기억을 남겨줍니다. 조직문화에 있어서 같은 기억, 그것도 강렬한 기억은 결속감을 높여주는 작용을 하죠.

회식을 끌어가는 상사 입장에서는 또한 부하직원들의 평균 기대치를 상회하고 싶어하는 욕심도 있습니다. 몇몇은 일찍 가버리고 싶겠지만 일부 적극적인 부하직원들은 상사와의 친밀도를 높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적인 이야기를 섞어 가며 상사와의 교감을 원하니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요. 그런데 이런 부하 직원들과의 대화가 이어지면 사실상 지금 나머지 사람들을 얼른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술 자체를 좋아하는 알콜중독성 자리나 지나치게 교조주의적인 자기중심의 종교집회를 연상하는 회식 자리는 여전히 직장생활의 최대 적이긴 합니다.

5. 클라이언트나 보스로부터 방패가 되어주었으면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맞고 들어온 아이에게 왜 맞았느냐며 때리는 상황일 겁니다. 대부분의 직장생활은 회사내 업무도 많지만 회사 조직간 협업이나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협업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불가피하게 ‘갑과 을’의 상황으로 나뉘어지고 을의 입장에 처한 직원들은 스트레스가 하늘을 치솟게 됩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상사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상대 편의 이야기를 좀더 신뢰한다면 아주 지옥같은 기분이 듭니다. 상사는 어떻게든 상황을 끌고 나가고 싶어하고 부하직원들은 답이 보이지 않고 점점 문제는 미궁 속에 빠져듭니다.
윗사람으로부터 부하직원들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상사는 또 어떻구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항변을 하는 상사는 그 잘못을 부하직원 탓으로 돌립니다. 아주 치사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이런 사람들은 여기저기 상황을 적절하게 잘도 갖다붙이며 자신만 살겠다고 하네요. 심지어 인사권자 앞에서 잘 된 건 자기 덕이고 잘못 된 것만 부하 직원 탓하는 상사는 아주 살인 충동을 불러 일으키게 하죠.

상사들이 어느 정도 부하 직원을 거느리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상사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가정하고 봅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수의 상사가 사실은 부하 직원을 부릴만한 성품이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MBA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사람들이 경영은 잘할지 몰라도 부하직원과의 소통과 협업에는 실패하게 되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죠. 지식과 능력으로 관리자급으로 지위가 올라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부하직원들과의 소통이나 교감, 또는 인간적인 교류를 반드시 잘할 것이란 기대가 오히려 더 큰 실망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윗 사람과 클라이언트에게 잘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많지만 부하직원들을 잘 챙겨줘서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입니다. 상사들의 평가는 대부분 하향식 평가에 의한 결과이며 상향식 평가는 반영되지 않으니 꼭 그런 사람들이 상사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그런 사람들이 조직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도 사실이니 참 씁쓸하죠.

따라서 누군가 직장생활에서 나의 방패, 또는 우산이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애초에 그럴 일은 별로 없다는 생각으로 다니는 것도 속편할 겁니다. 상사는 그 사람 생존에도 정신 없습니다. 내 생존을 위해 희생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도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

예전에 일본 기업 미라이공업이 소개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대충 선풍기로 이력서를 뿌려 떨어진 사람에게 과장을 맡기고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대리를 맡겨도 잘하더라는 식입니다.

2007/07/31 [미라이 쇼크] 신도 스승으로 받드는 직장은 있었다

그런데 이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지나치게 우리가 한 조직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여 ‘역할놀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결국 우리 함께 다 잘 살자는 것이 목적일텐데 말이죠.

직장 생활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길래 상사와 부하직원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생각해봤습니다.

이제 한 해의 절반을 마무리하는 6월이 시작됩니다. 활기찬 5월의 마무리가 되시길 빌겠습니다.

* 더 좋은 상사를 위한 프로젝트도 있군요. ^^
더 나은 상사들을 만들기 위한 구글 직원들의 실험 [하이컨셉 & 하이터치]
절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직장상사 유형 5가지 [미스터 브랜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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