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혁신을 위한 초석 – 책임감, 성장욕, 그리고 긍정성

제목이 다소 거룩해보이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약간이나마 나은 방향으로(그렇게 믿고 싶네요) 변하게 된 계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1.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 – 과연 이 세상은 누구의 책임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때는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나는 혈기왕성하고 잔머리를 많이 굴리던 아이였던 듯 하다. 물론 스스로 잔머리꾼이라고 생각했을리는 없고.

하루는 학교에서 무언가 일을 저질러서 교무실에 불려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담임선생님은 교련 담당이었다. 과목 이미지부터가 빡빡했다. “이 선생님은 나를 안 좋아하나보다” 싶었다. 교무실에 나를 불러놓고 무언가 시킨 것을 왜 안해왔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분이 씨익 웃으시면서 하는 말씀이 가관이다.

“저어기 차를 타고 한참 가다보면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잔뜩 누워있어요. 거기 누워있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일으켜세워서 물어보면 저 마다 나름의 이유가 다 있어요. 한명 한명.. 한명 한명.. 다.. 다 핑계가 있어요.””저어기 차를 타고 한참 가다보면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잔뜩 누워있어요. 거기 누워있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일으켜세워서 물어보면 저 마다 나름의 이유가 다 있어요. 한명 한명.. 한명 한명.. 다.. 다 핑계가 있어요.”

분명 나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고, 누가 들어도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토록 억울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나보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말을 돌이켜보면 한명의 어른의 눈에 그 고등학생이 어떻게 비춰졌을 지 약간은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동아리 시절. 나름 꽤 심한 헌신(commitment)을 요구했던 모임이었던만큼 물리적, 시간의 투자가 컸다. 그런데 모임을 주최하는 입장이 되어보면 항상 신기하게도 사람들마다의 일관성이 드러나는 듯 하다. 그 때 모 선배가 모임에와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분… 많이들 바쁘시죠? 학교 과제도 해야하고, 수업 팀모도 나가야하고, 부모님과 식사도 해야하고, 여자 친구도 만나야 하고, 오다보면 차도 막히고, 지하철이 고장나기도 하고… 많이들 바쁘실 거예요.

이렇게 늦고, 빠지고 해야할 상황을 곰곰히 놓고 보면 분명 누구나 비슷하게 일어날 법한 일들이예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항상 늦는 사람이 늦고, 항상 뭔가를 빼먹는 사람이 빼먹고, 항상 뭔가 못해오는 사람이 못해와요. 왜 그럴까요?”

아마도 이러한 일련의 경험이 쌓여오면서, 나름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형성되어왔을 것이다. 어느순간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의 일관성이 신뢰의 기초가 되었고, 그러한 신뢰의 출발은 그 사람이 “책임”의 소재를 어디서 찾는가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 듯 하다.

세상에는 책임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과 내부에서 찾는 사람으로 나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외부와 내부가 섞여있겠지만, 결국 최종적 책임을 어디서 찾는가가 그 사람의 미래를,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개선의 여지가 있고 발전할 수 있는 문제를 찾은 것이며, 미래는 성장과 발전의 희망으로 가득하게 된다. 반대로 이 문제가 “이 사람” “이 환경” “이 상황”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책임을 가리키는 사람은 결국 자신은 더이상 변할 필요도, 변할 것도 없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더이상 개선의 여지도 없다는 의미이고, 시간이 지나면 남들과 환경에 대한 불평 불만만이 가득하게 된다. 결국에는 누가 행복해지고 누가 불행해질지는 자명한 것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것이 내가 믿는 “불행론”이다. 나는 모든 불행은 “비교”와 “기대”에서 온다고 믿는다.

연인, 차, 연봉, 집, 자식, 부모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게 사람의 마음이고 여기서 모든 불행이 온다.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고, 행복과 만족의 기준이 자신의 내면에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 남들의 인정, 외부로부터의 연봉, 명예,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행복을 유지하기란 참 쉽지 않다. 인생은 항상 상대적이고 순간의 연속이기 때문에 한번의 우위가 다음번의 우위를 보장하지 않으며, 여기에서 행복감을 찾는 순간 끊임없이 번뇌에 시달리게 된다. 나의 행복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외부로부터 행복을 찾고자, 혹은 요청을 하여선 안된다.

두번째로 남에게 “기대”려고 하는 마음 속에서 또 하나의 불행이 싹튼다. 스스로의 인생이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 아니고, 남에게 덕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불행이 생겨난다. 사실 자기 멋대로 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믿는 마음, “~~한 관계에서는 당연하다”, “이 때는 이 사람이 이렇게 해줘야지~”는 마음 등이 사실은 모두 불합리한 기대이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것이 없다. 그러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기대함이 없기 때문에 속상함도 없다. 남이 무언가 도와준다면? 그저 진심으로 감사하면 된다. 물론, 무언가 다시 돌려준다면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지만.

2. “Better than the Best” – 세상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더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중학교 때 처음으로 온라인 게임을 시작하였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말하자면 “동네짱”이었다. 어려서부터 1만 시간 이상을 게임에 투자한 바, 주변에서 나보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거만이 하늘을 찔렀던 듯 하다. 그러다 나우누리의 나모모라는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온라인 대전을 하였다. 몇 시간에 걸쳐 부딪힌 결과는? 참담한 98:11으로 완패. 상대방이 더이상 상대해주기 힘들다고 자러 간다고 했던 듯 하다. 나는 발목을 부등켜잡으며 좀더 붙어달라고 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모르던 세상에 나보다 더 잘하던 사람이 있었다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처음 나온 것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온라인 게임에 제대로 불이 붙었고, 1만시간이 10만시간이 되며 결국 듀크3D, 퀘이크2, 퀘이크3, 언리얼토너먼트라는 계보(?)를 거치며 국내대회 1등, 세계대회 3등을 하였다. 그런데 세계대회 3등에서 내가 게임을 완전히 그만둘 계기를 만났다. 세계 2등까지는 어케 대충 하면 될 듯 하였다. 그런데 당시에 세계1등을 하던 플레이어를 보고는, “아, 여기서부터는 재미가 아니라 인생을 걸어야만 이길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게임 대회를 떠났다. 그 뒤로 간간히 재미로는 하긴 했지만, 더이상 1시간 이상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물론 게임뿐만이 아니었다. 공부면 공부, 대회면 대회, 아이디어면 아이디어, 실행력이면 실행력. 항상 세상에는 어딘가에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더 뛰어난 결과를 내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 것이 많은 자극이 되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항상 내가 알고있는 best보다도 더 better한 것이 반드시 있구나! 참 가슴뛰는 깨달음이었다. (지금 보면 참 당연한데도 당시에는 왜이리 놀랐는지..)

그리고 더 놀라운건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도, 분명 어떤 “사람”이 그것을 이루어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이 아니라 “자신만의 규칙과 필드”를 정의해가며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이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이러한 것을 이루어냈다. 이것이 나에겐 매우 큰 희망이자 꿈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항상있지만, 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순간 어쩌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best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참 어리석으면서도 순수한 갈망이었다. 그 뒤로 각종 위인전,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보면 초현실적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엄청난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나에게 고스란히 힘을 주었다.

“인생을 걸만한 일을 찾았다” 싶었다. 무언가 흥미진진하고 새롭고 발전적이고 세상을 좀더 즐겁고, 살기 편하게 만드는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듯 싶었다. 그리고 어떠한 분야에 정상에 도달하고 싶다는 그런 갈망이 평생 사라지지 않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Better than the Best. 그리고 나서는 Best of the Best.

3. “한 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제대로 살아보자” – 긍정의 힘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가줄 수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누구나 사춘기를 겪을 때 돌이켜보면 설명하기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물론 그러한 날들이 있었고 (매우 짧았지만 당시 대한민국에 몇개 없던 PC방으로 가출한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염세주의에 회의론자였다.

자연과학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호기심의 충족만이 삶의 동력이었다. 궁금한 건 반드시 알아내고 싶어했지만, 아주 약간이라도 “인간사”에 관련되는 순간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한낱 먼지, 그것도 사실은 그 먼지가 하나의 나라였고 그 나라에 사는 먼지의 몸에 붙은 먼지보다 작은게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이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회의감을 만들어 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어떤 위대한 인간이 아무리 커다란 일을 한다고 하여도, 그래 봤자 이 우주에서는 정말 아무런, 아무런 영향력도 없던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왜 생명체가 굳이 진화하여 생겨난거에 의미를 부여해야할지,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동기였던 염모씨의 멋진집(!)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같이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든 기억이 있다. 이 때 나의 이러한 회의론과 무의미한 인생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열심히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친구가 그냥 내뱉은 말이 내 마음 속에 꽂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 기억속에 담긴 내용의 골자는 이랬다:

“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근데 난 거기에서 돌아왔어. … (중략) …

왜냐하면 너가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해도, 내일 일어나면 배가 고플거고, 똥도 마려울거고, 심심할거고, 짜증도 날거고, 애들이랑 술먹으면 재밌기도 할거고. 그래서 어차피 죽지 않을거면 한번 사는 동안 나름 이것저것 해보는게 낫지 않아?”

지금 생각해도 참 담담하게도 사실적인 말이었다. 아마 어린 내 마음속에는, 누군가 같은 고민을 해보았고 (아마 적어도 역사속의 수 많은 철학자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한번 씩은 해봤을 듯 하다) 그리고 나름 그 속에서 의미나 탈출구(?)를 제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하다. 신기하게도 이 다음날 일어나서는 기분이 상쾌했다. 무언가 풀지 않아도 될 문제, 어쩌면 해답 자체가 없던 문제 – 인생의 본질적 의미 – 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나의 사춘기의 방황은 친구와 대화로 깨끗이 종결되었고, 그 뒤로 나는 “인간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뒤로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인지과학, 사회학, 역사 등에 처음으로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rest is history다.

이 자그마한 말 “한 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제대로 살아보자”는 어느 순간 내 마음속의 기둥이 되었고, 그 뒤로는 “경험”이 내 인생의 가이드가 되었다. 무언가 색다르고 나를 성장시킬 것 같은 경험이면 뭐든 해보자가 되었고, 소유보다는 경험, 그리고 유형보다는 무형의 의미에서 인생을 찾고자 하게 되었다. “뭐든 한번 해보자. 한 번 밖에 안 산다. 그리고 아마 안 될 거면 안 되 겠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 안 되는 일은 없다. 될 때 까지 하면 된다.” 정도가 내 인생의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긍정성”이라는 단어로 응축이 된 것 같고, 이렇게 살다보니 비슷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가까이 하게 되었다. 주변을 보면 뭐든 한번 해보려는 친구들, 인생관이 밝고 행복한 친구들이 많은 듯 하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긍정이 가져오는 결과를 맛본 사람들은 부정의 세계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작은 성공, 자신감의 상승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은 듯 하다.

아직 나는 인생이라는 꽤나 그럴싸한 모험의 여정을 갓 떠난 초보 여행자에 불과하다. 선배의 가르침을 받아, 동료들과, 후배들과 잘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아마 이 여정 동안 꽤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글 : 김동신
출처 : http://dotty.org/2699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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