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에세이 (10)] 사내 벤처 성장기

도전의 DNA, 사내 벤처와 결합 꽃 피우다
한방 경락기 · 전자차트 · 내시경 등 다방면 창업
때론 실패도 있었지만 유망한 기업으로 성장
척박한 한국 의료산업계에 두터운 토양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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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도전 정신에 기반한 사내 벤처 양성은 의료 장비 산업의 변방이던 한국을 중심으로 부상케 했다. 사진은 1994년 메디다스 출범식 모습
7개국 자회사와 70개국의 대리점으로 전세계 판매망을 구축한 메디슨의 다음 과제는 확보한 시장에 투입할 신성장 동력의 확보라고 판단했다. 기술혁신은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창조적 도전이라는 믿음으로 사내 벤처 양성에 돌입했다. 도전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이룩할 수 있기에 메디슨 문화는 한마디로 도전의 문화였다. 메디슨의 근본가치인 인간존중과 국부 창출은 도전을 통해 완성된다 보았고 이러한 도전을 장려하는 사내 관리 제도는 메디슨 방식의 목표관리(MBO)였다. 메디슨 문화에서 양성된 수많은 도전 정신으로 무장된 사내 기업가들의 다음 행보가 사내 벤처의 창업으로 이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최초의 사내 벤처는 1992년 출범한 동서사업부였다. 경락을 통한 진단과 치료를 IT기술과 결합한 한방 의료의 세계화를 꿈꾼 야심 찬 프로젝트를 갖고 1994년 메리디안(경락)이라는 사명으로 출범하게 된다. 메리디안은 혁신기술로 평가되어 좋은 조건의 벤처 투자를 받고 나스닥 장외시장에 등록도 되었으나, 한방의료 사업 자체 부진으로 현재는 사업이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곧이어 전자차트(EMR) 사업을 위한 마이다스 사업부가 출범하게 된다. 마이다스 사업부는 서울대 의공학과의 민병구 교수님 휘하에 우수한 박사 연구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헌신하라는 억지를 써서 박사과정을 중단시키고 출범한 조직이었다. 과연 김진태(전 유비케어 사장), 이상경(현 유비케어 상무), 김영훈(현 능률경영 이사)은 발군의 인재였다. 이들이 이룩한 세계적인 발명품이 바로 ‘의사랑’이라는 전자차트다. 1994년 12월 메디다스라는 사명으로 독립법인으로 출범하게 된다. 의사랑은 한국이 의원급 전자차트 보급률 세계 1위를 유지하며 저비용 고효율의 의료 경쟁력을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메디다스는 상장기업이 되었고, 현재는 SK의 자회사인 유비케어라는 회사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병원의 필수장비인 환자 감시장치분야는 대우전자에서 이적해 온 아이디어 맨 강동주 군이 창설하고 LG에서 온 김종철 군이 합류했다. 초음파 진단기와 더불어 최대 의료 시장 중 하나로 평가 받을 만큼 시장규모가 컸고 가전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략 분야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최태영 사장님이 운영하시던 세인전자와 합작회사를 만드는 형태로 바이오시스라는 회사를 만들어 이 사업을 시작했다. 바이오시스는 최단기 상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나 이후 기업사냥꾼의 매각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졌지만 핵심요원들이 창업을 하면서 하나의 기업이 아닌 여러 기업으로 환생했다. 현재는 강동주 사장의 바이오넷과 김종철 사장의 멕아이씨에스, 길문종 사장의 메디아나, 그리고 비스토스, CU메디칼, 휴비딕, 참케어, 바이오닉스 등으로 두꺼운 선수층(생태계)를 형성해 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 회사들의 총 매출이 1,000억 이상인 것을 보면 ‘가능성 있는 인재를 가능성 있는 시장으로 결합시키는 과정만 가능하다면, 스스로 재생 복사하는 능력을 가지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벤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의료용 내시경 분야는 1996년 서울대 의공학과의 지영준(현 울산 의대 교수)군이 중심이 돼 1998년 웰슨엔도라는 회사로 분사하게 된다. 내부 기술개발만으로 해결하기에 오랜 세월이 걸리는 미세 광학기계 분야는 내공이 필요해 독일의 MGB라는 세계 최초의 내시경 기업 중 하나를 인수했다. 당시 문신용 서울대 교수, 두재균 전북대 교수가 베를린까지 가 보고 많은 조언을 해주신 점 지금도 감사 드린다. 당시 아날로그 기술의 내시경을 디지털 기술로 바꾸고 병원이 아닌 의원급 최적화 장비를 개발하면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전략을 세우고 도전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메디슨 부도 이후 바이오넷에 합병돼 핵심 역량이 소실된 감이 있다.

엑스레이 사업부는 김영모(당시 메디슨 상무)가 주도해 설립하게 된다. 최대 의료 산업인 엑스레이 산업은 당시 기술의 변혁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날로그 방식인 과거의 엑스레이가 디지털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핵심 분야인 디지털 검출기의 경쟁력을 확보하면 세계적 강자들과 한판 승부가 가능하다 판단하고 당시 가능성이 공존하는 두 가지 검출기술에 벤처 투자를 했다. 벤처 투자한 검출기 회사 중 하나는 뷰웍스(김후식 사장)이고 다른 하나는 디알텍이라는 회사로서 각각 해당 분야의 세계 3위권에 진입하는 놀라운 분전을 하고 있다.

MRI(핵자기 공명장치)는 메디슨이 도전한 가장 큰 신기술 개발프로젝트였다. 아쉽게도 MRI사업은 엄청난 국가 연구비와 LG의 사업비를 투입하고도 결국 포기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앞선 분야이고 기술인재도 많이 양성된 분야라 꼭 살려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굴뚝같았으나, 최소한 100억원 이상의 투자 규모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메디슨 상장 이후 유입자금으로 한편으로는 3차원 초음파에 투자하고 한편으로 MRI사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흥규 박사(아이솔 대표), 장용호이사(사이메딕 사장)등 내부 연구진과 고려대 오창현 교수, 서울대 장기현 교수, 동보의 이근남 사장 등 그 동안 칼을 갈아왔던 수많은 MRI전문가들이 가세하여 드디어 한국의 첫 상업적 MRI가 시장에 선보이게 되었다. 1997년 메디슨은 이 성과로 또 하나의 장영실 상을 수상했다.

메디슨의 문화적 DNA는 사내 벤처를 통한 분사 과정에 전사되어 지금도 한국의 의료산업계에 살아 전파되고 있다. 바로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글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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