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에세이 (15)] 벤처의 꿈과 시련, 재도약

코스닥 초기엔 무관심…신문에도 주가 안 실려
제도 정비해 선도 벤처 · 디지털밸리 기반 마련
닷컴붐 · 기업사냥꾼 · IT버블 붕괴등부침 겪고
스마트 혁명 힘입어 이젠 매출 200조시대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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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코스닥이 설립됐다. 증권관계기관장 및 증권사 사장단이 코스닥증권주식회사 현판식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상 투자신탁협회장, 이민화 벤처기업협회장, 김영섭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연영규 증권업협회장, 박청부 증권감독원장, 홍인기 증권거래소 이사장, 박상희 중소기협중앙회장, 윤정용 코스닥증권 사장(당시 직함 기준) –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벤처기업 협회 출범 이후 벤처 업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자금 문제로 나타났다. 당시 벤처 캐피털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투자 회수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입각하여 코스닥 설립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게 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나스닥과 동반 성장한 것과 같이 한국의 벤처와 동반 성장할 투자 회수 시장으로서 코스닥을 1996년 5월에 설립하게 된다.

초기 코스닥은 언론의 사각지대여서 코스닥 주가는 신문에 게재 되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적자 기업도 등록을 허용하고 있어 신청서만 내면 대부분 등록이 되었으나, 벤처 후배기업들은 등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시장 활성화는 요원해 보였다. 드디어 후배들을 협박하였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많은 벤처들은 필자의 성화에 시혜를 베풀듯이 등록을 해주었다. 지금 코스닥 상장의 높은 장벽을 감안하면 금석지감이 있다. 코스닥은 IMF이후 활성화되어 선도 벤처의 젖줄이 되어 벤처 생태계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적자 상장을 허용하는 코스닥을 통하여 NHN, 다음, 옥션과 같은 한국의 벤처 스타들이 만들어 진 반면, 일본은 시기적 대응을 미흡으로 신산업 육성에서 한국에 뒤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97년 벤처기업 협회는 벤처 기업 특별법 제정을 주도하게 된다. 코스닥을 통한 선도 벤처의 자금 문제 해결에 이어 창업 벤처의 자금, 인력, 입지 등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안으로 특별법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법은 해외에 그 선례가 없어 당시 산업자원부의 홍기두과장(현 상정KMPG부회장), 백만기 과장(현 김앤장 대표 변리사)과 함께 세계 최초로 법을 입안하게 된다. 시작한지 1년도 안된 1997년 5월 당시 여 야 삼당의 총체적인 동의 하에 법안이 통과하게 된다.

세제혜택, 병역특례, 벤처 투자 활성화, 입지 등의 복합적인 제도를 포함한 이 법안은 이후 중국 등 개발 도상국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어 전세계로 확산되게 된다. 이 법의 효과를 증명한 대표적인 예로서 벤처 빌딩 제도(벤처 집적단지)가 있다.

1997년 구로 디지털 단지는 낮은 가동률로 고전하는 단순 가공용 공장들로 찬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이 법의 시행 이후 정부의 지원 자금 없이 구로 디지털 밸리가 형성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구로 디지털 단지는 만개가 넘는 벤처 기업들이 몰려있는 세계적인 벤처 생태계로 재탄생 하게 되었다. 정책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실증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후 특별법은 중기청의 송종호과장(현 중진공 이사장)등의 지원으로 실험실 창업 등의 세계적으로 획기적인 제도들이 보완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김일섭 전 삼일회계 부회장님 등 벤처의 발전을 뒷받침해주신 많은 분들의 숨은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코스닥과 벤처 기업 특별법이 준비된 직후인 1997년 말 한국에 미증유의 위기인 IMF가 닥치게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우수수 무너지고 있는 암담한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으로 벤처가 부상하였다. 사전에 준비된 벤처가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준비한 제도를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의 활성화 노력에 의하여 1997년에서 2000년까지 벤처는 질풍노도의 성장을 구가하여 한국의 IMF 극복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2000년 한국 벤처 기업은 1995년의 500개에서 만개로 증가하였다.

코스닥의 주가는 인터넷 경제인 닷컴 붐과 함께 천정부지로 폭등하였다. 이러한 환경하에 벤처기업 사냥꾼들이 등장하여 물을 흐리게 된다. 결국 2000년말 미국의 IT버블의 붕괴와 함께 한국의 벤처도 침체기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벤처는 2004년 벤처 협회가 주창한 벤처 어게인 정책이 채택되면서 조금씩 재기의 모습을 보이다가 스마트 혁명을 발판으로 2000년 일만 벤처 돌파 이후 10년만인 2010년에 2만 벤처를 돌파하며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벤처의 모습인 벤처2.0의 이야기도 다른 기회에 다루고자 한다.

벤처의 꿈과 시련을 거치면서 벤처는 더욱 강해졌다. 학생 강연 시 벤처에 대한 질문 몇 가지를 해 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이 벤처의 실상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벤처의 총 매출액은 삼성전자보다 훨씬 많은 200조를 넘고 있다. 선도 벤처인 천억 매출 벤처 기업만 해도 이제 315개에 달하고 이들만의 매출만 60조를 넘는다. 1조 매출을 넘는 벤처도 4개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벤처는 대기업과 더불어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쌍끌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고용이 감소한 데 반하여 벤처는 국가 경제 성장은 물론 고용확대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물론 많다. 코스닥의 적자 상장, 주식 옵션, 엔젤 제도, 벤처 인증제도 등 초기 벤처 정신이 훼손된 정책들의 원상 회복도 시급하다. 청년들의 공무원과 대기업선호에 밀려 벤처의 고급 인력 부족 문제로 해결되어야 한다. 세계화를 이룩할 벤처 선순환 생태계의 형성도 해결될 과제다. 그러나, 벤처는 문제를 안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벤처의 꿈과 시련을 거쳐 재도약하는 원년이 되기 바라며, 사정상 벤처 이야기는 여기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글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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