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 미디어 3.0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

사람은 알고 싶은 것이 있다. 태생적으로 우리는 알고 싶은 것을 수집하는 습관을 갖고 있으며 반대로 새로운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소식이 무엇인지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욕망도 갖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그래서 생존과 직결된 욕망이다.

그런데 문명이 진보하면서 욕망에 덧붙여지는 기능이 생겨난다. 정보는 우연하게 알게 된 것뿐만 아니라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배우거나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요청하여 듣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습성은 다시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에 대한 정리로 이어진다. 이것이 미디어다. 이런 미디어의 원초적인 기능이 수행되면서 역사를 통해 비로소 문명은 기록되었다.

미디어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라.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 콘텐츠, 소식, 이야기, 데이터를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거치게 되는 모든 것을 우리는 미디어라고 정의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수단과 방법, 도구는 ‘미디어’다. 협의의 미디어와 광의의 미디어는 학자들과 업계 종사자들만의 수단일 뿐, 모든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알고 싶은 욕망과 알리고 싶은 욕망을 해소한다. 인터넷 포털은 당연히 미디어이며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담벼락도 우린 미디어라고 부른다.

아래의 책이 소개하는 <큐레이션>이란 단어는 미디어의 본연의 모습과 올드미디어의 역할과 뉴미디어의 기능에 대한 탁월한 설명이 가능한 단어다.사용자 삽입 이미지정보 결핍과 과잉, 그리고 큐레이션

큐레이션은 정보의 결핍에서 과잉으로 흐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소비자는 부족한 정보 상황에서 더 풍부한 정보를 원하지만 시장의 요구는 생각보다 빠르게 채워진다. 미디어 생산성이 기술적인 진보로 인해 비용이 낮춰지고 더 많은 정보가 더 빠른 시간 안에 제시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정보 과잉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정보는 결핍에서 과잉으로 흐르고 나면 다시 누군가에 의한 초월적 정리를 기대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실제 결핍과 과잉’을 반영한다기 보다 미디어 소비자들이 느끼는 인식의 요구 같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로젠바움은 매스미디어가 소비자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음에도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필요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인 만큼, 이제 희소한 것은 인간의 취향이다. 과거에는 소수 미디어와 대기업이 정치적 담론, 대중문화, 새로운 트렌드 등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어젠다를 설정했다. 매스미디어는 우리가 똑같은 청바지나 치약을 원했기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라 철저히 기술 발전의 산물이었다.”

애초에 소식, 뉴스는 공유의 개념을 갖고 있었으며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소유의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서적은 소식과 뉴스에서 콘텐츠라는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이 콘텐츠가 다시 생산비용과 배포 비용의 획기적인 절감으로 인해 역시 공유의 개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생산자에 대한 보상이다.

소비집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보의 획일성’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유행’, 또는 ‘트렌드’이며 ‘집단적 소비 증후군’ 같은 것이다. 누구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것을 보면서 구멍 난 청바지도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산업사회와 전쟁의 일등 공신은 ‘매스미디어’였다. 산업적으로는 소비하는 자와 소비하지 못하는 자로 나누어 경쟁심을 부추겼으며 전쟁은 네편과 내편으로 갈라놓았다. 매스미디어에 의한 프로파겐다는 21세기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나만 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매스미디어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생산과 수요 곡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가격은 누가 결정하며 지불할 의도는 누가 왜 갖게 되는가.

가령 최근 한 언론사가 커피 가격 차이를 보도했다. 한국의 넘쳐나는 커피숍마다 그린티라떼 가격이 최대 2,500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이 정보는 과연 누구나에게 ‘유용한’ 정보이냐다.

여기서 다시 ‘의도’가 중요하게 작용된다. 커피값이 이렇게 차이난다는 것, 그리고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에 대한 분석은 다분히 저널리즘적인 선택이다. 결국 ‘선의’와 ‘이타심’은 매우 중요한 저널리즘의 덕목이다. 21세기 정보 과잉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저널리스트에게 ‘사실의 나열’에서 더 나아가 ‘해설’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미술관에만 있을 것 같은 <큐레이션>에 대한 광범위하고 개념적인 설명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쩌면 애초에 있었던 기능이 아니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에 따른 미디어 생성과 소비의 흐름에서 큐레이션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사례들만 추렸다.

◆ 오마이뉴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기치로 내걸었던 개방형 플랫폼이다. 물론 이후에 참여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게이트키핑 행위와 어젠다 세팅(의제설정) 행위가 오마이뉴스 플랫폼 소유자에게 몰리면서 결국 올드미디어의 정파성과 별반 차이 없는 미디어가 되었다.

◆ 포털뉴스
포털뉴스는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폭발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포털뉴스는 자체 생산 기능이 없음에도 1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뉴스사들과 계약을 맺어 뉴스를 공급받고 뉴스를 재배치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그것이 권력이 되었고 이후 다양한 층위의 견제를 받게 된다. 포털 뉴스는 기계적인 수집과 배열 기술이 없었던 포털의 선택이었으나 오히려 기계적인 배열 기술보다 나은 효과를 발휘했다.

이후 포털뉴스의 자의적인 편집에 대한 반발로 인해 네이버 같은 포털은 뉴스를 언론사들이 직접 편집하도록 했다. 뉴스캐스트라 불리는 이 서비스는 시시각각 놀라운 편집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누리꾼을 대상으로 ‘지능적인 낚시질’을 하기도 한다. 미디어 소비자의 주목과 시간의 희소성을 알기 때문이다.

◆ 테마 검색
특정한 키워드를 검색에 입력했을 때, 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다는 ‘실시간 인기 검색어’ 등을 클릭했을 때 검색의 최상단에 보여주는 정보 묶음이다. 이는 어쩌면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검색 이후의 큐레이션 시대’를 가장 먼저 실행한 나라가 우리나라임을 증명하는 플랫폼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검색에 의해 신뢰할만한 결과를 한 덩어리로 묶어냈을 때 발휘되는 사고력은 기계의 그것보다 뛰어난 것이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테마 검색란이 있었던 이유는 구글 처럼 가장 신뢰할만한 웹페이지 결과를 보여주기에 기술력이 턱없이 모잘랐기 때문이었다. ‘알바 검색’이라는 오명을 만들어준 서비스이기도 하다.

◆ 지식인
흥미롭게도 2011년 네이버 제팬에서는 지식인 서비스를 일본에 소개하면서 큐레이션 플랫폼이라 이름 붙였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제시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정보 오류를 고치고 정보에 대한 신뢰도를 검증하여 정답과 가까운 것을 질문자가 채택하는 시스템이다.

질문자는 인간이며 대답하는 사람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생이 슬플 때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죠?’라는 질문에 ‘음악보다 자연을 벗 삼아 산 속을 거닐어 보세요. 자연의 소리가 음악보다 슬픔을 더 잘 치유해줍니다’와 같은 답변을 달 수 있는 것이다. 0과 1만을 구별하는 디지털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잘 접목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무의미한 질문과 답변들이 넘쳐나고 종교, 인종, 지역 등 애초에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내용을 묻고는 서로 질문과 답변으로 공격하는 ‘훌리건’들이 휩쓸면서 신뢰하기 힘든 정보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 위키백과 / 엔하위키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놓은 가장 방대한 정보 집합체일지 모르는 위키 백과는 대표적인 큐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학에 근거한 분류법 등은 애초에 큐레이션의 직업적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서브 컬처를 대변하는 엔하위키라는 서비스도 존재한다. 이 서비스는 위키백과가 지나치게 중립적이고 근엄하다는 데 착안해 연예인이나 첨예한 의견 충돌, 인터넷 소문을 ‘정리’해주고 있다. 어떤 뉴스 서비스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리해주진 못하고 있다.

다만 문서를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는 익명성이란 원초적인 불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거짓된 정보가 덧칠될 수 있고 그것을 읽는 이조차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아고라 / 카페
우리나라의 포털 서비스 가운데 카페와 아고라는 매우 특이할만한 서비스다. 사람들은 카페를 특정 연예인의 모든 것을 까발기는 도구로 활용하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수집하여 재편집 및 유통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타블로를 공격하기 위한 타진요 카페 사건이라거나 황우석 교수 사태, 광우병 사태 등의 집단적이고 집요한 정보 수집 및 공유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주목할만한 현상으로 표출되었다.

◆ 블로그
분산 시스템으로 사상 유래없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강의 퍼블리싱 플랫폼인 블로그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블로그 운영자들은 대부분 ‘발견자’의 역할보다 ‘정리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포털 종속적인 환경의 우리나라에서 유의미한 확장성이 제한돼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 구글 Knol
구글이 선보인 놀(Knol)이란 서비스는 블로그 플랫폼이면서 위키 방식을 따르고 있다. 좀더 큐레이션에 능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플랫폼이다. 하지만 참여자의 관심 부족과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트위터와 페이스북, 위키트리
마이크로블로그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최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무엇보다 익명 시스템이지만 사실상 실명 인증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인들과의 관계 설정에 신뢰를 개입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트위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뉴스를 배포하고 협업하여 뉴스를 만들어 생산 배포하는 서비스인 위키트리 역시 소셜 미디어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저작권 침해 이슈가 다분한 플랫폼이라 좀더 발전 방향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연예인닷컴
이 책에서도 등장하는 연예인닷컴 역시 서태지와 이지아 커플, 옥주현 등 우리나라에서 이미 유행하고 있다. 아직은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부정적인 이슈가 더 많지만 향후 새로운 형태의 지식 집합과 전시의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 티엔엠미디어와 커리
티엔엠미디어(TNM)는 국내 유일의 블로그 미디어 네트워크로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 생산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다. 이미 각종 포털에 블로거들의 글을 재판매하거나 모바일로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저작권 걱정 없이 연합뉴스와 제휴하여 연합뉴스의 모든 뉴스와 사진 데이터를 블로거들이 마음껏 재배열하고 합쳐서 새로운 종합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인 커리(Kurry.net)는 말 그대로 차세대 큐레이션 플랫폼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스마트한 초월적 정리자의 시대

공개적으로 검증과 즉시적 반응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큐레이터의 아젠다세팅(의제설정)과 게이트키핑(선별적 수집)은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디어 1.0 시대의 배열과 편성, 편집이 미디어 2.0 시대에 거부되었다면, 다시 한 번 큐레이션 미디어 세상에서는 신뢰할만한 사람의 전문적인 판단력과 선의에 의한 배열과 편집 능력에 기댈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와 미디어의 복잡한 발전 양태를 한눈에 정리할 수 있도록 표 하나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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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미디어 2.0 :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

이 표는 필자의 저서 <미디어 2.0 :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에서 발췌한 표를 큐레이션 시대에 맞춰 개선한 것이다. 혹시 큐레이션 책을 읽게 된다면 다시 한 번 이 표를 주목해주기 바란다. 필자가 느꼈던 “이제야 미디어의 흐름을 좀더 물 흐르듯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한정한 자료 속에서 막연한 정답을 제시해주는 기계 검색보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할 만한 전문가와 저널리스트이다. 그리고 이제 블로거, 트위터리안, 웹 피디, 시민기자, 카페 운영자 등으로 활동했던 우리들 각자가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성공의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다.

글: 명승은
출처 : http://ringblog.net/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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