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각에서 본 감정 노동자 이슈

나는 감정 노동자라는 말을 얼마 전에야 들었다. 듣자마자 내가 알고 있던 서비스업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는 순간이었다. 아~ 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구나..

감정 노동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감정 노동자의 정의에 대해서 서치를 해 봤다.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1983년 델타항공 승무원들을 조사해 ‘관리된 마음: 인간 감정의 상품화’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자기 기분을 다스려 겉으로 드러내는 감정 관리가 직무의 40% 넘게 차지하는 노동’이라는 뜻이다. 서비스업 종사자뿐 아니라 영업사원·목사·변호사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그는 항공사의 ‘스튜어디스 감정교육’도 소개했다. 승객이 함부로 하면 깊이 숨을 들이쉰 뒤 속으로 “집에 가면 안 볼 인간이다”를 되뇌라는 식이다.

– 2011년 11월 30일 C 일보

얼마 전부터 이런 감정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뤄진다. 먼저, 그 중에서 youtube에 공개된 5분 정도의 EBS 영상을 공유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감정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순히 ‘문제제기’에서 그치거나 혹은 ‘인권문제’라는 너무 상위의 논의로 비약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니까 따뜻하게 대합시다’ 라는 당위론으로 끝나는 것 같아서, 보다 내 경험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경영학을 공부하고 기업에서 마케팅 분야의 일을 했던 경험에 비추어서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답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나의 감정 노동자 관찰기 1 – 신용카드사 텔레마케터 모니터링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대학에 다닐때 한 신용카드회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맡았던 업무 중에 하나가 바로 상담원들의 고객응대에 대한 내용을 모니터 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고객 응대의 부문에 있어서 향상시켜야 할 부분이 있는지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우와, 나는 세상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욕을 많이 하는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얼마나 그렇게 쉽게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도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상담원으로 일하시는 분들 중에는 물론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여성들로서 감정적으로도 굉장히 여리신 분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 노동자로서의 일을 오래 못 하시고, 길어야 1년, 거의 대부분은 3-6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신 경우를 많이 봤다. 사실 이렇게 빠른 turnover는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다. ‘감정 노동자는 일회용품이야’ 라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회용품을 너무 많이, 자주 교체하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가끔 상담원들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대부분 상담원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다른 경우에 이미 ‘분노 게이지’가 높아져 있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고객 상담센터에 하루에도 여러번 전화했는데 계속 대기시간이 길어서 한번도 통화를 못할때.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이라도 해 주면 좋을텐데, 그런 기능도 없을때. 인터넷 게시판에 문의사항을 남기라고 해서 남겼는데도 하루이상 연락이 없을때. … 이런 상태에서 상담원이 연락이 오면 일단 화가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퉁명하게 말이 나간다.

그나마 이런 in-bound call 즉, 고객이 먼저 전화를 걸어준 경우에는 나을 수도 있다.

out-bound call, 즉, 회사에서 먼저 고객에게 연락을 하는 텔레마케터의 경우에는 고객이 환심을 가지고 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혹은 이미 상당히 다른 텔레마케터들에게 시달려 있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지 그 상담원과 고객간의 상호작용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특히 금요일 오후 같은 경우에는 도대체 누가 나의 전화번호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뿌리기라도 한걸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텔레마케터에게서 전화가 온 기억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또 다른 텔레마케터에게서 연락이 오면 정말 퉁명스럽게 받을 수 밖에 없다.

한번은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영수증을 받았는데, 그 영수증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등록하면 경품을 준다는 것이 있었다. 심심해서 집에와서 경품이벤트에 응모했는데, 알고보니 그 이벤트는 모 보험사에서 하는 것이었고, 그 후로 한동안 나는 그 보험사의 보험권유전화를 계속 받아야 했다. 도대체 누가 생각한 마케팅 프로모션인지 몰라도 빵점자리다. “XYZ마트에서 장을 본 사람은 우리 보험에 가입할 확률이 높아” 라는 타겟 relevancy 선정은 도대체 누가 한걸까? 물론 나는 그 보험사의 전화가 올때마다 퉁명스럽게 받는다. 도대체 나의 전화를 거는 텔레마케터는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마는, 나 또한 달리 누구에게 표현을 하겠는가?

정리하자면, 상담원들과 고객과 이슈가 생길 때에는

1) 고객 자체가 다혈질인 경우도 많지만,
2) 이미 그 이전에 다른 원인으로 인해서 화가 나 있는 경우 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3) 텔레마케팅 전략 자체의 relevancy – right target, right timing, right message 와 같은 마케팅의 기본적인 내용들이 지켜지지 않아서 고객 자체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 노동자의 스트레스 (=결국은 기업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백오피스에 있는 마케터가 정신을 차리고 텔레마케팅의 execution process 자체에서 어떤 결함이 없는 것인지 점검해 본다든지, 혹은 제대로 된 타겟을 대상으로, 타이밍에 맞게 컨택을 해서, 타겟에게 연관성이 있는 메세지를 던지는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감정 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근본적으로 텔레마케팅이라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 방식인가? 라는 것 자체에도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긴 하나, 이것은 산업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효과성 자체에 대해서는 이정도에서 끝내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또한 다소 교과적인 이야기였다.
(인정)

나의 감정 노동자 관찰기 2 – 백화점 채널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나의 이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백화점을 주 채널로 하는 전기면도기 비즈니스를 할 때였는데, 이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드라이버는 바로 백화점 상담원들이었다.

그래서 백화점 상담원 누나들과 (내가 나이가 더 어리다는 뜻은 아님) 많이 만나서 이야기도 해 보고, 신제품이 나올 때나 새로운 캠페인이 시작될 때마다 트레이닝(교육)도 많이 나갔다. 그럴때마다 이분들의 고충을 정말 몸으로 느낄 정도로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장 좌절하고 어려움을 느낄 때는 본사가 그들을 외면할 때였다.

즉, 고객과 싸우는데는 이제는 무뎌져서 고객이 왠만한 독한 말을 해도 괜찮은데, 그런 것들을 본사에 고충을 털어 놓아도 본사에서 아무런 대꾸도 없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최악의 경우는 “고객과의 어떤 충돌이 있어서 본사에 이런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본사에서는 오히려 그 직원을 질책할 때” 라고 모든 상담원들이 입을 모아서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파는 사람들인데, 그 감정을 기댈 곳을 찾을 수 없을 때 더 외로움을 느끼고, 더 힘들어 한다. 따라서 당연히 본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서 취해야 할 자세는 “우리는 절대로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라는 자세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먼저 조직적으로 대부분의 상담원 headcount는 본사의 것이 아니라, 대행사의 것이거나 상담원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회사의 것이다. 이것은 overhead cost를 줄이기 위한 대부분의 회사들의 인사/ 회계 정책이다. 따라서 상담원들은 주로 외주사의 비정규직 인력으로 치부되어서, 이들에 대해서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고객’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것도 본사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수많은 경영학 강의에서 들었다시피 고객이 왕이고, customer is boss 아닌가? 다른 모든 것이 없어도 기업은 존재할 수 있지만, 고객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 냉정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따라서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기기 이전에 우리 회사의 감정 노동자들의 감정이 충분히 충전되어 있도록 애쓸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이런 고민에서 정말 감정 노동자들의 운영을 잘 하는 몇몇 조직을 스터디 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상담사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는 이들에게 일정 수준의 career path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점 또한 중요했다. 상담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단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공적인 상담원 운용 조직을 보면, 상담직무를 오래 하다보면 점차적으로 새로운 업무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도전과제를 줌으로써 이들에게 커리어의 상승과 함께 manager 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밖에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감정 노동자들은 젊은 여성들이 많다. 이들은 비교적 homogeneous 한 집단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1) 미혼일 경우 => 뷰티, 연예, 식도락, 로맨스, 여행, 2) 기혼일 경우 => 육아와 교육, 가족의 건강,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는 각종 노하우 및 악세사리 등으로 비교적 일정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바를 평소에 ‘복지’라는 큰 이름이 아니더라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길들을 모색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내가 관찰했던 ‘비교적 성공한’ 감정 노동자 조직의 운영 노하우는 그랬다.

나의 관찰기 3 – 미국 그리고 중국

우리나라의 감정 노동자들은 그 수준이 정말 정말 정말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미국과 중국에 비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미국과 중국에서 많은 감정 노동자를 상대해보고 많은 서비스를 받아 보면서 느낀 점은, “나 한국에 돌아가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정말 나이스하게 잘 하리라” 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용했던 미국의 전기회사는 전기요금을 내기 위해서 등록하는 전화를 걸었더니 1시간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45분 정도 기다려서 통화를 했다.)

그런데 이럴때면 나도 모르게 대국의 풍모를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일에 화를 내봤자 ‘나만 손해’라는 자기합리화의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그런데 내가 미국에 가서 주목하게 된 몇몇 미국 상담원들의 특징이 있다. 전화를 통해서 상담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매장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는 상담원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것은 바로 손님과의 interaction을 즐긴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문화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의 문화가 훨씬 더 관계형성에 있어서 대등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확실히 미국의 서비스업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대접받는 느낌’은 전혀 없다. 하지만 대신에 그들은 동등한 위치에서 친구를 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단지 너가 물건을 잘 고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여기 있는거야” 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객님께서 사용하시는 제품께서는 무상수리기간이 지나셨습니다” 라는 식으로 어법에도 맞지 않게 나의 핸드폰과 무상수리기간에까지 존대어를 붙이는, 즉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존칭어 사용도 사양하고 싶지만, 가끔 무릎까지 꿇고 오더를 받는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의 모기업 사장이 방문하고 나서 한국의 종업원을 배우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서비스는 종업원의 침착함, 의연함, 프로페셔널리즘 등에서 나와야지, 결코 낮은 자세에서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1류 호텔의 서비스를 보면, 절대로 종업원들이 자신들을 지나치게 낮추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Pride’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중국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감정 노동자”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친 배짱이 있다. 그럼에 생각해보건대, 우리나라에 이렇게 친절하고 질 높은 서비스 노동자들, 즉 감정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결론

감정 노동자들이 자신의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의 세일즈 전략, 마케팅 전략 단계에서부터 정확한 타겟 마케팅을 구사하는 것.

시스템상으로 이미 화가 나 있는 고객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것. 그래서 우리의 감정노동자들이 turnover가 높지 않고, 오랜기간 일하면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척하게 하는 것. 나아가 그로 인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기업의 비용도 감소하도록 하는 것.

그들이 자신의 회사와 브랜드에 대해서 프라이드를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들의 커리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갖게 되는 관심사와 취미, 크고 작은 고민 등에 대해서 충분한 관심과 지원을 해 주는 것.

그들에게 절대로 손님보다 낮은 위치가 아닌, 동등하고 프로페셔널리즘을 유지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서비스를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

이런 면들은 아마도 감정 노동자들의 업무환경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기업을 경영하고 마케팅을 관장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 단순히 손님들에게 좀 더 자제해 달라고, 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법들이야말로 기업들이 행하는 마케팅의 효율성을 더 높이고, 고객과의 관계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비용도 줄이는 방법은 아닐까?

결국 감정 노동자들은 우리 기업, 우리 브랜드의 얼굴이니까 말이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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