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구글에서 전 세계의 바이두로 – 바이두와 창업자 리옌홍(李彦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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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선정2005년 중국경제의 인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자
중국 개혁 개방 30, 30
포브스 선정 2011년 중국 최고 갑부
중국 청년들이 뽑은 닮고 싶은 기업가 1

구글을 초라하게 만든 전 세계 유일한 인물, 바로 바이두 창업자
리옌홍을 두고 한 말이다.

2010년 페이스북에 이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 한 회사로 꼽혔으며, 2011년 페이스북과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밀어내고 225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받으며 글로벌 100대 브랜드 중 29위에 랭크된 바이두와 창업자 리옌홍에 대해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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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이두 홈페이지

구글 짝퉁이 바이두라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바이두를 소개할 때 중국의 구글이라고 표현했었다. 물론 바이두의 성공에는 구글이라는 확실한 벤치마킹 모델이 있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심지어 창업자인 리옌홍조차 중국의 구글이 목표였다고 한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듯, 바이두는 단순 모방을 넘어 바이두만의 새로운 기업문화와 스스로 진화하는 비즈니스 모델, 글로벌 시장에 대한 통찰력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이 되었다.

“科技改变人们的生活” 기술이 인간의 생활을 변화시킨다

2000년 1
베이징의 실리콘벨리라 불리우는 중관춘(中关村)에서 친구 쉬용(徐勇)과 바이두를 창업한 리옌홍은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직선(直线)원칙을 고수하며 바이두를 이끌어왔다.

그의 직선원칙은 업의 본질을 잃지 않으며 사람들이 가장 단순하고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검색엔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닌 단계적 목표를 세워 이루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뜻한다.

나는 원대한 이상을 설정하지 않는다. 현실 가능한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목표를 이루면 그 다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바이두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듯 리옌홍은 지금도 721투자 원칙을 지킨다. , 70%
본업인 검색기술에 투자를 하고 20%는 바이두의 연관 서비스에 10%
새로운 도전에 한다. 그가 본업을 중요시하면서 단계적 목표를 달성하는 원칙은 바이두가 결코 팝콘처럼
튀어져 나온운 좋은 회사가 아닌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우직한 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나스닥에 상장시킨 후 그가 얘기했던진정한 시작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 의미있는지도

베이징대학 입학을 후회한 남자

그는 베이징대학교에서 경영정보관리학과를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남달리 좋아했던 그는, 지금 오히려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认为上网比较好书上的知识都比较过时网上什么内容都可浏览

책에 있는 지식은 과거의 정보지만 인터넷에서는 모든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리옌홍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전국컴퓨터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2위에 입상했던 경력도 있을 정도로 컴퓨터광 이였다.

그는 경영정보학과의 커리큘럼이 문과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실망했지만
컴퓨터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 유학을 간 그는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박차고 나와 월스트리트에서 잠깐 근무한
경험도 있으며, 실리콘벨리로 넘어와 기술자로
일하게 된다. 그가 일하던 회사가 인수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목표를 창업으로 정하게 된다. 목표를 정하면 바로 실천하는 그의 성격에 걸맞게 그는 중국이 인터넷 보급률이
10%
도 되지 않을 때 고국으로 돌아가 검색시장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미래가 밝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안 된다고 단념하는 것보다 낫다.’

리옌홍이 미국에 머무르던 1991년부터 1999년까지 8년 동안, 중국의
인터넷 산업은 상전벽해와 같은 발전을 이루었다. 시나닷컴(
新郎),소후닷컴(搜狐,야후차이나 등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격랑 속에서 거침없이 발전해 나갔다. 당시 리옌홍은 월스트리트를 떠나 실리콘벨리의 인포시크(infoseek)
수석 엔지니어였다. 1999년 말 인포시크가 디즈니사에 인수되기로 하자 리옌홍은 인포시크의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자신의 길, 즉 창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중국으로 귀국 후 리옌홍은 베이징대 동창인 쉬용을 소개받아 알게 되는데
그때 마침 쉬용은실리콘벨리를 가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 여러 벤처캐피탈들과 교류가 있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리옌홍과 달리 쉬용은 좀 더 외향적이고 사람을 이끄는 말 주변이 있었다. 리옌홍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쉬용이 채워줄 수 있을거란 믿음을 갖고, 쉬용에게 비밀유지각서를 받고서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얘기해준다.
그게 바로 검색엔진이였다. 의기투합한 그 둘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 투자자를 찾는다.

중국의 인터넷시장 전망은 괜찮았지만 섣불리 무명의 중국인 두 명에게
투자할만한 벤처투자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리옌홍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프레젠테이션 하면서
끊임없이 수익모델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리옌홍은미래가
밝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안 된다고 단념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다시 중국으로

리옌홍과 쉬용의 집념으로 그들은 3곳의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 의향을 받지만 경영권을 지키기 위하여 페닌술라펀드 등 2곳에서만 12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 받는다.

1999
년 크리스마스 이브, 그들은 120만 달러를 들고 중국으로 돌아와 베이징의 실리콘벨리로 주목 받는 중관춘에
바이두 온라인 인터넷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출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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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바이두 본사 (출처: 두두 차이나)

바이두(百度)의 기원은 중국 송나라 시인 신치지(辛弃疾)의 시구
무리들 중에서 그녀를 백 번 찾았다.(众里寻她千百度)”에서 기원되었으며, 바이두 로고안의 곰 발바닥은어디를 가든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제 그들은 미국의 자본으로 중국의 검색시장 뿌리를 내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리옌홍, 쉬용, 류젠궈, 궈단, 레이밍 ,왕샤오, 추이산산 7, 중국 IT역사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바이두의 검객 7이 데뷔를 하게 된다.

포털을 넘은 바이두

7명의 바이두 검객들은 리옌홍을 중심으로
그들의 역량을 쏟아 부은 결과, 2001년 여름까지 중국 포털사이트의 80%가 바이두의 검색엔진 기술을 사용하게
되었다.

가히 독점이라 해도 무방했다.그러나 리옌홍은 초조했다. 엔지니어로서의 성공은 거두었으나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바이두가 포털에 검색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면 회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네티즌들을 직접 상대하는 검색엔진 사이트를 구축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주주들의 반대는 생각보다
거셌다. 당시 바이두의 수익은 포털 사이트에 검색기술을 제공하는데 있었으므로 바이두가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할 경우 기존 고객들인 포털이 다시는 바이두와 거래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격론이 오가는 가운데 리옌홍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리옌홍은 부드러우면서도 냉정함을 잃은 적이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예외였다.

리옌홍은 그날 핸드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쳤다. 바이두가 검색엔진 사이트를 못할 거라면
다 때려치워!” 투자자들은 리옌홍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훗날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를 움직인 것은 리옌홍의 논리가 아니라
그의 태도였다.”. 그렇게해서 마침내 바이두는 독립적인 검색 사이트를 시장에 내놓는다.

욱일승천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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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상장 첫날 바이두 주가는 354% 상승하는 기록을 남긴다 (출처: 바이두 홈페이지)

2000 년 닷컴버블이 꺼진 후 5년 뒤 바이두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을 한다 상장 첫날 주가 상승폭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바이두는 전 세계에 중국 IT 기업의 가치평가를 다시 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한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리옌홍은 자신감과 겸손함을 갖춘 말투로 얘기한다.“기술로 삶을 바꾸는 것은 나의 변함없는 신념입니다. 상장은 단지 성공의 첫걸음일 뿐 진정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성공적으로 상장을 맞힌 바이두는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루게 된다. 바로 전 세계 검색시장의 거장 구글이 중국에서 사업허가권을 취득한 것이다.

바이두가 상장되기 몇 달 전 당시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미트는
구글을 비밀방문 했다고 하는데, 그가 바이두를 방문한 내용을
언론에서 조차 몰랐지만 2008년 리옌홍은 그가 왜 방문하였는지 밝혔다. 에릭이 우리를 방문한 건 사실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식 상장을 말리기 위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자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줄 테니 상장을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리옌홍은 자금이 필요하여 상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인 절차를 밟는 것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그들은 중국 시장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구글 중국 서비스 시작!

2006년 6
구글은 갖고 있던 바이두 주식 2.3% 6000만 달러(3300
파운드)에 매각했다. 바이두의 초기 성장단계 당시, 바이두는 구글이 투자의사를 보냈을
때 내부의견이 분분했다. 구글이 바이두에 투자를 하는 것은 중국 시장 진출 시 바이두를 인수합병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리옌홍은 구글의 투자를 받아들인다.

이유는 첫째, 상장전에 구글 같은 성공회사의 투자유치는 바이두의
신뢰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두번째로 구글에게 양도 될 지분 역시 미미했기 때문이다. 또한 검색사이트의 최강자 구글이 투자를 할 경우 잠재적인 도전자들이 의욕을 상실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렇게 그들의 달콤했던 동거는 끝나고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인다.

구글이 중국을 진출한 이듬해 시장 점유율은 바이두가 37%, 구글이 23%, 야후 21%이였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서비스 만족도는 경험이 좀 더 풍부한 구글의 손을 들어준다. 리옌홍은 한번 더 바이두가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다. 바이두는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네티즌들이 원하는 서비스와는 별개라는 판단으로 티에바(贴吧 커뮤니티),콩찌엔(空间블로그),쯔다오(知道지식서비스)등을 서비스한다. 이렇게 철저히 중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내놓으며 네티즌들의 신뢰를 얻은 바이두는 중국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지켜나간다.

리옌홍의 경영 이념

认准了就去做不跟风不动摇

목표를 정했으면 바로 행하고,,시류에 흔들리지도 동요하지도 말라 !’ 앞서 얘기했듯이 리옌홍은 직선(直线)을 경영이념의 첫 번째로 삼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바이두는 검색 사업에만
매달렸다. 인터넷게임이 큰 돈이 될 때도 바이두는 요지부동이였다.

두 번째 그의 이념은 화평과 평등이다. 바이두에서 동료들은 딱딱한 직함 대신 중국어 이름이나 영어 이름을 부른다. 그는 바이두에서사장님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누구나 그를 친근하게 로빈이라고 부른다. 또한 회의 중에서 리옌홍이 얘기를 하고 있더라도 누구나 그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며, 그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다. 실리콘벨리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문화에 영향을 받은 리옌홍은 이런 회사 분위기에 매우 만족한다고 한다. 이러한 리옌홍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알리바바의 절대권력 마윈(马云)과 종종 비교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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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IT의 양대 거물. 자신의 텃밭을 나와 본격적인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순수한 기술 프로그래머에서 기업 경영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리옌홍은 점진적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갔다. 그의 경영철학은 동서양을 경험한 조화에서 나온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노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실리콘 밸리에서는
평등,혁신,다원화 정신을 배워 동서양 철학이 공존하는 바이두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앞으로의 바이두

현재 바이두의 중국내 검색시장 점유율은 75.7%에 달한다. 독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바이두는 유니버설뮤직, 워너뮤직, 소니뮤직 3대 음반회사의 조인트
벤처회사인 ‘원스톱차이나’와 음원 계약 체결에 성공, 앞으로 저작료를 지불하고 이들이 제공하는 음원을 재생 및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수년간 계속된 바이두의 저작권 침해 분쟁이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저작권,판권 보호에 앞장서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또한 바이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를 맺고 중국 본토에서 빙(Bing)의 영어 검색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리옌홍은중국에서도 영문 검색에 대한 이용자들의 요구가 높다바이두 자체에서는 충분한 영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MS
와 제휴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앞으로 더많은 사람들이 영어검색 결과를 보기 위해 바이두를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바이두는 방심할 수가 없다. 중국 시장에서 쫓겨난 구글이
홍콩을 통해 재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SNS(social network service) 시장에서도
뚜렷한 비젼을 보여주지 못하고 철수를 했기 때문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전 세계 SNS 거인 페이스북과 합작하여
중국판 페이스북 서비스를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언론에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바이두는 이제 자신들이 바라보았던 중국의 구글을 넘어 전 세계의 바이두로 나아가고 있다. 국내 포털 사이트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4
5
천만의 유저들을 거느린 바이두와 리옌홍은 우리가 기억해 두어야 할 중국의 현재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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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출처: 바이두 홈페이지 캡쳐)



 

글 : DUDU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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