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월드의 두 가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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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결합된 평범한 개인들이 과거 슈퍼맨들의 역량을 갖게 되고 이들이 집단화되면서 자기조직화된 창발적인 초인류로 진화하게 된다. 그러나, 슈퍼맨으로서 초인류로서 진화하는 미래의 스마트 월드는 한편 두렵기도 하다. 과연 미래의 스마트월드는 우리 인류에게 희망이 될 것인가? 바람직한 스마트 월드를 구현하기 위하여 예상되는 여러 가지 문제 중 ‘인간의 상실감’과 ‘집단광기’의 두 가지 문제를 우선 다루어 보기로 하자.

첫 번 째 문제는 스마트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상실감이다. 인간은 스마트폰 아바타와 융합해 사이보그로 진화한다. 즉 스마트폰이 없어지면 호모 모빌리언스의 정체성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생물학적 인간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커피숍을 가보자. 두 연인이 데이트를 한다 신기한 현상은 남자는 스마트폰을, 여자는 스마트 패드를 가지고 연인을 눈앞에 두고 각기 다른 사람들과 원격으로 소셜 네트워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1 m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수 km, 혹은 수천 km 밖에 있는 사람과, 어쩌면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과 인간이 분리될 수 없는 단계에 돌입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많은 사람들은 수시로 스마트폰을 꺼내 메신저,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이메일 등 각종 소셜 네트워크를 수시로 확인 한다. 길 가면서도 확인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다가 길가는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밥 먹으면서도 확인한다. 운전하면서도 확인한다. 거의 확인의 강박 단계에 돌입한 사람들이 증가한다. 분명한 연결 중독 수준이다. 나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존재감을 느낀다. ‘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

마트에서 쇼핑할 때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가격비교를 한다. 물론 지불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경제활동도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고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사라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호모 모빌리언스로부터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 질 것인가? 스마트폰을 통해 얻어진 사회성, 숱한 인류집단 간의 연결성 그로부터 얻은 소속감 등이 일시에 거대한 쓰나미 같은 고독으로 다가 올 것이다. 스마트폰 상실의 고독감은 어마어마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개개인의 스마트폰을 뺏는 것이 미래 사회에 커다란 징벌이다. 지금도 중고생에게 가장 큰 벌이 스마트폰 일주일 사용금지라고 한다. 그것은 지금 사람을 독방에 가둬 놓는 것과 비견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가장 어마어마한 재앙은 아마도 인터넷의 붕괴일 것이다. 인류는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추락한다.

‘노모포비아’는 휴대전화가 없을 떄 느끼는 공포증이라는 뜻의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준말로서 이러한 상실 증세를 나타내는 용어다. 이 용어의 등장은 한편으로는 인간과 스마트폰 간의 사이보그로서의 결합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의 상실감의 극단적인 경우는 모르핀과 같은 지나친 멀티 미디어의 자극의존성일 것이다. 수전 그린필드는 스마트폰에 의존해 N-Screen의 자극에 빠져들면 인간의 뇌의 연결성이 저하되면서 어른에서 아이로 퇴행한다고 한다. 게임이 주는 짜릿함은 뇌 속의 도파민 방출을 통해 쾌감을 주고 이 쾌감이 게임을 지속하게 하지만, 이 과정에서 뇌의 의미를 연결하는 시냅스는 파괴되고 상상력은 저하되고 창의력은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파우스트처럼 순간의 쾌감에 인생의 가치를 팔아 넘기는 것이다. 그 결과 과거 섬바디(Somebody)와  에니바디(Anybody)라는 두 가지 인간 정체성의 유형에 노바디(Nobody)라는 뇌 연결성이 성긴  인간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아바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마트폰의 아바타가 되어 순간적인 짜릿함만을 추구하는 의미를 망각하는 인간상이 된다고 한다. 수전 그린필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인과의 뇌 연결을 통해 새로운 창조성을 발현하는 유레카(Eureka)형 인간상이 요구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스마트폰 아바타가 없는 인류는 분명히 신석기 시대 인류보다도 생존 경쟁력이 없을 것이다. 생물학적 개체로서 생존 능력조차 의문시 된다. 이제 호모 모빌리언스에게 생존 계획(Contingency Plan)이 필요한 이유다. 인류가 전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 갈 수 있는 훈련도 가끔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래에 유망한 산업 중 하나가 완전한 원시 휴가지를 제공하는 것 일 수 있다. 모든 문명으로부터 격리된 생활을 하는 인간의 진화단계의 본능을 깨워주는 캠프다.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존재하지 않는가?

다음에 ‘휴대폰 상실증세 -노모포비아’에 대한 ‘시큐어엔보이(SecurEnvoy)’의 조사결과를 인용한 CNN보도를 소개한다.

시큐어엔보이가 최근 영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1년전 조사때보다 11%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그 같은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나 응답자 가운데 18∼24세의 경우 모노포비아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전체 응답자들에 비해 많은 77%나 됐다. 또 여성이 70%, 남성이 61%로 이 증세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다.

시큐어엔보이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앤디 켐셸은 이에 대해 남성이 여성보다 휴대전화 2대 이상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잃어버릴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휴대전화를 2대 이상 가지고 있는 남성은 전체의 47%로, 33%인 여성보다 비율이 높았다. 캐나다 청소년 심리학자 미첼 카-그레그는 “일부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 패닉(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또 상당수의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며 “심지어 내 고객 가운데 일부는 아침에 휴대전화를 찾지 못하면 학교나 일터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두번째 문제로는 ‘집단 광기’라는 치명적인 현상에 대비하여야 한다. 게임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북구 노르웨이에 사는 레밍이라는 쥐는 3,4년 마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집단으로 이동하다가 막다른 벼랑에서 바다에 빠져 자살한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집단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허친스 교수는 그저 우왕좌왕 하다가 벼랑에 있을 때 미끄러지는 것이라 얘기를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러한 집단자살 전에 엄청난 숫자의 쥐가 늘어나게 되고, 집단자살 이후에는 집단은 다시 안정화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단행동의 일부분으로 해석해야 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집단이 조밀화되어 상전이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지 아닌가 한다.

개미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 무리의 군대 개미 연구사례가 보고 되어 있다.  파나마 운하지대에서 군대개미들이 계속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개미들이 돌고 돈 다음 날 그곳에는 죽거나, 죽어가는 개미들로 뒤덮여 있었다. 군대 개미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의 길을 뒤따라간 것이다. 바로 히틀러의 등장과 같은 집단 광기 현상이다. 이렇게 다양성이 소멸된 집단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군대개미의 무작정 맴돌기 현상은 비가 와서 다른 집단과의 페로몬 자취가 사라지면서 이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행동원칙인 ‘페로몬을 따라 행군하라’에 따라 한번 원으로 돌기 시작하면 그 행군은 영원히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악의 현상은 메뚜기들의 집단 공격의 예다. 아프리카 메뚜기는 개체로서는 매우 순한 동물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건기가 끝나고 우기에 식물이 자라나게 되면 사막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메뚜기 알을 낳고 불과 몇 주 사이에 대단한 집단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곧 사막에 먹을 것이 없어지게 되면 메뚜기들은 드디어 조용한 생활에서 공격적 집단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주변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메뚜기의 습격은 성서에도 나오고, 중국 역사서에도 나온다. 한 마리 한 마리는 약하다. 그러나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남는 것이 없다.

레밍이나 군대개미처럼 집단 자살도 문제이나, 아프리카 메뚜기와 같은 집단 공격성도 더 심각한 떼지능의 문제가 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군국주의 일본이 이러한 경향을 보였다. 일본인들은 개개인은 무척이나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개인들이 특정 상황에서 집단 공격성을 가진다는 아이러니가 프랙탈 이론에서 설명되고 있다. 모래로는 대규모 건물을 만드나, 자갈로는 어렵다. 이러한 현상이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집단 악플로 연예인들을 자살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보면 개개인은 정말 온순하고 착하다. 그러나 그들은 집단 속에 들어왔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이런 현상은 동물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오대양사건을 기억할지 모르지만은 수많은 신도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 이러한 집단의 움직임은 종교적 신성함을 자랑하는 메카 순례에서도 나타난 바가 있다. 2006년 메카순례에서 대규모 군중들이 모여들면서 340명이 넘는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 이것은 군대개미 행동, 혹은 메뚜기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떼지능은 잘못 작동하게 되면 정(正)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 걸리면서 소위 폭주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인간이 이러한 폭주현상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과거 독일 제3제국의 집단 광기를 만들어낸 히틀러의 등장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군중의 밀도가 낮을 때는 상호작용이 약한 기체상태인데, 밀도가 높아지면 유체상태가 되고, 더 높아진다면 고체상태로 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많은 국가의 금융시스템 붕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00년 하반기 미국 IT 버블 붕괴로 수조달러의 자산이 날라갔다. 한국의 코스닥도 버블 붕괴로 수십 조원의 자산이 날라갔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붕괴현상을 보면 군대개미의 행진과 너무나도 흡사한 점들이 있다.

이러한 거품 현상은 인간들이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다양성이 파괴될 때 나타나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개인이 판단하는 것을 포기하는 집단은 대단히 위험하다. 소수가 중요한 정보로부터 대중을 단절 시킬 때, 극도로 위험해 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호모 모빌리언스 시대를 맞아서 새로운 위험에 대한 사전 대처에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의 SNS 문화에 소중한 교훈이 아닌가 한다.

그 대안의 핵심은 ‘1)정보의 개방, 2)투명성의 보장과 3)네트워크 플랫폼 사업자의 윤리적 안전장치’일 것이다. 앞으로 네크워크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안전장치는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될 것이고 이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가 만들어 가는 인류의 미래인 스마트 월드가 굿 월드가 되기 위하여 ‘인간상실감’과 ‘집단광기’라는 두 가지 문제의 해결에 모두가 스마트하게 동참하여 풀어 나가기 바란다.

글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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