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 당신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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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 서승원 창업벤처국장

지난 4월 5일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일명 “잡스 법”(JOBS Act, Jump start Our Business Startup)에 서명함으로써, 신생 창업기업 지원인프라 혁신을 위한 입법절차를 완료했다. 애플의 창업자 故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이 법안은 오바마 정부가 혁신적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미국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잡스 법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와 엔론 사태 이후 강화된 기업공개(IPO) 절차와 규제를 소기업과 신생기업에 한해 대폭 간소화하고, 인터넷을 통해 소액투자자를 모으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을 허용토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 금융과 선순환 창업 생태계(eco-system)를 갖추고 있으며, 기술이나 혁신적인 창업에 관한한 미국을 필적할만한 나라는 아직 없다. 지난해 미국의 벤처캐피탈 투자와 엔젤투자를 합한 미국의 총 벤처투자규모는 509.3억 달러(약 61조원)이며, 엔젤투자자 수도 31만 8천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벤처투자규모가 미국의 60분의1 수준(1.26조원)에 불과한 점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창업국가 미국이 잡스 법까지 만든 핵심 취지는 그간의 대기업 친화적인 경제정책과 제도들을 새롭게 창업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바꾸는데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활성화하고, 이렇게 펀딩을 한 스타트업들이 향후 IPO를 하거나, 기업을 M&A 하는 과정을 통해 이익을 실현할 때 발목을 잡지 않도록 관련된 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잡스 법이 우리나라 벤처창업 정책에 시사하는 바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혁명과 ’97년 벤처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을 통해 태동한 우리 벤처 업계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톡톡한 역할을 담당하며 급속하게 성장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묻지마 투자와 닷컴버블로 상징되는 벤처업계의 시련을 겪으며, 벤처창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벤처업계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폰 확산에 따른 모발일 혁명은 인터넷 경제 이상의 파괴력을 갖고 무궁무진한 사업기회를 제공하면서, 제2의 벤처창업 르네상스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과 일자리 문제, 그리고 모바일 혁명으로 인한 경제 환경 변화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다. 이 시점에서 잡스 법 제정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오바마 정부는 닷컴버블로 인한 씁쓸한 기억보다 새로운 벤처 창업이 가져다줄 경제 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선택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잡스 법이 재정적인 도움이 필요한 신생 기업들에게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함으로써, 대기업 중심의 게임의 룰(rule)을 중소․창업기업 친화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부정책의 ‘타이밍’이다. 필자는 스타트업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이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진화하는 경제 환경 변화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창업지원정책을 담은 잡스 법을 제일 먼저 내놓았다는 점에서 새삼 미국경제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갑자기 어릴 적 “토끼와 거북”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게으른 토끼를 착실한 거북이 이긴다는 교훈이 현실에서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토끼와 거북에 비유하자면, 미국은 토끼, 우리나라는 거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토끼가 낮잠은 자지 않고 더 열심히 달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거북이라고 해서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벤처․창업 정책의 현장에서 우리나라 벤처 업계의 부침(浮沈)을 생생히 목격한 필자의 눈에는 10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희망의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 4년간 꾸준히 추진해왔던 정부의 벤처․창업 활성화 정책이 어느 정도 틀을 잡으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신설법인수가 6만 5천개를 돌파하여 통계 집계이후 최고치를 경신했고, 연도별 신규 벤처기업 중 3년 미만 창업기업 비중이 5년 연속 증가하여, “제2의 창업붐”에 대한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또한 지난해 350명 수준이던 엔젤투자자 수도 금년에는 벌써 1,000명을 넘어섰다.

둘째, 정부 내에서 창업의 중요성과 활성화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고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창업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은 물론이거니와 금융위, 법무부, 방통위, 교과부 등 주요 관계 부처에서 창업을 금년 업무계획의 핵심 테마로 잡고 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의 경우, 중소․창업기업의 금융환경 개선을 위해 금년상반기에만 5차례의 대책을 발표하고, 연대보증의 원칙적 폐지, 중소벤처 전용 주식시장 신설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법무부에서는 50년 만에 최대폭으로 상법을 개정하여, 유한책임회사 등 새로운 회사형태를 도입하고 다양한 종류의 주식발행을 허용하는 등 창업에 친화적인 회사제도를 정비하였다.

셋째, 창업활성화에 대한 공감대는 정부를 넘어 민간 영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먼저 대기업들도 그간 교육과 불우이웃돕기 차원에 머무르던 사회공헌 활동을 창업 생태계에 일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범 현대가의 아산나눔재단은 엔젤투자기금 1,000억원을 조성하기로 했고, 포스코는 벤처파트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 창업기업을 직접 발굴하고 투자까지 연계하고 있다. 한편 은행권에서도 5,000억원 규모의 청년창업지원펀드를 조성하여 창업초기 돈맥경화 해소에 나서기로 했다.

넷째, 무엇보다 희망적인 것은 성공한 벤처 1세대들이 청년창업가들의 멘토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니시스 창업자 권도균 대표와 다음 공동창업자 이택경 대표는 한국형 벤처인큐베이터인 “프라이머”를 운영하고 있고, 첫눈의 창업자 장병규 대표는 엔젤전문 벤처캐피탈 “본엔젤스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엔젤투자와 멘토링을 병행한다. 고영하 前 하나TV 회장이 이끄는 “고벤처포럼”에는 매달 300명이 넘는 예비창업가와 멘토들이 정기적 만남을 갖고 있다.

다섯째, 최근 들어 M&A를 통해 초기 엔젤투자의 성공적인 회수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리빙소셜이 인수한 ‘티켓몬스터’를 필두로, KT의 넥스알․엔써즈, 카카오의 로티플, SK플래닛의 매드스마트 등에 이어, 미국 인텔社의 올라웍스 인수에 이르기 까지, 수백억원에 이르는 소위 “대박”을 치고 있다.

벤처 1세대 엔젤투자자 또는 멘토로의 귀환이나, M&A를 통한 초기투자 회수 사례의 증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만 존재하는 자생적 선순환 창업생태계의 토대라는 점에서 특히 고무적이다. 성공적으로 EXIT한 선배 벤처인의 경험과 자본이 다시 후배 청년창업가를 육성해 내고 있으며, 취약했던 중간 회수시장이 M&A를 통해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벤처 업계가 보다 건강해지고 한 단계 도약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청년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능력, 그리고 도전정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S세대”로 지칭되는 우리 청년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모바일 활용 능력과 글로벌 언어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취업의 대안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가치 있게 개척하고자 당당히 창업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혹자는 미국의 벤처창업 정책을 두고 “지원도 없지만, 규제도 없다”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한 미국이 모바일 스마트 혁명을 맞이하여, 잡스 법을 통해 창업지원은 확대하고 규제의 문턱은 더욱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토끼가 뛴다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벤처 창업의 호기를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가릴 것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필자도 한국 벤처창업 정책의 선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글 : 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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