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이너뷰(1)] 1+2=10의 공식을 만들어가는, 젊은 그들: 엔써즈

2011년 12월, 설립 5년차 동영상검색서비스회사 엔써즈가 450억 원의 평가액으로 KT에 인수됐다. KT의 엔써즈 인수가 여느 M&A와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벤처생태계를 통한 성장과 보상 그리고 혁신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젊음의 시간을 불태웠던 창업멤버들은 그간의 성과를 보상받아 더 멀리 뛸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대기업은 외부의 힘으로 혁신의 물꼬를 틀 수 있어 더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엔써즈를 설립한 김길연(36)대표는 KAIST대학원 재학 중이던 2000년, 음성인식 서비스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실패했던 경험을 뒤로 하고, 2007년 다시 엔써즈를 설립해 재기했다. 그가 5년 여의 시간을 쏟은 끝에 성공을 걸머쥘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바꿔낼 기술을 만들어보자”는 비전을 함께 하며 배고픈 시절을 견뎌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장동력을 상실한 시대, 그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김길연대표와 그의 동료들을 통해 비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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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취직을 해요?

의사선생님을 아버지로 둔 경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도 자천, 타천 같은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길연 대표는 병원에서 나는 냄새조차 싫었던 아이였다. 그러던 그에게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컴퓨터와 보내는 시간이 그에게는 너무도 행복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길연대표는 진로를 고민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별다른 고민없이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입학 후 2년여의 시간을 학과공부 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놀거리에 보내던 김대표는  3학년이 되어서 자연스레 전공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1999년, 대학졸업 후 대학원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그에게 첫 번째 창업이 다가왔다. 2000년 무렵은 인터넷 붐을 타고 대한민국 전역에 창업열풍이 불던 시절이었고, 주변에는 창업가들이 넘쳐났다. 이 같은 창업열풍 덕에 전산전공자들에게는 대기업연구소는 학점관리하는 친구들이나 택하는, 그리 부러워할만한 선택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김대표는 창업을 선택했고, 오늘날까지 12년의 세월을 함께 하고 있는 박대봉 이사가 당시 설립한 음성인식서비스회사 SL2에 합류했던 동료다. 현재, 엔써즈의 CSO를 맡고 있는 이준표 역시 카이스트 전산과 재학시절 에빅사를 창업했던 창업 동기다. 청춘실업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라, 떠밀리듯 창업 대열에 들어서는 청춘들이 늘어나는 오늘날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패를 통해 배웠어요

그리하여,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삼성증권의 투자를 받아 창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지만, 막상 뛰어들고 보니 가시밭길 투성이었다. 당시, 설립한 회사의 사업아이템인 음성인식기술은 최근 애플이 선보여 화제가 된 siri와 같은 기술이다. 헌데, 음성인식기술은 속성상 오차율이 1%미만이어야 한다. “가스불을 끄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가스불을 켜라”로 인식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겠는가. 물론, 성공만 한다면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기술이었지만, 당시 그들이 보유한 기술수준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첨단기술인데다 한국시장에서만 소화하기에는 시장이 좁고, 외국으로 진출하려고 보니 자본과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소프트웨어 자체만을 팔아 생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심는 방식으로 신축아파트 단지에 빌트인으로 판매했다. 그러나, 설치된 제품에서 오작동신고가 속출했고, 전 직원들이 AS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됐다. 상황이 이러하고 보니 유능한 직원들은 하나, 둘 회사를 빠져나갔고, 결국 남은 건 김길연 대표와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병역특례요원 뿐이었다.

기술이 핵심인 회사에서 기술자들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상황에 서, 김길연 대표가 택할 수 있는 결론은 사업을 접는 방법뿐이었다. 결국, 회사집기까지 정리해 빚을 갚았지만, 여전히 갚지 못한 빚을 떠안게 되었다(다행히도, 남은 뭉치빚은 부모님이 빌려주신 돈 인터라 여느 창업자들처럼 빚 때문에 혹독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허나, 실패가 실패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찐한 실패를 통해 시대와 부합하는 기술을 찾는 안목, 일을 실행시켜내는 실행력과 시장과 소통하는 방법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했어요

회사를 정리한 후 김대표는 전화를 걸어 전등을 끄는 폰네트워크 디바이스를 혼자서 팔기도 했고, 이 역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자 대기업 시스템통합(SI) 엔지니어로 일하며 생활인으로 살아갔다. 탁월한 프로그래머인덕에 프로그래밍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가슴이 뛰지 않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주인이 되어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창업을 하기로 결심한 후 SL2를 함께 했던 박대봉 이사(당시, 박이사 역시 대기업 SI일을 하고 있었다)에게 합류를 부탁했다.

이후, 김대표는 SL2가 준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분야 이면서, 확장가능하고도, 시대와 부합하는” 아이템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에게 동영상이 점점 많아지는 시대라는 사실과 기존의 동영상검색은 동영상의 제목을 텍스트로 입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동영상화면만 가지고도 전체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면 글로벌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김길연 대표는 박대봉이사와 함께 동영상검색서비스를 만들기로 정하고, 대학선배이자 네오위즈인터넷 창업에 성공한 후 첫눈이라는 검색서비스를 개발해 네이버에 매각한 후 벤처투자 및 인큐베이팅사업을 하는 본엔젤을 설립한 장병규 대표를 찾아갔다. 장병규 대표는 첫 만남부터 김대표에게 경쟁회사에 대한 점검은 했는지, 특허는 취득했는지, 기술개발과 서비스상용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치밀하게 물었다. 지옥훈련 같은 심사과정을 거친 후 장병규 대표는 갓 설립된 엔써즈에 3억원의 투자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엔써즈에게 3억원의 투자금보다 더욱 값진 것은 투자금과 함께 “장병규(장병규대표는 엔써즈 외에도 잇단 성공사례로 벤처투자의 미다스손이라 불리운다)”라는 벤처선배의 치밀한 인큐베이팅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엔써즈의 동영상검색시스템은 동영상의 스틸컷 이미지를 동영상의 재생화면과 대조해 그 결과를 이용자에게 보여준다. 이를 위해 엔써즈가 개발한 기술은 동영상의 재생 화면을 초당 4~5장의 프레임으로 나누고 각 특징을 분석하는 기술로 수많은 동영상을 찾아내고 그 안에 숨어있는 프레임을 찾아내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더 큰 서버와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서버와 네트워크의 확대를 위해 김길연 대표는 장병규 대표로부터 소프트뱅크 코리아의 문규학 대표를 소개받아 해결방법을 의논했고, 문규학 대표는 글로벌회사로 키워낼 수 있는 임원의 합류를 조건으로 투자를 약속했다.

그렇게, 문규학 대표의 소개로 만나게 된 이들이 현재 엔써즈의 CSO를 맡고 있는 이준표와 엔써즈 아메리카 대표를 맡고 있는 Sherman Li다. 이준표 부사장은 김길연대표가 SL2를 창업하던 시절, 같은 공간에서 에빅사를 창업했던 창업동기였고, Sherman Li는 스탠포드 재학시절 국제행사에서 이준표를 만나 아시아라는 신흥국에 흥미를 느껴 에빅사 창업멤버에 합류했던 이력의 소유자였다. 이준표 부사장과 Sherman Li 엔써즈 아메리카 대표의 합류 이후 엔써즈는 소프트뱅크코리아로부터 16억원을 투자받아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큰 꿈을 꾸게 되었어요

소프트뱅크코리아와 KT로부터 투자를 받아 총알을 장전하게 된 엔써즈는 2011년 2월 1998년 재미교포들이 한국대중문화를 즐기기 위해 개설한 웹사이트 숨피를 인수했다. 엔써즈의 동영상검색기술과 숨피가 갖고 있는 한류콘텐츠가 결합하면 더 큰 씨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이 성장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오던 엔써즈가 또 다시 직면하게 된 중대한 결단은 지난 해 12월 이루어진 KT와의 M&A였다. KT가 엔써즈의 지분 45%를 200억에 매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엔써즈로서는 창업멤버들에게 그간의 노고를 보상하는 대가를 지급하면서도(KT와의 계약체결시, 전 직원의 고용보장을 포함시켰음은 물론이다), KT의 자본력과 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이고, KT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글로벌시장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터라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딜이었던 것이다.

2012년, 달라진 벤처생태계

대기업에 눌려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네 벤처생태계에서는 구글, 애플, 트위터, 페이스북이라는 IT스타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탄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비록, 우리네 생태계의 현주소가 이 같은 탄식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엔써즈의 사례는 우리 벤처생태계에 새로운 가능성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력을 갖춘 청춘들이 모여 가능성을 일궈내면, 엔젤투자(본엔젤의 엔써즈에 대한 3억원의 투자가 미래가능성을 보고 이루어진 엔젤투자다)가 이루어지고, 엔젤투자금유치를 통해 다음 단계의 가능성을 이뤄내면 다음 단계의 투자가 이뤄져 그 가능성을 현실화해볼 수 있는 성장시스템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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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봉
김길연대표가 SL2를 설립한 후 학교게시판을 통해 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12년을 함께 하고 있다. 김길연대표의 “사람을 홀리는 기술”에 빠져 그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며 프로그래머 특유의 순수한 웃음을 짓는 그는 김길연 대표가 마음놓고 기술개발을 맡길 수 있는 엔써즈의 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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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표
김길연대표가 SL2를 창업했을 당시, 에빅사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해 같은 공간에서 일한 적이 있는 창업동기다. 이준표 부사장 역시 첫 번째 창업에 실패한 후 소프트뱅크 사업개발이사로 재직 중이던 2007년 엔써즈의 부사장으로 합류해 2011년 2월 인수한 숨피의 대표이사 겸 엔써즈의 부사장을 맡아 엔써즈를 함께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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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man Li
스탠포드 재학 시절, 국제학생창업가네트워크 프로그램을 통해 이준표 부사장을 만난 후 한국으로 건너와 에빅사 창업에 합류했다. 대전의 옥탑방에 머물며 젊음을 불태웠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미국으로 돌아가 유명컨설팅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도전이 가득한 벤처인으로서의 삶을 그리던 중 이준표부사장의 추천으로 엔써즈에 합류해 엔써즈 아메리카 대표를 맡고 있다.

글: 오이씨
출처: http://www.oecenter.org/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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