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이기만 하면 될까?

TV 뉴스나 신문 등을 보고 있으면 어떤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로 인해 혜택을 받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간혹 소개된다. 예를 들어, “첨단의 새로운 진단기술이 개발되었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서 과거라면 몰랐을 우리 어머니의 조기암을 진단하는데 성공해서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거나 과거라면 치료가 불가능했을 질병을 첨단 의료기기의 도움으로 치료를 하게 되었다는 것 등의 이야기 등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ource: http://www.flickr.com/photos/10361931@N06/4273968004
과학에서는 이와 같은 하나하나의 사건을 일회성 증거(anecdotal evidence)라고 해서, 하나의 사건 자체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런 증거가 모여서 일종의 시리즈가 되고, 여기에 객관성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제어기법이 들어가면서 그 증거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많은 데이터를 이용한 통계적 분석을 이용해서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주관적일 수 있는 일회성 증거보다는 객관성을 갖춘 높은 수준의 객관적인 증거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학연구의 본질과도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객관적인 과학적인 증거만 중요시한 나머지 지나치게 스토리와 감성, 그리고 사회의 반응을 무시하는 과학적 태도가 반드시 좋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학과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는 그래서 항상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이 비록 매우 메마르고 딱딱한 특징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표현하고 사회와 호흡하는 것과 관련한 부분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과학기술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도, 특정 과학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 등에 대해서 사회가 이해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과 같은 사회와의 소통은 무척이나 과학기술의 미래에 있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둔감한 듯하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이런 노력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못해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 폐쇄성이 어쩌면 과학기술이 다른 학문들과 본질적인 융합을 시도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JAMA(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11년 11월 9일판에는 Zachary Meisel과 Jason Karlawish의 “Narrative vs Evidence-Based Medicine—And, Not Or”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렸다. 이 에세이에서 저자들은 “스토리가 어떻게 개개인들이 증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해 핵심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저자들이 스토리가 얼마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증거만 매우 딱딱한 어조로 제시하고, 진짜 사람들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과학기술은 그 찬란할 수도 있는 업적을 어쩌면 너무 퇴색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디자인을 입히지 않은 기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듯 말이다.
 
강한 스토리는 객관적인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의 최대 약점은 그것이 발표되는 순간 인간들의 행동변화를 일으켜서 실제로 그 때까지는 옳았던 진실조차도 변경할 수 있다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행동패턴을 포함한 가정이 객관적인 검증의 도구를 이용해서 객관화가 되었을 때 이것이 진실의 가능성이 높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사실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행동패턴에 변화를 주거나, 과학적으로 발견한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에 과학은 무력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스토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에 영향을 주고, 이를 통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술을 이용하여 조기검진을 통해 암을 극복한 사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것이 사람들의 조기검진에 대한 다양한 태도변화를 일으킨다면 상당히 많은 연구결과의 예측치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연구방법론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딱딱함과 메마름을 너무 찬양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UX에 대한 과소평가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의학의 진단기술이 발전하여 비침습적인 신기술이 바늘을 찔러서 생검을 하는 것과 유사하거나 조금 못한 결과가 나온 경우가 있다고 하자. 생검이 주는 고통과 스트레스는 쉽게 정량화를 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사회심리학적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사실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데, 이에 대한 가중치는 얼마나 줄 것인가? 그리고, 비침습적인 신기술이 기존에 잘 알려진 방법에 비해 조금 못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우리는 이를 배척할 수 있는 것일까? 나 자신,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을 포함한 일반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경험하고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까? 과연 이들의 선택에 앞서 메마르고 딱딱한 감성을 지닌 과학자들이 “객관적 증거”를 앞세워 모든 결론을 내리는 행위는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기술 연구방법론과 과학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신화적인 믿음에 대해서 한 번쯤은 뒤돌아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참고자료:
Narrative vs Evidence-Based Medicine—And, Not Or

글: 하이컨셉
출처: http://health20.kr/2367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