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향하는 여성들

힘들다 외치는 여성 vs. 들어주지 않는 사회
 
얼마 전, 상반기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이 트위터에 올린 발언 때문에 맞벌이 여성들의 원성을 사서 화제가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아기 엄마들에게 새벽에 일어나 아기와 놀아주라는 짧은 한마디 였는데, 이 글을 접한 수많은 여성들은 워킹맘이 강철 로봇인 줄 아느냐,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아라 등의 울분을 토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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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혜민스님이 트위터에 사과의 글을 올리며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혜민스님과 답변을 올린 여성들의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본 사건은 워킹맘들의 어려움과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회의 갈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만하다.
 
아시아 최하위, 한국?
 
지난 6월 McKinsey는 아시아 10대 국가의 증권시장에 상장된 744개 기업을 조사하여 <Women Matter: An Asian Perspective> 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 기업 이사회 내 여성 임원 비율은 10개국 최하위인 1%로 나타났는데, 이는 노르웨이(35%), 유럽 평균(17%), 미국(15%) 등 서구 국가들은 물론, 중국(8%), 말레이시아(6%)에도 훨씬 못 미치는 부끄러운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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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 한국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현저히 낮은 것일까?  –  그렇지 않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1년 기준 55% 이다. 물론 노르웨이(76%), 중국(74%) 보다는 낮은 수치이지만, 한국보다 이사회 내 여성임원 비율이 높게 나타난 인도네시아(53%), 홍콩(52%), 대만(47%), 말레이시아(47%), 인도(35%) 보다 높은 수치이다.
  •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이 낮은 것일까?  –  그렇지 않다. OEDC에서 발표한 <Education at a Glance 2011>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대학 졸업률은 66%로서, OECD 평균(55%), 중국(39%), 인도네시아(31%) 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  기업 내 여성인력 확충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일까?  –  그렇지 않다. McKinsey 보고서에 따르면, “Looking ahead, do you expect your company to accelerate implementation of gender diversity measures?” 라는 질문에 Yes 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한국이 66%로서, 2위 인도(51%)를 현저한 차이로 따돌리며 아시아 10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여성인력 중시 발언을 비롯하여 대기업 총수들의 여성인재 육성에 관한 의지 등을 보더라도 기업 내에서 여성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에서 무수히 많은 여성 인력들은 entry level에서 middle level로 올라가는 와중에 손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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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활동 참가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최근 십여년간 다양한 원인과 해결책 등이 논의되어 왔고, 그 와중에 여성고용할당제, 무상보육, 남성 육아휴직 등 찬반이 엇갈리는 수많은 제도들이 탄생하고 폐지되어 왔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들은 이 곳에서 논의하기에는 다소 거대한 주제일 뿐만 아니라, 그 제도를 직접 이용해보지 않은 필자가 그 실효성과 한계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성들을 집으로 보냈을까.
 
시스템이 바뀌기만을 계속 기다릴 수는 없다
 
사회활동을 접는 여성들은 크게 3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 자발적 결정 – 사회활동은 결혼 전 자신의 포장을 위한 임시직으로서의 수단이므로, 결혼 및 출산 후에는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 여기는 여성, 혹은 편한 주부생활을 놔두고 굳이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여성
  • 자의 반, 타의 반 – 회사에서 어느정도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꾸준히 사회활동을 하고 싶지만, 엄마의 부재로 인해 드는 추가 비용(가사 도우미, 어린이집 등)이 월급을 상회하여 고민 끝에 전업주부가 되는 여성
  • 비자발적 결정 – 사회활동에의 의지는 충만하지만 남편 혹은 시부모님의 은근한 강요로 인하여 회사생활을 그만 두거나,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여 승승장구하고 있는 직장에서 ‘일은 잘하지만 가정에 소홀한 ‘엄마’라는 주변의 시선에 못이겨 마지못해 그만두는 여성

자신이 어떤 타입에 속하든지 간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사회활동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시스템과 사람들의 의식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어차피 여자는 유리천장이 있는데 올라가서 뭐해. 무상보육은 말 뿐이지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벌어서 남는게 없어. 회사에서 남자들하고 경쟁하기 힘들어. 여자가 야근하면 몸 상한다더라…..
 
남자들도 동료들하고 경쟁하느라 힘들고, 남자들도 야근하면 몸 상하며, 남자들도 일하느라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한다. 하나의 제도가 사회에 뿌리내리려면 5~10년이 걸리고, 사회 구성원의 의식이 바뀌려면 20년은 족히 걸리는데, 언제까지 시스템과 의식 탓만 하고 있어야 할까.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으로 일하다 가정으로 돌아간 Anne Marie Slaughter씨가 얼마 전 Atlantic Magazine에 기고한 글 <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 (왜 여성들은 아직까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을까)>을 보면,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시스템이 선진적이라고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직장을 다니는 여성을 위한 제도나 의식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무엇이 여성을 집으로 보내는지를 따지기 전에 여성들 스스로가 집으로 향하지 말자고 이야기 해보고 싶다. 집과 사회에서 모두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하지 말고 당당하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조금씩 변화해가는 사회를 인내심있게 기다려 주면서, 자신의 사회활동을 보며 자란 자녀들이 성장했을 때 gender diversity (성비 균형)에 대해 성숙된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올 9월 Wharton School의 MBA 과정에 입학할 총 17명의 Class of 2014 중 14명이 여성이라는 소식은 10년 후에는 한국이 아시아 최하위 여성임원 비율 국가라는 오명을 버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부디 이 14명을 비롯한 모든 여성 MBA 분들의 발걸음이 집으로만 향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 : MBA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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