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롤라코리아 해체 선언 … 모바일 절벽의 신호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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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40년간 사업한 모토롤라코리아가 해체를 선언했다.
모토롤라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구글에 인수된 모토롤라는 미국에서도 점차 존재감을 읽고 있기 때문에 해외 시장 정리 차원에서 단행한 결정이 아닐까 싶다. 구글은 현재 모토롤라의 셋톱박스 사업부를 매물로 내놓고 인수자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미디어에서는 한결같이 ‘한국은 역시 외산폰의 무덤’ 같은 표현으로 마치 ‘신난듯’ 보도를 하고 있거나 ‘무책임한 모토롤라’처럼 떠나기로 결정한 회사에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HTC나 노키아, 소니모바일 등과 달리 모토롤라의 철수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모토롤라의 한국시장 철수라기 보다는 ‘모토롤라코리아의 해체’이며 어쩌면 한국 모바일, IT 산업의 급작스런 붕괴, 즉 재정절벽(Fiscal Cliff)이 아닌 ‘모바일 절벽(Mobile Cliff)’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직원 400명이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됐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모토롤라의 철수 결정은 빅플레이어들이 지배하고 있는 국내외 모바일 시장이 갈수록 ‘모 아니면 도’가 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개나 걸이냐 윷도 2개, 3개, 4개씩 옮겨갈 수 있음에도 ‘말판’으로서의 의미조차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에서도 ‘삼성’ 아니면 ‘애플’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에 모토롤라, HTC, 노키아와 같이 개나 걸 노릇을 하며 회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모토롤라코리아는 많아야 ‘수십명’ 단위인 판매망과 마케팅 조직을 운영하고 있던 HTC, 노키아 등과는 차원이 다른 회다. 한국의 우수한 인력을 채용해서 연구개발을 했으며 몇몇 ‘히트 모델’은 세계 시장에서 통하기도 했다. 더구나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한 역사가 40년이나 됐다.

모토롤라의 레이저 후속 모델 중에서 배컴폰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디자인에서부터 연구개발까지 해서 세계 시장에 선보인 제품이다. 모토롤라가 한국에서 연구개발을 한 이유는 한국 기업과 연구소가 CDMA 원천 기술을 일부 보유하고 있고 SK텔레콤 등 세계적인 통신사업자와 협업을 통해 제품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모토롤라는 한국에서 갤럭시와 아이폰 쏠림현상으로 인해 판매가 안되는데 이어 연구개발도 더이상 한국에서 진행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모토롤라가 어려웠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멸의 히트작 레이저 성공 이후 뚜렷한 후속작을 찾아내지 못해 위기에 처해있었지만 모토롤라코리아 만큼은 유지했다. 그만큼 성과도 좋았고 연구개발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토롤라는 대내외적인 상황이 겹쳐 더이상 한국 법인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모토롤라코리아의 해체를 한 외국계 기업의 ‘철수’로만 볼 수 없으며 ‘모바일 절벽’을 예고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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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한 한국 모바일 시장에서 '기적'을 만들며 고군분투 중인 박병엽 부회장과 팬택.
1. 그렇다면 팬택은?

모토롤라코리아 해체 선언으로 가장 걱정되는 기업 중 하나가 팬택이다. 팬택은 정말 살아있는 것이 ‘기적’과 같이 느껴지는 회사이자 한국 제조업의 신화로 불릴만한 회사다. 거의 망하기 직전(Nearly Death point)까지 갔다가 박병엽 부회장이 모든 것을 던져 살려냈고 5년 만에 워크아웃을 성공리에 졸업했다. 스마트폰 ‘베가’ 시리즈도 기적과 같은 제품이다. 아이폰이 나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제조한 경험이 없던 회사가 갑자기, 그것도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 내면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렸다.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회사의 리소스(자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나 LG처럼 대기업도 아니고 수십개에 달하는 계열사도 없다. 인력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기 때문에 ‘단 한번의 판단미스’는 곧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회사는 죽기살기로 일했던 것이고 기적처럼 제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팬택이 5년만에 처음 적자를 봤다는 소식을 들었다. 갤럭시폰이 점유율 70%에 육박하면서 ‘사실상 독점’ 구도를 만들고 LG전자도 회생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시장 상황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박병엽 부회장은 사석에서 항상 “죽기살기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삼성 제품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라고 성토하기도 한 것도 충분이 이해가 간다.

모토롤라코리아의 해체는 곧 리소스가 부족한 팬택이 언제든 위기에 다시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삼성과 애플이 신나게 싸움하면서 서로의 점유율을 끌어 올리는 동안 중견 기업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그만큼 다양성은 사라지고 시장의 다이나믹스도 없어지게 되며 소비자의 선택권도 줄어들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 한국에서는 돈 벌 가능성이 없어지고 있다.

고용효과가 크고 후방(부품, 소재, 유통 등)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제조업은 미국에서도 가장 큰 화두다.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는 이구동성으로 “중국으로 나간 제조업을 미국에 다시 유치하겠다.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애플이 맥북을 미국에서 제조하고 200명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최근 발표했을때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은 1면 톱으로 화답했고 뉴욕 증시도 주가 상승으로 보답을 해줬다.

미국에서 애플이 맥북을 제조해 200명 고용 창출 효가가 있다고 해서 환호하는 데 비해 한국 모토롤라코리아 철수로 인해 400명의 일자리가 갑자기 없어지게 생겼는데 우리는 마치 남 얘기하듯 “한국은 역시 외산폰의 무덤”이란 생각 뿐인 것인가.

모토롤라 같은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 철수하는 것은 외국계 투자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신호다. “내가 돈을 들여 투자하면 얼마는 남을 수 있다”는 계산이 한국 모바일 시장에서는 더이상 안나온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돈을 벌 가능성이 없는데 어떻게 투자를 하겠으며 투자가 없는데 어떻게 일자리가 생겨나고 경기가 살아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한국이 삼성 등 일부 자국 출신 기업 몇개가 독식하는 국수마켓(Noodle Market이 아니라 Extremely conservative Market)이 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 산업의 미래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 Foreign Direct Investment)액은 1300억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아태지역 인접국가 중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장기 경기 침체로 인해 활력을 찾지 못하는 일본조차 FDI 규모가 1490억달러다. 중국은 우리의 7배이며 호주와 싱가포르도 3, 4배의 FDI를 유치하고 있다. 1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미국과는 비교조차 안된다.  

FDI란 외국인이 단순하게 자산을 국내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참가와 기술제휴 등 국내 기업과 지속적인 경제 관계를 만들 목적으로 하는 투자를 말한다. 해지펀드와 같이 돈 넣고 돈 빼가는 것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은 물론 부동산까지 이전시켜 해당 국가에서 고용하고 부를 창출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투자를 말한다.

야후도 빠져나갔고 모토롤라도 빠져나간다. 야후나 모토롤라는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회사이기 때문에 기사라도 나가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도 알게 모르게 철수하는 회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알게 모르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외국계 회사가 투자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내 이웃이 일자리를 잃으면 불황이고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공황”이란 얘기가 있다. 한국이 불황에 이어 공황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게 웃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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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국가와 비교한 한국의 경제지표
3. 테스트베드의 종말

한국 IT 산업의 특징과 방향성을 지배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테스트베드(TestBed)’란 말이다. 시장 규모는 작지만 한국 소비자들이 역동적이고 얼리어답터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먼저 테스트를 해서 세계 시장에 나가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로 기업이나 자본을 유치해왔다.

하지만 한국이 정말 테스트베드인가? 라는데 동의할 외국인이나 한국인도 별로 없다. 일부 IT 종사자들만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다.  

한국 IT 산업의 강점으로 불려왔던 것들. 즉 빠른 인터넷 속도와 소비자들의 역동성은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구글은 최근 캔자스시티에 기가급 인터넷인 ‘구글 파이버(Fiber)’를 설치했다. 구글은 규제가 약한 캔자스주를 우선적으로 뚫은데 이어 앞으로 전역에 직접 인터넷을 설치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기존 통신사업자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미국도 이제 ‘후진 속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살면서 인터넷이 ‘그렇게’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다. 속도를 높이는 것이 미국 뿐이랴. 사실 모바일 시대로 옮겨가면서 인터넷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접속’의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소비자들이 얼리 어답터인가. 맞는 애기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소비자들이 ‘얼리 삼성폰(삼성을 대표로 하는 국내 대기업 제품들)이나 얼리 애플제품’만 구입하고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매력 있을까?

수입 제품은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고 한국 소비자들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데 한국에서 연구개발(R&D)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연구개발할 이유가 없어지고 매력을 잃고 있는데 왜 연구개발센터를 한국에 두겠으며 새로 짓겠는가.
이는 ‘테스트베드’였던 한국에서 연구개발을 하고 제품을 생산했던 모토롤라코리아의 R&D 센터가 없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4. 모바일 절벽(Mobile Cliff) 올수도…

하지만 한국 IT 산업 종사자들의 관심은 오직 ‘거버넌스’일 뿐이다. 정통부의 부활 여부나 지경부가 어떻게 될지 여부가 IT 산업 활성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 연구개발 육성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결국 정책 당국자들의 “내 자리 찾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누가 정통부 또는 방통위나 지경부 장관이 되더라도, 부처가 어떻게 되더라도 이름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모토롤라코리아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삼성은 계속 갤럭시 시리즈를 잘 팔고 있으며 팬택은 고군분투하고 LG도 부활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국민들은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중견기업들이 허우적거리면 정부 당국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내놓는 아이디어가 ‘규제’ 뿐이며 ‘산업활성화’란 이름의 종이에 불과한 각종 대책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한국인들이 신나게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그들이 미국에서 열심히 한국인들의 개인정보와 네티즌들의 클릭 성향 등을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분석해 ‘맞춤형’ 광고를 쏴주고 마케팅하고 있을때 정부 당국자나 유사 기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부민등록번호 사용 제한’ 뿐이란 것을 알고 있다.

한때 IT 산업의 성장동력이었던 통신사업자들만 바라보고 사는 생태계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IT 산업은 어떻게 보면 국민들이 낸 통신료로만 버티는 구조가 고착화된 상황이다. 그래서 통신요금 인하는 한국 IT산업에 도는 피를 말리는 일이었기에 그토록 저항했는지도 모른다. 통신요금이 산업을 지탱하는 젓줄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산업, 국민 모두가 밀고당기기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외국계 기업이 철수했든 요금이 추가로 인하했든 다니나믹스가 둔화됐든 어쨌든 한국 IT 산업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글 : 손재권
출처 : http://jackay21c.blogspot.kr/2012/12/blog-post_45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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