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 다이얼 인터페이스

jog_thumbnail옛날 고급 VTR에 달려 있던 ‘조그 셔틀(jog-shuttle)’ 다이얼 기억하십니까? 테이프를 앞뒤로 돌려 재생하며 보고 싶은 장면을 탐색하는 인터페이스였습니다. 현재는 대부분 디지털 포맷이라 이런 인터페이스가 거의 사라졌지만, 지금도 비디오 편집을 위한 장비에는 이 조그 셔틀 다이얼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터치 인터페이스에서 가상적으로 구현하는 사례도 있죠. 비디오 탐색의 UI로서 조그 다이얼의 잠재력에 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조그(jog)와 셔틀(shuttle) 동작
조그(jog)와 셔틀(shuttle) 동작

우선 조그 셔틀에 관한 얘기부터 더 해볼까요? 조그 셔틀은 실은 두 가지 다이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그 다이얼과 셔틀 다이얼이죠. 셔틀 다이얼은 보통 조그 다이얼의 바깥쪽에 있는데, 순/역방향 재생 배속을 바꾸는 기능을 합니다. 제가 특히 관심 있는 기능은 조그 다이얼 기능입니다. 조그 다이얼은 마치 DJ가 LP 음반을 손으로 돌리듯, 다이얼을 돌려서 비디오를 프레임 단위로 탐색합니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순방향으로 한 프레임씩 이동하고, 반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역방향으로 한 프레임씩 이동합니다. 물리적으로 돌리는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함으로써 프레임 이동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조그 다이얼은 프레임 단위의 정교한 위치 이동에 최적입니다.

아이팟 클릭 휠 (출처: 위키피디아)
아이팟 클릭 휠 (출처: 위키피디아)

즉, 이 인터페이스의 강점은

  1. 이동 속도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
  2. 정교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디오 탐색뿐 아니라 메뉴 이동에도 잘 어울립니다. 물리적 다이얼을 돌리는 것은 스톱 간 이동에 따른 꽤 맛난 촉감적 청각적 피드백을 줍니다. 이를 잘 간파하여 크게 득을 본 것이 아이팟의 클릭 휠(click wheel)이었죠. 터치 인터페이스였기 때문에 촉감적 피드백은 약했지만, 청각적 효과를 이용해 돌리는 행위의 감을 유지시켜줬습니다. 클릭 휠은 아이팟의 메뉴 이동에 효과적이었습니다. 아이폰의 상징이 터치인 것처럼, 클릭 휠은 한때 아이팟을 상징하는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심지어는 클릭 휠을 이용한 게임까지 나왔었죠.

이제는 비디오도 테이프가 아닌 디지털 비트 포맷이기 때문에, 테이프를 ‘돌리며’ 탐색하는 조그 인터페이스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퍼스널 단말기 시장은 터치 전성시대기 때문에 이런 물리적 인터페이스는 더 찾아보기 어렵죠. 그래도 종종 터치 기반의 가상 조그 다이얼 UI가 구현되는 예가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페인트 앱인 페이퍼(Paper)가 대표적이죠. 페이퍼는 조그 다이얼 UI를 ‘리와인드(REWIND™)’라는 취소[undo]기능과 ‘믹서(Mixer)’라는 팔레트 물감 섞기 기능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페이퍼의 리와인드(REWIND™) 동작
페이퍼의 리와인드(REWIND™) 동작

본래 의미-비디오의 탐색-에 충실한 조그 다이얼 UI는 독립 개발자인 곽별샘님(@semix2)의 ‘yaPlayer’와 ‘TEDiSUB’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터치 휠(Touch Wheel)’이라는 UI로, 그 개발 뒷이야기가 개발자의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버전을 거쳐 현재 2세대까지 업그레이드되었는데,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개발자 스스로 ‘굉장히 잘 만들어진 인터페이스’라 자평하고 있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TEDiSUB의 터치 휠 동작
TEDiSUB의 터치 휠 동작

누가 뭐래도 비디오 탐색의 UI로서는 조그 다이얼을 따라올 만한 인터페이스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디멘드 시대에 비디오 트릭 플레이(trick play)의 중요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당연한 예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보편적인 슬라이드 바 형태의 비디오 탐색은 불편합니다. 정교하지 않죠. 그런 정교함이 왜 필요할까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TEDiSUB 같은 앱도 실은 어학 학습용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합니다. 정교한 비디오 탐색이 필요한 영역이죠.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비디오 장면 탐색이 뭐 그리 정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비디오 컨텐트라는 것은 몰입형 감상용에 머물러 있었지요. 많은 도전자가 비디오 서비스의 양방향성에 대해 분투를 해오고 있지만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소셜 TV니, 세컨드 스크린, 연계 커머스, 양방향 광고 등, 많은 개념이 나왔지만 모두 별 힘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한결같이 인터페이스에 대한 한계를 탓하고 있죠. 재생 중인-스트리밍 중인- 비디오를 보면서 누가 그런 귀찮은 양방향 서비스를 할까. 하지만 대부분 초점은 양방향의 입력에 대한 인터페이스에 맞춰져 있습니다. 텍스트를 어떻게 입력할 것인가, 뭐 그런 거죠. 비디오 경험 자체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습니다. 만약, 너무나 자연스러운 트릭 플레이 인터페이스를 갖춘 시스템이라면, 온디멘드 비디오의 시청 형태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언제든 어떤 장면으로든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다면, 그 장면에서 태깅을 한다든지, 코멘트를 한다든지, 어떤 양방향성의 여유가 훨씬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온디멘드 TV에 조그 다이얼을 채용한 리모트는 어떨까요? TV의 4방향 D-패드(Directional Pad)와 조그 다이얼을 융합한 인터페이스만으로 단순하게 만드는 겁니다. 일명, 조그 리모트(Jog Remote).

일명, 조그 리모트(Jog Remote)
일명, 조그 리모트(Jog Remote)

앗, 눈치채셨군요. 애플 TV의 리모트와 비슷하죠. 앗, 또 눈치채셨군요. 네 방향 키가 병합된 아이팟의 클릭 휠과 같은 컨셉입니다. 클릭 휠을 채용한 애플 리모트, 완벽한 조그 다이얼 트릭 플레이가 구현된-예를 들어, 재생 속도에 음성도 맞춰지는, 거꾸로 된 소리라도!- 그런 리모트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거기에 시리(Siri) 입력 마이크까지 채용되면…

아…

또 눈치채셨군요. 차세대 애플 TV 인터페이스에 대한 내 멋대로 예상이었습니다. ;p

글 : 게몽
출처 : http://bit.ly/Ygwp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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